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선조 30년) 9월 16일. 명량에서 단 12척으로 330척의 왜선을 무찌른 전투가 있었다.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의 대표적 전투로 거북선 없이 출전해 커다란 승리를 거둔 전쟁이다. 명량에서 패배했다면 일제 식민지가 300여 년 앞당겨졌을 수 있다는 의견이 존재할 정도로 조선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이다.
조선의 역사를 바꿨다고 말 할 수 있는 ‘명량대첩’에 이순신 장군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존경할 위대한 장군이기에,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역할은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였다. 그리고, 배우 생활 26년차에 접어든 최민식이 이순신으로 분했다. “함부로 상상할 수 있는 느낌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배우 최민식. 그는 어떻게 완벽한 이순신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걸까.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순신 장군을 꿈꿨지만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최종병기 활’을 탄생시킨 김한민 감독이 ‘명량’을 기획하고 배우 최민식에게 출연을 의뢰했을 때만 해도 그는 “은연중에 이순신 장군에 도전하고 싶은 막연한 꿈은 있었었죠. 기대가 됐어요. 처음엔 그랬죠”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근데 이걸 영화로 한다고 하는데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자! 할게’ 라는 말이 선뜻 나오는 게 아니고 ‘이거를?’ 싶었어요. 한 편의 영화가 기획되고 만들어지는데, 감독이 명량해전을 영화로 구현해 보고 싶다고 하는데 ‘와 죽이겠다’가 아니라 CG, 시간, 돈이 생각나더라고요. 제작사도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도 취지가 너무 좋더라고요. 이순신 장군, 그리고 명량대첩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데 잘 못 하면 욕만 먹는 거잖아요. 부담감이 있었죠”
오랜 배우 생활을 했고 탄탄한 연기력으로 국민 배우 수식어를 달기도 했지만 최민식에게도 ‘이순신’의 존재는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다. 영상미, 연기력 등 영화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 가운데 스토리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명량’의 전개는 온 국민이 알고 있다. 심지어 결말까지 뻔한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 최민식은 단번에 ‘명량’ 출연을 결정지었다.
“이순신 장군을 이해하는 건 말도 안 돼요”
“‘명량’을 통해 처음 경험해 보는 것들이 많았어요. 직업이 배우고 연기하는 사람이잖아요. 허구, 사실을 떠나 재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함부로 상상할 수 있는 느낌이 아니었어요. 내가 왜 위축되고 긴장되고 강박감을 느껴야 하는지. 나이 50 넘어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진지하게 들여다봤죠. 몇 개월 서적을 읽었다고 해서 이순신 장군을 이해하는 건 말도 안 되고요. 감히 알아간다는 것도 송구스럽지만 남들이 아는 수준 정도로 알게 된 거죠. 하지만 그 정도로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건 상당히 미흡해요. 점점 더 들여다볼수록 ‘이런 사람이 있나?’, ‘분명 영웅이 필요해서 미화한 것도 있을 거야’라고 생각도 했어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지만 이순신 장군을 연구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다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이순신 장군은 퍼펙트 하다고요”
@IMAGE5@“‘명량’ 시사회, 정말 오랜만에 긴장 되네요”
‘명량’ 언론 시사회가 열린 날, 배우 최민식은 후배 배우들과 함께 자리에 참석했다. 하지만 이날 최민식은 맘 편히 의자에 앉아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는 “아직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싶었죠. 좀 더 거리를 두고 빠져 나와서 영화를 볼 여유가 없었어요. 한 번 더 볼 생각이죠. 그때 보면 좀 더 차분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시사회에서 영화를 서서 보는 최민식의 모습은 의외였다. 89년 데뷔, 이후 완벽한 연기력으로 국민 배우가 됐고, 최민식=연기파 배우라는 것은 어느 정도 대중들도 인지하고 있다. 그런 그 역시도 “오랜만에 긴장이 됐죠. 몰래 혼자 숨어서 보고 싶은 느낌이었어요. 반응을 살피고 싶기도 했죠. 관객들이 핸드폰을 보나 안 보나. 해전 신이 영화의 반이잖아요. CG를 생각하고 연기를 한 건데, 감탄하게 됐어요. 기술적으로 부족한 면이 있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도 상당한 실력을 지녔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죠”
그는 마지막으로 데뷔 30년을 앞두고 있는 만큼 연기 생활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감히’ 접근조차 어려웠던 이순신 장군을 멋지게 표현해 내고 ‘명량’을 이끌어 간 배우 최민식은 “배우 생활. 참 그때그때 다른 거 같아요. ‘명량’을 촬영한 것도 참 인연이죠. 흐르는 대로 가고 싶어요. 원한다고 해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인연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은 ‘명량’이 잘 되는 거. 바람은 그거 하나뿐이죠”
<사진=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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