[제로의 기적을 믿어요] 4편. 다르푸르의 눈동자 (2)

입력 2014-01-02 09:30  

2007년 가을, 수단
우리는 수용소 안에 있는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보건소 안으로 들어갔고, 의료진이 어린 아기들이 영양실조에 걸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팔뚝 둘레를 줄자로 재는 모습을 보았다. 우물가에서는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열심히 물을 긷고 있었다. 소중한 식수를 엄마에게 가져다주기 위해서 뜨거운 태양 아래서 구슬땀을 흘리는 것이다.
수용소 내부의 학교와 아이들을 위해 설계한 공간들은 마을을 떠나 엄청난 변화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 특별히 지은 것이다. 지역 의료 자원봉사자들은 수용소 거주민들에게 위생 교육을 하기 위해 곳곳에 배치되었다. 그 결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살며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던 다수의 난민이 한곳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난민들 중에는 강간과 총격 등 여러 가지 정신적 외상으로 고통 받는 사람도 많았다.
일행 사이에는 열네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앉아 있었는데 한마디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몸집을 봐도 한참 앳된 소녀였다. 소녀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저 먼 곳을 쳐다보며 속삭이 듯 작은 목소리로, 마을에서의 마지막 날이 어땠는지 이야기했다.
새벽 동이 틀 무렵, 그녀는 가족이 마실 물을 길러 나갔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민병조직이 들이닥쳐 집 안이 온통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아버지와 오빠들이 죽어 있었고 엄마와 여동생들은 잔뜩 겁에 질려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그 장면을 이야기할 때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민병조직 무리가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처음에는 떼로 몰려들어 그녀의 몸을 멋대로 주물렀고 나중에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욕보였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는 가운데.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엄마와 동생들은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울면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소녀는 당시의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현장을 지워버리려는 듯 천천히 눈꺼풀을 내렸다. 그 참혹했던 날, 소녀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어린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지만, 껍데기만 남아 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수용소 내부의 여성과 남성 간 불합리한 차이점을 극명하게 느꼈다. 남자들은 완전히 힘이 빠지고 무력한 모습이었다. 그와 반대로 여자들은 어디를 가나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식수를 길어오고, 땔감을 줍고, 요리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임시 변소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땅을 파고, 심지어 벽돌을 만들기도 했다. 끔찍한 내란을 직접 경험한 것은 여자들도 똑같지만, 남자에 비해 강한 회복력을 가진 것 같았다.
‘그래, 사는 게 정말 힘들다. 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으냐’하며 이를 악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들이 느꼈던 엄청난 고통이 어느새 그래도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강인한 다짐으로 바뀐 것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해 유니세프 직원들과 이야기해보았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남자들은 공포의 희생양이 되었고, 또한 가장이라는 문화적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다고 한다. 다르푸르의 관습으로는 남자들은 자기 가족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치심에 빠져 저렇듯 무기력해진 것이다.

수용소를 막 떠나려는 참에 머리에 오렌지색 스카프를 두른 한 나이 든 여자가 나를 보며 이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긴히 할 얘기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확히 몇 살인지는 몰라도 등이 굽고 치아가 많이 빠진 것으로 보아 못해도 쉰 살은 넘은 것 같았다. 울퉁불퉁 일그러진 손가락 마디, 깡마른 체구를 보니 분명 영양실조에 걸린 모습이었다. 커다란 숄 사이로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내 손을 잡더니 자신의 움푹 파인 뺨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내 손에 입을 맞추었다.
“고마워요.” 그 노인은 분명하게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고국에 돌아가면 여러분이 우리 생명의 은인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전해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가가 뜨거워졌고,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녀의 메시지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손가락 끝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내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듯했다.
나는 최대한 마음을 추스르고 그녀의 말에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애썼다.
“고마운 건 저예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저희가 무엇을 했는지 직접 확인하게 해주셔서 고맙고,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렇지만 괜한 부담은 가지지 말아주세요, 절대로요. 오히려 저희는 사과를 해야 해요. 여러분이 이렇게 고통받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냈다니…, 저희 잘못이 큽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특권을 안고 태어났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특정한 환경을 선택해서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 지독한 가난, 허름한 수용소촌, 더욱이 잔혹한 행위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곳에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자체가 특권을 타고났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토록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한 채 자기 삶을 사는 데만 급급한 걸까? 우리는 타인에게 공감하고 동정심을 느낄 만큼 성숙한 인격체가 아닌가. 그런데도 왜 우리는 국제적인 힘의 변방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어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무 불만 없이 살아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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