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석(45) 감독의 영화 ‘변호인’(양우석 감독, 위더스필름 제작)은 개봉일이 확정되면서 본격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고(故) 노무현 전(前) 대통령의 부림 사건을 모티브로 ‘변호인’은 1980년대 초 부산을 배경으로 돈 없고, 배경 없고, 가방끈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의 이야기를 그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변호인’이 빠른 속도로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하면서 그 열기는 더욱 더 뜨거워지고 있다. 식어야 될 열기가 어쩐지 수그러들 기운을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이상 현상이다.
1000만 명의 관객을 돌파할 그 순간에도 양우석은 담담한 모습이었다. 마치 관객 100명을 동원한 감독처럼 표정에는 웃음이 묻어나지를 않았다. 이상했다. 도대체 이건 무슨 일일까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며 어느 정도 양우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좋기보다는 그저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영화를 만들고 개봉시키기까지 얼마나 마음 졸이며 힘들어했을지 그 마음이 어느 정도 전해졌다.
◆ “영화 시작부터 오해... 긴장감 커”
양우석은 10년 전부터 ‘변호인’을 준비해왔다. 노무현의 순진한 모습, 달려 나가는 우직한 모습들을 보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료도 많이 모았다. 꼭 영화화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차곡차곡 쌓아왔다. 영웅적인 모습을 담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당장 몇 시간, 몇 달 동안은 분노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겠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양우석은 몇 년, 그리고 평생에 걸쳐 지속됐던 그 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양우석은 “영웅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종의 성찰이다. 그걸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 분이 대통령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 그 분이 살아있는 상황에서는 영화가 될 수 없겠구나. 30년 후에나 만들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이사를 갈 때 보면 물건이 하나씩 없어지잖아요. 저도 그 때 스크랩 북 많이 버렸어요. 컴퓨터를 바꿀 때 마다 자료를 옮겨야 되는데 ‘이걸 왜 해야 될까’ 그런 생각도 들고. 많이 사라졌죠. 자료가. 그런데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고 이제는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 친구들에게 ‘앞 세대들은 이랬다. 훨씬 더 힘들었다. 포기하지 말자’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시작됐다. ‘변호인’이 그렇게 시작을 하는 동안 많은 시선들이 쏟아졌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이미 오해가 시작됐고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시나리오가 나와 있는 상태에서 조금씩 각색이 됐지만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양우석 역시 정말 만들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긴장감이 몰려왔다. 이해와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할까, 영화를 만든 의도를 상당 부문 빗겨나가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컸다.
“자유민주주의잖아요.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시대니까. 댓글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요. 중요한 건 이 영화를 안 좋게 본 사람이 적다는 거였어요. 무대 인사를 하러 갔는데 가족 단위로 오는 분들이 많았어요. 3대가 어우러진 집도 있었고요. 세대를 아울러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점이 통한 것 같아요. 사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쉽지가 않거든요. ‘변호인’이 가족 간의 소통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다른 영화에서는 흔치 않은 그런 거요. 그런 면에서는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 “마지막 장면, 최선의 선택”
이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송강호를 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구보다 송우석에 가까운 그의 비주얼과 연기는 탄성을 이끌어낸다. 특성상 세련되지 않아야 되는 영화였기에 더욱 딱 맞는 옷이 될 수 있었다. “세련되면 안 된다. 선동 영화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고전 영화처럼 투박하게 주인공을 쫓아갔다. 모티브가 된 노무현은 노무현, 그리고 송우석은 송우석. 송강호를 보며 송우석을 이해하고 모티브를 생각하게 된다. 중첩된 레이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송강호의 힘이 대단히 컸다.” 양우석의 말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송강호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배우예요. 해외에서도 송강호라는 배우에게 갖는 관심은 대단하잖아요. 처음 송강호 씨를 만났을 때는 이미 시나리오를 본 상태였어요. 고민을 해보고 답을 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관객의 신뢰를 많이 받고 있는 배우이지만 투자 배급사에서도 상당한 신뢰를 가지고 있는 배우예요. 송강호 씨가 선택한 뒤로는 쉽게 결정을 할 수 있었죠. 정말 다행히도 오달수 김영애 이성민 곽도원 씨 등 이름만 들어도 헉 소리 나는 배우들이 작은 역할에도 하겠다고 해주셨어요. 감사하다고 해주셨어요. 정말 행운이었죠.”
누군가는 그렇게 묻는다. 영화가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 하냐고. 양우석은 단호하게 “없다”고 답했다. “아주 가끔은 하는 것 같은데 바람이다. 도움은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껏 말해 왔듯이 어떤 목소리도 쉽게 낼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변호인’의 마지막 장면은 큰 의미를 가졌다. 결말에 대한 의견이 많이 갈렸지만 양우석의 입장에서는 최선이었다. 노무현의 분노는 성찰을 통해 몇 년간 지속됐고, 그 신념이 공감을 이끌어냈다. 양우석은 그 부분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제일 처음 앞에 나선 사람을 보며 대단하다고 느끼죠. 그런데 그 순간뿐일 수도 있어요. 마음이. 그런데 7~8년 뒤에도 그 분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게 아닐까요? 지금은 변호사가 많지만 당시에만 해도 변호사가 적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신에 자막을 넣었어요. 누구는 재판에 갔을 것이고, 또 다른 이는 볼일이 있었겠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재판에 참여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었다는 걸, 지지를 얻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죠.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한국경제TV 최민지 기자
min@wowtv.co.kr
1000만 명의 관객을 돌파할 그 순간에도 양우석은 담담한 모습이었다. 마치 관객 100명을 동원한 감독처럼 표정에는 웃음이 묻어나지를 않았다. 이상했다. 도대체 이건 무슨 일일까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며 어느 정도 양우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좋기보다는 그저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영화를 만들고 개봉시키기까지 얼마나 마음 졸이며 힘들어했을지 그 마음이 어느 정도 전해졌다.
◆ “영화 시작부터 오해... 긴장감 커”
양우석은 10년 전부터 ‘변호인’을 준비해왔다. 노무현의 순진한 모습, 달려 나가는 우직한 모습들을 보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료도 많이 모았다. 꼭 영화화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차곡차곡 쌓아왔다. 영웅적인 모습을 담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당장 몇 시간, 몇 달 동안은 분노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겠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양우석은 몇 년, 그리고 평생에 걸쳐 지속됐던 그 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양우석은 “영웅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종의 성찰이다. 그걸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 분이 대통령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 그 분이 살아있는 상황에서는 영화가 될 수 없겠구나. 30년 후에나 만들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이사를 갈 때 보면 물건이 하나씩 없어지잖아요. 저도 그 때 스크랩 북 많이 버렸어요. 컴퓨터를 바꿀 때 마다 자료를 옮겨야 되는데 ‘이걸 왜 해야 될까’ 그런 생각도 들고. 많이 사라졌죠. 자료가. 그런데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고 이제는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 친구들에게 ‘앞 세대들은 이랬다. 훨씬 더 힘들었다. 포기하지 말자’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시작됐다. ‘변호인’이 그렇게 시작을 하는 동안 많은 시선들이 쏟아졌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이미 오해가 시작됐고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시나리오가 나와 있는 상태에서 조금씩 각색이 됐지만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양우석 역시 정말 만들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긴장감이 몰려왔다. 이해와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할까, 영화를 만든 의도를 상당 부문 빗겨나가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컸다.
“자유민주주의잖아요.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시대니까. 댓글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요. 중요한 건 이 영화를 안 좋게 본 사람이 적다는 거였어요. 무대 인사를 하러 갔는데 가족 단위로 오는 분들이 많았어요. 3대가 어우러진 집도 있었고요. 세대를 아울러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점이 통한 것 같아요. 사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쉽지가 않거든요. ‘변호인’이 가족 간의 소통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다른 영화에서는 흔치 않은 그런 거요. 그런 면에서는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 “마지막 장면, 최선의 선택”
이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송강호를 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구보다 송우석에 가까운 그의 비주얼과 연기는 탄성을 이끌어낸다. 특성상 세련되지 않아야 되는 영화였기에 더욱 딱 맞는 옷이 될 수 있었다. “세련되면 안 된다. 선동 영화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고전 영화처럼 투박하게 주인공을 쫓아갔다. 모티브가 된 노무현은 노무현, 그리고 송우석은 송우석. 송강호를 보며 송우석을 이해하고 모티브를 생각하게 된다. 중첩된 레이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송강호의 힘이 대단히 컸다.” 양우석의 말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송강호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배우예요. 해외에서도 송강호라는 배우에게 갖는 관심은 대단하잖아요. 처음 송강호 씨를 만났을 때는 이미 시나리오를 본 상태였어요. 고민을 해보고 답을 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관객의 신뢰를 많이 받고 있는 배우이지만 투자 배급사에서도 상당한 신뢰를 가지고 있는 배우예요. 송강호 씨가 선택한 뒤로는 쉽게 결정을 할 수 있었죠. 정말 다행히도 오달수 김영애 이성민 곽도원 씨 등 이름만 들어도 헉 소리 나는 배우들이 작은 역할에도 하겠다고 해주셨어요. 감사하다고 해주셨어요. 정말 행운이었죠.”
누군가는 그렇게 묻는다. 영화가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 하냐고. 양우석은 단호하게 “없다”고 답했다. “아주 가끔은 하는 것 같은데 바람이다. 도움은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껏 말해 왔듯이 어떤 목소리도 쉽게 낼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변호인’의 마지막 장면은 큰 의미를 가졌다. 결말에 대한 의견이 많이 갈렸지만 양우석의 입장에서는 최선이었다. 노무현의 분노는 성찰을 통해 몇 년간 지속됐고, 그 신념이 공감을 이끌어냈다. 양우석은 그 부분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제일 처음 앞에 나선 사람을 보며 대단하다고 느끼죠. 그런데 그 순간뿐일 수도 있어요. 마음이. 그런데 7~8년 뒤에도 그 분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게 아닐까요? 지금은 변호사가 많지만 당시에만 해도 변호사가 적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신에 자막을 넣었어요. 누구는 재판에 갔을 것이고, 또 다른 이는 볼일이 있었겠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재판에 참여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었다는 걸, 지지를 얻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죠.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한국경제TV 최민지 기자
min@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