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하고 찌질한 남자에서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배우 정재영이 이번엔 아버지로 돌아왔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피해자에서 살인자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연기했다. 여중생을 죽인 18세 소년들, 그 소년을 죽인 여중생의 아버지. 아버지의 살인은 정당한가? 누구도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들고.
일본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방황하는 칼날`(이정호 감독, 에코필름 제작)은 한 순간에 딸을 잃고 살인자가 되어버린 아버지 상현(정재영), 그리고 그를 잡아야만 하는 형사 억관(이상민)의 가슴 시린 추격을 그린 드라마다. 평범한 아버지에서 딸의 죽음으로 인해 살인자가 되어버린 이상현을 연기한 정재영과 이상민, 서준영 등 배우들의 연기가 빛난다.
◆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영화
원작이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정재영은 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미 시나리오를 먼저 읽었고, 원작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읽어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고. 그는 웃으며 “책이 두껍기도 하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사실 그가 연기한 상현은 쉽지 않은 캐릭터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잃고 살인자가 되는 역할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캐릭터 자체가 그렇게 어렵거나 이럴 줄 몰랐어요. 어떻게 보면 밋밋한 캐릭터죠. 별로 하는 것 없이...화끈한 복수도 아니고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는 인물이에요. 그런데 영화를 막상 들어가서 찍으려고 하니까 어렵더라고요.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어떤 심정일까 표현하려고 하니까. 자세히 생각을 해보니까 점점 어려웠어요. 쉽게 들어갔다가 어렵게 나왔어요. 무거운 이야기지만 뭐라고 해야 되나. 이런 것도 해봐야 되지 않나. 그런 여러 가지 생각들이었어요. 실화를 바탕으로 했나 싶을 만큼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에요.”
딸의 죽음 앞에 “자식 잃은 부모에게 남은 인생이란 없습니다”라는 카피처럼 상현은 절망했다. 정재영은 상현을 연기하며 대관령의 추위에 고생하기도 했고, 몸에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맨 몸으로 창틀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그렇게 육체적으로 고생한 영화지만, 그는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힘들었음을 털어놨다.
“육체적인 것보다 힘들었던 건 정신적인 것이죠. 영화의 마지막 부분인 강릉역 장면이 특히 힘들었어요. 촬영장 자체가 어수선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고민됐죠. 여러 가지가 겹치니까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보통 촬영장에 가면 감독님이랑 배우들 앉는 의자가 있어요. 그런데 그 장면을 찍을 땐 그 근처에 가본 적이 없어요. 구석에 앉아 있었어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 "이성민 형, 눈빛만 봐도 알고 받아줘"
정재영은 이번 영화를 찍은 이정호 감독에 대해 “의외성이 많고 배우가 새로운 걸 해볼 수 있도록 기다려줄 줄 아는 감독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상현을 쫓는 형사 억관 역을 맡은 배우 이성민에 대해 “성민이형을 만나면 반갑고 편했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알고 다 받아주는데 정말 좋았다”라고 전했다. 특히 억관 역이 탐나기도 했다고.
“시나리오를 읽어봤을 때도 탐났죠. 시나리오 마지막에 짧게 형을 살고 나오는 두식이를 억관이 찾아가요. 그리고 ‘끝까지 지켜보겠다’라며 일갈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시나리오에서 멋있는 장면이었죠. 그런데 그 이야기는 편집됐어요. 지금이 더 세련된 것 같아요. 만약 그 장면이 들어갔다면 직접적이고 뻔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더라고요.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고...억관 역은 촌스러운데 멋있는 것 같아요.”
정재영은 상현과 정재영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상현은 정재영스러운 게 많다. 제가 생각해 봤을 때 상현이라면, 어떤 게 진짜 같은 감정일까. 제가 공감해야지 할 수 있으니까. 저에게도 다양한 면이 있고 나약한 정재영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현실이 씁쓸하더라. 결국 상현은 둘을 죽인, 정상참작이 되는 비운의 아버지. 살인자이지만 `이해가 되는 살인자`라는 게 붙어가지 않나. 하지만 결국 어떻게도 해소되지 않을 거다”라고 말했다.
“상현이랑 감정은 비슷한데 방법은 다를 것 같아요. 제가 한다고 마음을 먹으면 조금 더 이성적으로 잔인하게 복수할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시작과 최후의 선택은 비슷하지 않을까요? 결국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복수를 하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딸한테는 미안하고 사회적으로도 그렇고...결국은 허무할 것 같아요. 그런 외국 영화도 있어요. 부유한 아빠의 외동딸을 미친 놈이 성폭행을 하고 죽여서 버려요. 이 아빠가 범인을 잡아서 펜션에 가둬놓고 고문해요. ‘세븐데이즈’라는 영화인데, 7일 동안 고문을 해요. 해소가 될 때까지. 아이러니하게도 결국엔 해소가 안돼요. 어떤 방식으로도 해소가 안 되겠죠. 딸을 잃은 사람에게...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죠.”
◆ 예능 출연? `런닝맨` 나가고 싶기도 했지만...
영화 ‘열한시’ ‘플랜맨’ ‘방황하는 칼날’ ‘역린’으로 연달아 관객을 만나는 정재영은 영화를 선택할 때 ‘시나리오, 캐릭터, 감독’ 모두 중요하지만 캐릭터보다는 시나리오와 감독을 본다고. “항상 첫 번째는 시나리오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그렇다. 작품은 별론데 캐릭터가 좋아서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캐릭터만으로는 승부할 수가 없으니까”라고 설명했다. 또한 차기작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백수`라며 웃던 정재영은 평상시엔 지겨워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
“집에서 쉴 때는 텔레비전도 보고 영화도 보고 새로 나온 다큐멘터리도 봐요. 책은 잘 안 읽어요.(웃음) 가끔씩 지인들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죠. 드라마는 잘 못 챙겨보는 편이에요. 연속해서 봐야 하는데 영화 촬영하고 이러다보면 쉽지 않더라고요. 미드(미국 드라마)도 가끔 보기도 해요. 케빈 스페이시가 나오는 ‘하우스 오브 카드’를 봤는데 정말 재밌더라고요. 미드 좋아하시면 꼭 한 번 보세요.”
정재영에게 예능 출연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안 나가는 버릇을 들이니까 이제 와서 나가긴 그렇다. 또 영화 연기, 본업을 잘하고 싶다. 옛날에는 애들이 좋아해서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에 나갈까 생각한 적은 있다. 하지만 체력이 뽀록날 것 같다. 역효과가 날 것 같기도 하고”라며 손사래를 쳤다. 마지막으로 정재영은 ’방황하는 칼날‘과 ’역린‘이 모두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감추지 않았다. 또 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자신의 연기를 펼친 정재영은 질리지 않는 배우고 되고 싶다고.
“‘방황하는 칼날’ ‘역린’ 두 영화 모두 잘됐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못해 본 캐릭터가 많아요. 질리지 않는 배우.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신선하고 기대가 되는 배우가 되고 싶죠. 잠깐 한 눈을 팔더라도 다시 찾게 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사진=영화 `방황하는 칼날` 스틸컷)
한국경제TV 양소영 기자
sy7890@bluenews.co.kr
그는 이번 영화에서 피해자에서 살인자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연기했다. 여중생을 죽인 18세 소년들, 그 소년을 죽인 여중생의 아버지. 아버지의 살인은 정당한가? 누구도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들고.
일본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방황하는 칼날`(이정호 감독, 에코필름 제작)은 한 순간에 딸을 잃고 살인자가 되어버린 아버지 상현(정재영), 그리고 그를 잡아야만 하는 형사 억관(이상민)의 가슴 시린 추격을 그린 드라마다. 평범한 아버지에서 딸의 죽음으로 인해 살인자가 되어버린 이상현을 연기한 정재영과 이상민, 서준영 등 배우들의 연기가 빛난다.
◆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영화
원작이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정재영은 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미 시나리오를 먼저 읽었고, 원작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읽어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고. 그는 웃으며 “책이 두껍기도 하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사실 그가 연기한 상현은 쉽지 않은 캐릭터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잃고 살인자가 되는 역할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캐릭터 자체가 그렇게 어렵거나 이럴 줄 몰랐어요. 어떻게 보면 밋밋한 캐릭터죠. 별로 하는 것 없이...화끈한 복수도 아니고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는 인물이에요. 그런데 영화를 막상 들어가서 찍으려고 하니까 어렵더라고요.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어떤 심정일까 표현하려고 하니까. 자세히 생각을 해보니까 점점 어려웠어요. 쉽게 들어갔다가 어렵게 나왔어요. 무거운 이야기지만 뭐라고 해야 되나. 이런 것도 해봐야 되지 않나. 그런 여러 가지 생각들이었어요. 실화를 바탕으로 했나 싶을 만큼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에요.”
딸의 죽음 앞에 “자식 잃은 부모에게 남은 인생이란 없습니다”라는 카피처럼 상현은 절망했다. 정재영은 상현을 연기하며 대관령의 추위에 고생하기도 했고, 몸에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맨 몸으로 창틀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그렇게 육체적으로 고생한 영화지만, 그는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힘들었음을 털어놨다.
“육체적인 것보다 힘들었던 건 정신적인 것이죠. 영화의 마지막 부분인 강릉역 장면이 특히 힘들었어요. 촬영장 자체가 어수선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고민됐죠. 여러 가지가 겹치니까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보통 촬영장에 가면 감독님이랑 배우들 앉는 의자가 있어요. 그런데 그 장면을 찍을 땐 그 근처에 가본 적이 없어요. 구석에 앉아 있었어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 "이성민 형, 눈빛만 봐도 알고 받아줘"
정재영은 이번 영화를 찍은 이정호 감독에 대해 “의외성이 많고 배우가 새로운 걸 해볼 수 있도록 기다려줄 줄 아는 감독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상현을 쫓는 형사 억관 역을 맡은 배우 이성민에 대해 “성민이형을 만나면 반갑고 편했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알고 다 받아주는데 정말 좋았다”라고 전했다. 특히 억관 역이 탐나기도 했다고.
“시나리오를 읽어봤을 때도 탐났죠. 시나리오 마지막에 짧게 형을 살고 나오는 두식이를 억관이 찾아가요. 그리고 ‘끝까지 지켜보겠다’라며 일갈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시나리오에서 멋있는 장면이었죠. 그런데 그 이야기는 편집됐어요. 지금이 더 세련된 것 같아요. 만약 그 장면이 들어갔다면 직접적이고 뻔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더라고요.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고...억관 역은 촌스러운데 멋있는 것 같아요.”
정재영은 상현과 정재영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상현은 정재영스러운 게 많다. 제가 생각해 봤을 때 상현이라면, 어떤 게 진짜 같은 감정일까. 제가 공감해야지 할 수 있으니까. 저에게도 다양한 면이 있고 나약한 정재영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현실이 씁쓸하더라. 결국 상현은 둘을 죽인, 정상참작이 되는 비운의 아버지. 살인자이지만 `이해가 되는 살인자`라는 게 붙어가지 않나. 하지만 결국 어떻게도 해소되지 않을 거다”라고 말했다.
“상현이랑 감정은 비슷한데 방법은 다를 것 같아요. 제가 한다고 마음을 먹으면 조금 더 이성적으로 잔인하게 복수할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시작과 최후의 선택은 비슷하지 않을까요? 결국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복수를 하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딸한테는 미안하고 사회적으로도 그렇고...결국은 허무할 것 같아요. 그런 외국 영화도 있어요. 부유한 아빠의 외동딸을 미친 놈이 성폭행을 하고 죽여서 버려요. 이 아빠가 범인을 잡아서 펜션에 가둬놓고 고문해요. ‘세븐데이즈’라는 영화인데, 7일 동안 고문을 해요. 해소가 될 때까지. 아이러니하게도 결국엔 해소가 안돼요. 어떤 방식으로도 해소가 안 되겠죠. 딸을 잃은 사람에게...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죠.”
◆ 예능 출연? `런닝맨` 나가고 싶기도 했지만...
영화 ‘열한시’ ‘플랜맨’ ‘방황하는 칼날’ ‘역린’으로 연달아 관객을 만나는 정재영은 영화를 선택할 때 ‘시나리오, 캐릭터, 감독’ 모두 중요하지만 캐릭터보다는 시나리오와 감독을 본다고. “항상 첫 번째는 시나리오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그렇다. 작품은 별론데 캐릭터가 좋아서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캐릭터만으로는 승부할 수가 없으니까”라고 설명했다. 또한 차기작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백수`라며 웃던 정재영은 평상시엔 지겨워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
“집에서 쉴 때는 텔레비전도 보고 영화도 보고 새로 나온 다큐멘터리도 봐요. 책은 잘 안 읽어요.(웃음) 가끔씩 지인들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죠. 드라마는 잘 못 챙겨보는 편이에요. 연속해서 봐야 하는데 영화 촬영하고 이러다보면 쉽지 않더라고요. 미드(미국 드라마)도 가끔 보기도 해요. 케빈 스페이시가 나오는 ‘하우스 오브 카드’를 봤는데 정말 재밌더라고요. 미드 좋아하시면 꼭 한 번 보세요.”
정재영에게 예능 출연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안 나가는 버릇을 들이니까 이제 와서 나가긴 그렇다. 또 영화 연기, 본업을 잘하고 싶다. 옛날에는 애들이 좋아해서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에 나갈까 생각한 적은 있다. 하지만 체력이 뽀록날 것 같다. 역효과가 날 것 같기도 하고”라며 손사래를 쳤다. 마지막으로 정재영은 ’방황하는 칼날‘과 ’역린‘이 모두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감추지 않았다. 또 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자신의 연기를 펼친 정재영은 질리지 않는 배우고 되고 싶다고.
“‘방황하는 칼날’ ‘역린’ 두 영화 모두 잘됐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못해 본 캐릭터가 많아요. 질리지 않는 배우.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신선하고 기대가 되는 배우가 되고 싶죠. 잠깐 한 눈을 팔더라도 다시 찾게 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사진=영화 `방황하는 칼날` 스틸컷)
한국경제TV 양소영 기자
sy7890@blu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