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코미디에 승부 건 ‘해적’, 무모한 혹은 과감한 도전

입력 2014-08-06 16:45  


비장한 기운이 감도는 포스터를 보고 진지한 모험극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은 코미디 장르에 딱 부합하는 영화다. 말장난부터 슬랩스틱까지 코미디 장르의 정석을 따른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겁다. 생각 없이 웃고 즐기기엔 제격이다. 여름이 아닌 추석 특수를 겨냥하더라도 이상할 것 없는 안성맞춤 가족용 영화다.

영화는 극 초반 조선건국과 위화도 회군의 서사를 끌고 와 묵직한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이 진지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조선을 건국하려는 이성계에 반기를 들고 고려 무사의 이름을 지운 채로 비장하게 산적의 길을 택한 장사정(김남길 분)은 이내 어딘가 부족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산적단 두목으로 변신해 극의 쾌활함을 불어넣는다.

‘해적’은 ‘바다로 간 산적’이라는 부제에 충실한 영화다. 코미디를 전면으로 내세운 ‘해적’은 국새를 찾기 위해 바다로 떠나는 산적단들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역할을 위임했다. 국새를 삼킨 고래를 찾아 부자가 될 심산이었으나 오로지 땅에서 나고 자란 산적단에게는 망망대해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대 해양생물에 대한 공포감이 없다. 이때 바다로 첫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인간 지침서가 돼 주는 것이 바로 철봉(유해진 분)이다.

철봉은 배 멀미 때문에 해적단을 빠져나와 산적단 막내로 투입되는 말 못할 충을 가진 인물. 손과 발을 써가며 고래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설명하는 철봉과 그런 철봉의 말을 결코 믿지 않는 오합지졸 산적단들이 처한 상황적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스크린 너머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유발한다.

이렇듯 ‘해적’은 웃음을 전면에 깔고 수많은 사건들을 나열한다. 그러나 설정에 의한 사건만이 가득할 뿐, ‘해적’에는 이야기가 부재하다. 이는 영화 완성도에 있어 결코 적지 않은 오점을 남긴다. 각기 다른 이유로 국새를 삼킨 고래를 찾으려는 해적과 산적, 조선 건국을 앞두고 국새를 도둑맞은 국가 세력, 그리고 바다를 호령할 개인의 욕망을 품은 선장까지 합세하면서 계속해 사건들이 발생하지만 이는 전체 줄기로 엮이기 보다는 전혀 다른 내용들로 충돌하며 혼란스러움을 낳는다.


낯선 바다 위에서 2% 부족한 산적단들은 크고 작은 실수들로 계속해서 웃긴 상황을 자처하지만 사건만이 있을 뿐 이들을 아우르는 결정적 이야기가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건의 발단이자 ‘해적’의 성패를 가르는 고래 CG 또한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보다는 거액을 투자한 CG 과시용 정도로만 활용된다. 극 말미에 여월(손예진 분)과 교감하는 거대 고래는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하다. 물론 이 허점들을 코미디 영화는 웃기면 장땡이라는 말로 이를 감쌀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이에 투자된 170억 상당의 거대 제작비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고의 스타이자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는 김남길이나 손예진의 존재감이 그다지 살지 못한 것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배우들이 극을 빼곡이 채우는 탓에 매력적인 인물들이 제대로 살지 못한 것 또한 아쉬움이다. 극중 가장 드라마틱한 사연을 가진 모흥갑 역의 김태우 또한 마찬가지다. ‘해적’은 결국 코미디 완급조절에 도가 튼 배우 유해진에게 전폭적으로 기대며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유해진은 이에 부응하듯 이번에도 맛깔스런 코미디 연기를 선보였다.

‘해적’은 그동안 쉬이 그려지지 않았던 해적들의 이야기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메리트를 갖는다. 한국형 어드벤처 영화를 연출한 이석훈 감독의 과감한 도전정신 또한 돋보인다. 앞서 이석훈 감독은 ‘캐리비안 해적’과 비교하는 질문에서 “우리 영화가 훨씬 더 재미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빈틈 많은 170억 상당의 대작을 마냥 끌어안는 것은 무모한 자아도취처럼 보이기도 하다. 오늘(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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