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이사 연봉 공개` 오너경영인 모럴헤저드 비난 여론 `일파만파`
구속수감 중에도 수백억원·적자 계열사서수십억··"옥중경영이 대세?"
주요 대기업 등기 임원들의 지난해 연봉이 공개되면서 이들이 받는 보수 규모가 적정한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일부 오너 경영인들의 경우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직원 연봉의 몇백배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비난여론이 일고 있다.
지난해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등기 임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SK와 SK이노베이션, SK C&C, SK하이닉스 등 4개 계열사 등기이사로 재직하면서 총 301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계열사 실적 호전으로 지난해 받은 상여금이 200억원대에 달해 보수가 늘어났다.
최 회장이 올해 주총에서 등기이사직에서 모두 물러나면서 앞으로 최 회장의 보수는 공개되지 않는다.
비난 여론이 일자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올해 월급을 한 푼도 받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등기이사직에서는 물러나지만 회장 직함을 유지하는데 따른 기본급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현재 수감중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지난해 비리 혐의로 구속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131억원의 고액연봉을 받았다.
지난 2012년 8월 구속되고 병원에 입원하면서 정상적 경영활동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해 한화건설 52억5200만원, 한화케미칼(009830) 26억1200만원, ㈜한화 22억5200만원, 한화L&C와 한화갤러리아 각각 15억2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1천600억원대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기소돼 지난달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보는 눈도 곱지 않다.
이 회장은 작년 CJ주식회사, 제일제당, 오쇼핑, CGV 등 4개 계열사에서 총 47억5천400만원의 연봉을 챙겼다.
또 이 회장과 같은 혐의로 올 1월 기소된 조석래 회장이 39억여원의 연봉을 받은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은 `적자의 늪`에 빠졌는데 경영자는 거액의 `연봉 잔치`를 벌인 곳도 있다.
대표적으로 GS그룹의 주력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GS건설은 작년 9천373억원의 영업적자를 냈지만 이 회사의 경영자인 허창수 회장은 17억2천만원의 연봉을 챙겼다.
㈜GS를 포함한 허 회장의 총연봉은 38억9천여만원으로 이번에 연봉이 공개된 전체 기업인 가운데 19위에 올랐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등기이사 연봉 공개를 놓고 재벌그룹 오너들의 모럴해저드와 법의 허술함이 드러났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여론에 떠밀려 연봉 5억원 이상 받는 대기업 등기임원을 사업보고서에 공개하도록 자본시장법을 개정했지만 여기에는 경영성과 측정 기준과 보수 결정 주체 등에 대한 사항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기업이 공개한 성과보고서에는 연봉을 받는 임원의 이름과 액수만 기재됐으며 이 보수가 어떤 식으로 책정됐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김상조 경제개혁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이 총수의 의중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등기임원의 연봉을 책정해왔다는 사실이 이번에 새삼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최태원 회장이 열심히 경영활동을 해 회사 발전에 기여했다면 1천억원을 받아도 문제될 게 전혀 없지만 현실이 그런지 곱씹어봐야 한다"며 "선진국처럼 객관적인 연봉 책정 기준 등을 법 시행령에 못박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원도 "이사회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은 사람이 참석한 사람과 똑같은 보수를 받아간다면 의의를 제기될 수 밖에 없다"며 "연봉 공개에 그치지 말고 연봉 책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의구심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등기임원의 연봉 공개를 의무화하지 않은 부분도 현실을 도외시한 법의 맹점으로 지적받는다.
최태원 회장은 대법원 확정 판결 직후 계열사 등기이사에서 모두 사퇴했고 김승연 회장도 7개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손을 뗐다. 이에 따라 당장 내년부터 이들은 연봉 공개 대상에서 빠진다.
법적인 책임이 없는 미등기임원을 유지하고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현대가인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 등은 이번 연봉 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