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터(printer), 불가능의 영역에 도전한다

입력 2014-02-25 10:16   수정 2014-02-25 17:36


어린 시절, 점토로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 만들기에 도전했다. 신라 시대의 문화유산을 직접 만들어 보고자 하는 시도는 몇 시간에 걸친 좌절과 함께 소박한(?) 결과물로 끝났다.
실제 탑의 사진을 보고, 위층과 아래층의 비율까지 재 가며 똑같이 재현하려고 애를 썼지만 초등학생의 손끝은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20여 년 뒤인 지금, 3D 프린터라는 `재주꾼`이 등장해 어린 시절의 소망에 실현 가능성을 더해 주고 있다.
3D 프린터란, 말 그대로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을 프린트한다는 프린터이다. 종이에 평면적인 인쇄만을 하던 프린터가 입체적인 물건까지 만들 수 있게 진화한 것이다. 석가탑과 다보탑도 3D 모델링만 있으면 쉽게 뽑아낼 수 있다.
3D 프린터라는 용어를 낯설어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생각보다 3D 프린터는 다양한 방면에서 이미 재주를 부리고 있다. 최근 등장한 3D 프린터의 혁혁한 성과들을 모아 봤다.
★`우리집 DIY 가구` 3D 프린터로 뽑았지~


흔히 DIY 가구라고 하면 `뚝딱뚝딱`을 연상한다. 기존의 DIY 가구는 목재나 플라스틱 등 가구 소재를 직접 사서 조립하고, 못을 박아 땀 흘리며 완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옛말이 될지도 모른다. 독일의 3D 프린터 회사 빅렙은 최근 가로, 세로, 높이 100×114.7×118.8 센티미터의 가구를 찍어낼 수 있는 3D 프린터 `빅렙 원`을 선보였다. 빅렙 측은 빅렙 원의 홍보를 위해 홈페이지에 직접 가구를 찍어내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서는 이 신기한 프린터가 우아하면서도 표면의 무늬부터 아주 복잡한 오렌지 컬러의 탁자를 상판부터 차례차례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곡선이 유려한 탁자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빅렙에 따르면 가구를 만드는 3D 프린터인 만큼, 다양한 질감의 재료 9가지를 골라 다양한 소재로 DIY 가구를 만들 수 있다. 3D로 디자인만 하면 프린터가 가구를 뽑아 주니, 조금만 기술을 배우면 집안 공간과 취향을 모두 만족시키는 가구를 산다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손상받은 뼈까지 복원한다

`3D 프린터`라는 말에 시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의료`이다. 그만큼 3D 프린터는 의료 분야에 무궁무진한 응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임플란트, 의족, 보청기 제작 등 수많은 분야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이 신개념 안면 조소술인 `3D FIT`이다.
3D FIT은 3D 프린터 기술을 접하기 어려운 국내에서 이미 개발돼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는 기술이다. 일반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이 많은 미용 분야여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사람의 뼈는 하나하나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조각품이다. 타고난 그대로의 뼈든, 불의의 사고로 손상을 입은 뼈든 남과 완전히 다른 자기만의 윤곽이라는 점은 똑같다.
기존의 안면골 복원 수술에서는 이처럼 남과 완전히 다른 개인의 뼈 모양에 딱 맞는 보형물을 만들기가 불가능했다. 환자의 뼈 모양에 최대한 맞춰 의사가 자신의 감과 경험을 믿고 `어림짐작 조각`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같은 수술은 손상받기 이전의 모양으로 완전히 복원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의 불만족은 물론 보형물의 이탈 등 심각한 불안요소를 안고 있었다.
3D 프린터를 이용한 `3D FIT`은 이와 같은 불안요소를 완전히 없앴다. 환자의 CT 자료를 그대로 3D 모델링하고, 이를 3D 프린터로 뽑아내 환자의 골격을 눈 앞에 그대로 재현한다.
이 골격에 맞춰 보형물을 제작하면 실제 수술에서도 이탈이나 모양에 대한 걱정 없이 환자에게 딱 맞는 보형물을 만들 수 있다. 물론, 환자가 미리 보형물을 보고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으니 수술 실패의 위험은 더 적어진다.

★음악만 있으면 레코드판도 `프린트`

3D 프린터가 찍어낼 수 있는 것은 `유형의` 물건들뿐이 아니다. 형태가 없는 음악마저도 3D 프린터의 대상이다. 지난해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세계 최초의 3D프린팅 LP 판을 제작하는 데 성공해 화제를 모았다.
아만다 가세이(Amanda Ghassaei)라는 이름의 이 엔지니어는 음악 파일을 LP 판 만들기에 필요한 도면으로 변환해 주는 소프트웨어를 먼저 만들고, 이를 통해 제작한 도면을 스트라타시스의 고해상도 3D 프린터로 찍어내 LP 판을 제작했다.
지난해 말에는 이 방법에 기초해 영국의 록 가수 켈리 오케릭(Kele Okereke)이 3D 프린터로 제작된 LP 판을 내놓는다고 알려져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음악만 있으면 소프트웨어를 통한 변환으로 LP 판을 제작할 수 있는 이 기술에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 아티스트들에게 소프트웨어와 장비가 보급된다면 정식 앨범 제작보다 쉽게 자기만의 앨범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곡을 골라 레코드를 만드는 것도 손쉬워진다.
그러나 기술이 성공적으로 보급될 경우 저작권이 있는 음원을 무분별하게 LP 판으로 찍어내 남용할 가능성도 있어, 앞으로의 대비책 또한 함께 발전해야 하는 상황이다.(사진=빅렙, 인스트럭터블)
한국경제TV 이예은 기자
yeeuney@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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