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은 ‘마음’은 나보다 뛰어난 사람 앞에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 그것은 때론 ‘질투’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질투’는 그 사람을 뛰어넘고 싶다는 마음을 부추기고 ‘성장’을 이끈다. 긍정적인 ‘질투’의 모습은 그러하다. 그릇된 ‘질투’는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이끈다. 여기 ‘질투’에 ‘속삭임’을 더해 관객 앞에 선 작품이 있다. 바로 뮤지컬 ‘살리에르’다.
뮤지컬 ‘살리에르’는 ‘살리에르’의 인생과 음악을 재조명한다. ‘살리에르’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에 가려 비운의 2인자로 낙인찍힌 궁정 악장이다. 작품은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의 음악적 대비는 물론이고 ‘카트리나’와 ‘젤라스’라는 인물을 통해 그의 ‘질투’를 증폭시킨다. 배우 최수형은 이번 공연에서 ‘살리에르’ 역을 맡았다. 8월 31일 마지막 공연을 앞둔 그와 함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운명처럼 만난 ‘살리에르’
수많은 밤을 써내려간 음표들은 어느새 마지막 악장을 채울 준비를 마쳤다. 최수형은 “굉장히 섭섭하다”라며 얼마 남지 않은 공연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뮤지컬 ‘살리에르’의 공연 기간이 짧다. 창작 초연 작품에 이 한몸 담아 함께할 수 있어 즐겁고 영광스럽다. 남은 기간 마무리를 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최수형은 뮤지컬 ‘살리에르’로 오랜만에 뮤지컬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카르멘’ 이후 5개월간의 휴식기를 거친 후 무대로 돌아왔다. 뮤지컬 ‘살리에르’는 그의 복귀작이 됐다.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그는 “작품 오디션 공고를 봤다. ‘모차르트’는 그동안 많은 작품을 통해 다뤄졌지만 ‘살리에르’는 그렇지 않다. 일단 소재도 신선했고 잘 만들어지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후 우연찮게 작품에 함께할 기회가 생겼다. ‘살리에르’ 역으로 함께하자는 제의를 받았다”라고 답했다. 그는 다른 역으로 제의가 들어와도 흔쾌히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그만큼 그에게 뮤지컬 ‘살리에르’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정말 ‘살리에르’ 역이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제작사가 ‘맞다’고 그러더라. ‘모차르트’ 역은 저에게 안 올 거라 생각했다. 물론 ‘모차르트’ 역도 저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주변 반응은 그렇지 않다. 지금이 ‘딱’ 좋은 것 같다. 처음에는 ‘젤라스’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젤라스’도 못할 것 같다. ‘젤라스’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워낙 잘해 그만큼 소화할 수 없겠더라.”
‘살리에르’는 최수형에게 딱 맞춘 옷처럼 잘 맞았다. 맞춤 옷을 입고 그는 지휘봉을 휘두르며 무대를 가득 채웠다. 호기심을 느꼈던 작품은 그에게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을 선사했다. 최수형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모차르트’가 아닌 ‘살리에르’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의 매력은 부제 ‘질투의 속삭임’과 만나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부제 ‘질투의 속삭임’에서 ‘질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했다. 대본을 보고 이 질투가 ‘살리에르’의 내면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설정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내면’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진짜 한 명의 인물로 두고 연기했다.”
뮤지컬 ‘살리에르’는 최수형에게 “정말 소중한 작품”이다. 그는 연습 때부터 한국 초연, 창작 작품을 향한 애정이 남달랐다. 두터운 애정은 작품이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확장됐다. 애정이 강한 만큼 아쉬움도 있다. 창작 초연의 경우, 모든 것이 처음이기에 아쉬운 점이 눈에 잘 띈다. 그는 “초반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라고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음악도 풍성하게 오케스트라가 있었으면’, ‘큰 극장에서 더 많은 배우가 무대에 올랐으면’, ‘댄서들이 등장해 화려한 군무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쉬움이 없다. 작품을 채워나가는 것은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아쉽다고 생각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완벽한 작품은 없고 아쉬운 부분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지금은 굉장히 만족스럽다. 제가 해야 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무대 위에서 ‘살리에르’로 살아 있다면 아쉬운 것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디테일이라든지’, ‘연기적인 부분이라든지’ 여기서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있다. 물론 제일 아쉬운 점은 다음 주면 작품이 끝난다는 사실이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는 살며시 작품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아 아쉽다는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아쉬움은 작품에 대한 애정과 비례한다. 애정이 클수록 아쉬움은 크고, 아쉬움은 더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으로 이어진다. 욕심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관객의 만족도를 상승시킨다. 이러한 점에 작품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마지막 음표를 찍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다.
최수형과 ‘살리에르’는 얼마나 닮았을까. 그는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생각은 오랜 시간 침묵을 지켰다. 침묵을 뚫고 나온 대답은 “저도 질투가 많은 편이다”였다. ‘질투’는 ‘살리에르’와 최수형을 연결 지었다. ‘살리에르’를 욕할 수 없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질투’가 우리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질투’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순간 누구도 ‘살리에르’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게 된다.
“‘살리에르’의 질투는 욕심을 넘어 광기로 표현된다. ‘살리에르’와 달리 저는 이성적인 면이 더 많다. 제가 ‘살리에르’라면 ‘모차르트’를 내 편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콜라보레이션을 했을지도 모른다. 또 ‘살리에르’ 만큼은 아니지만 음악적 열정도 굉장히 강하다. 다른 점은 ‘살리에르’는 결혼을 해서 8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저는 아직 결혼을 안 했다는 것이다.”
노력으로 빚은 음표들, 궁정 악장 ‘살리에르’
‘살리에르’의 옷을 입자 그는 전형적이고 올곧은 궁정 악장으로 변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살리에르’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묻자 그는 “실제 ‘살리에르’를 묻는 거냐, 아니면 캐릭터적인 ‘살리에르’를 묻는 거냐”라고 되물었다. 그가 해석한 ‘살리에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자 그는 거침없이 자신의 해석을 펼쳐놓았다.
“‘살리에르’에 대한 설명은 넘버 가사에도 나온다. 그는 항상 정확하게, 악보에 있는 그대로로 음악을 한다. ‘살리에르’는 악보도 규율과 형식에 맞춰 쓴다. 항상 올곧고 정직하며 노력만이 살길이라 생각한다. 나아가 그는 항상 주님에게 의지한다. 겉으로 보면 ‘살리에르’는 그런 인물이다.”
마지막에 그는 “‘살리에르’는 음악을 정말로 사랑한 사람이다”라고 정리했다.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질투한 것도, 그가 그토록 노력한 것도 모든 것이 다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과 열망 때문이었다. 최수형은 자신이 생각한 ‘살리에르’를 무대 위에서 표현하기 위해 뮤지컬 넘버 ‘노력한다면’에 집중했다.
“뮤지컬 넘버 ‘노력한다면’은 노래 자체가 ‘살리에르’의 테마처럼 느껴진다. 가사에는 ‘식음을 전폐하고 가사를 쓴다’라는 부분이 있다. 가사들을 봐도 ‘살리에르’는 정말 그랬을 것 같다. 그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노래를 부를 때 만큼은 ‘이 노래가 살리에르의 주제곡’이라고 생각하며 불렀다. 관객들에게도 이 모습이 ‘살리에르’의 진짜 모습처럼 보일 수 있도록 표현하고 있다.”
2인자의 설움, 혹은 지질함
‘살리에르 증후군’은 주변의 뛰어난 인물 때문에 느끼는 열등감, 시기, 질투심 등의 증상을 일컫는다. 이 증후군은 영화 ‘아마데우스’가 개봉한 이후 등장한 용어로 극단적인 2인자의 심리상태를 이르며 광범위하게 쓰인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살리에리’가 평생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모차르트’를 독살하고 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만큼 ‘살리에르’와 ‘모차르트’ 관계에서 ‘질투’는 빼놓을 수 없는 연결고리다.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질투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최수형은 “일단 음악적인 부분에서 질투를 느낀 것이 가장 크다”라고 답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살리에르’의 모든 것은 ‘음악’에서 시작돼 ‘음악’으로 끝났다. 그의 이름을 딴 ‘살리에르 증후군’이 등장한 이유도, 그가 ‘모차르트’를 시기한 것도 모두 다 ‘질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살리에르’와 ‘모차르트’가 살았던 시대의 음악은 굉장히 밝고, 화려하며, 스케일 또한 어마무시하다. 당시에는 ‘코드’라는 것도 없었다. 동시대를 살았던 ‘살리에르’는 궁정 음악가로 항상 점잖은 삶을 살았다. 그에 반해 ‘모차르트’는 천방지축 같다. ‘살리에르’는 수 많은 밤을 노력의 음표를 써내려 가는 데 ‘모차르트’는 술을 마시다가 영감이 떠오르며 악보를 쓴다. 그러한 부분에 있어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에게 음악적으로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질투를 느낀다.”
캐릭터 해석이 끝나자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가 주어졌다. 문제는 ‘살리에르’가 ‘모차르트’에게 느낀 음악적 재능의 한계, 그로 인한 ‘질투’를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까’였다. ‘살리에르’가 수많은 밤을 고민하며 음표를 써 내려갔듯 뮤지컬 ‘살리에르’의 창작진과 배우들은 수많은 밤을 회의와 회의를 거듭하며 골몰했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 않은 이상,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관객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매일 밤을 고민했다.
“회의할 때, 그가 느낀 ‘질투’가 음악적으로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카트리나’를 추가했다. ‘살리에르’는 마음으로 그녀를 흠모한다. 초반에 ‘카트리나’ 역의 곽선영 배우가 영화 ‘아마데우스’의 명대사 하나를 알려줬다. 그것은 ‘여자들은 남자의 외모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그 남자의 재능에 끌린다’였다. 그 말이 딱 뇌리에 박혔다. ‘살리에르’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이자, 오랜 시간 가르쳐온 제자가 어느 순간 ‘모차르트’의 음악적인 재능을 보고 그에게 가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 감정을 작품에 추가해 ‘카트리나’가 ‘살리에르’의 질투심이 배가시키도록 설정했다.”
작품에는 의문의 남자 ‘젤라스’가 등장한다. 초반 그의 설명대로 ‘젤라스’는 ‘살리에르’의 또 다른 내면이자, ‘질투’를 속삭이는 존재다. ‘젤라스’는 ‘살리에르’에게 어떤 존재일까. 뮤지컬 ‘살리에르’는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살리에르’와 ‘젤라스’의 관계도 상당 부분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다.
처음에 ‘젤라스’가 등장할 때 ‘살리에르’는 ‘얘는 뭐지?’라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젤라스’는 그 시대의 옷을 입고 있지 않다. 그는 검은색 옷에 워커까지 신은 ‘미래에서 온 소년’처럼 낯선 존재다. ‘젤라스’가 연주하는 곡의 가사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열고, 아침이 밤이 되기를 기다리면서’로 ‘살리에르’가 부른 ‘노력한다면’과 비슷하다.
“‘젤라스’는 ‘살리에르’ 안에 있는 ‘모차르트’에 대한 질투를 계속 건든다. ‘살리에르’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젤라스’를 선택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 그렇게 ‘살리에르’는 ‘젤라스’에게 의지하다 어느 순간 깨닫고 결단을 내린다. ‘살리에르’에게 ‘젤라스’는 필요악 같은 존재다. 애증관계다. ‘젤라스’ 역시 ‘살리에르’에게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둘이 함께 의논하고 나온 결과인데 ‘살리에르’가 갑자기 돌변하니 ‘젤라스’는 ‘네가 원했던 거잖아’라고 묻는다.”
‘젤라스’는 ‘살리에르’를 위해 모든 것을 함께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살리에르’는 두려움을 느끼고 뒷걸음질한다. 정말로 그 모든 것을 ‘살리에르’가 원한 것인지 묻자 최수형은 “제 생각은 그렇다”라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는 “우리는 자신이 어떤 모습을 내면에 갔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만약 나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갑자기 일어난다면, 그 순간 우리 안에 숨어 있던 내가 알지 못한 또 다른 내 모습이 나올 수도 있다. ‘살리에르’도 어느 정도는 원했던 결과다. 그러니 ‘젤라스’의 손을 잡은 것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살리에르’와 호흡하는 두 인물, ‘젤라스’와 ‘모차르트’
이번 작품에서 ‘살리에르’의 질투를 받는 대상인 ‘모차르트’ 역은 박유덕과 문성일이 함께한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르’와 다른 성격을 노래하며 천방지축, 왈가닥, 날아다니는 천재 음악가의 특성을 표현한다. 그들과 호흡을 맞춘 소감을 묻자 그는 “둘 다 너무 좋다”라고 답했다. 특히 박유덕 배우가 연기한 ‘모차르트’를 ‘한국적’이라고 설명했다.
“박유덕 배우의 경우, 연습 때부터 많이 호흡을 맞췄다. 박유덕 배우는 자기 나름의 ‘모차르트’ 있는 것 같다. ‘모차르트’가 유럽 사람이기는 하지만 박유덕 배우를 보면 한국적인 정서가 많이 들어간 ‘모차르트’ 같다. 어떻게 보면 ‘모차르트’가 한(恨)스럽더라. 너무 슬프게 무너지는데 연기를 ‘참, 잘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차르트’가 무너지는 순간에는 ‘살리에르’를 연기하는 제가 봐도 정말 ‘애처롭다’라고 느껴질 정도다. 문성일 배우의 ‘모차르트’는 그야말로 자유롭고 천방지축이다.”
‘젤라스’는 작품 안에서 ‘살리에르’가 ‘모차르트’ 못지않게 많은 시간 감정을 주고받는 인물이다. 이번 공연에서 ‘젤라스’ 역은 김찬호와 조형균이 분한다. 최수형은 무대 위에서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두 배우와 “호흡이 좋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항상 살리에르 둘과 젤라스 둘, 이렇게 네 명이서 자주 이야기를 한다. 저를 빼고 둘, 또는 셋이 얘기하고 있으면 ‘무슨 얘기야? 나도 가르쳐줘’ 이러면서 대화를 공유한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아’라는 의견도 많이 주고받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수형은 두 배우의 ‘젤라스’의 매력을 요목조목 설명했다.
“조형균 배우의 ‘젤라스’는 긁는 느낌이 강하다. ‘젤라스’가 ‘살리에르’에게 ‘좀 더 해봐’라고 자극하는 것 같다. 조형균 배우는 ‘살리에르’가 움직이게 삭삭 긁어 원하는 결과물을 탁 터트리게 한다. 그래서 조형균 배우와 연기할 때는 ‘젤라스’가 무엇을 하면 저도 그것을 받아 새로운 감정, 장면이 나온다. 김찬호 배우와 연기할 때는 또 다른 느낌이다. 김찬호 배우를 가까이서 보면 이목구비도 선명한데, 눈도 이만큼 크고, 눈동자 색도 완전 갈색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약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눈이 ‘희번덕’할 때가 있다. 눈을 보면 ‘젤라스’에게 빠져들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공연할 때마다 느끼는 고민이지만 매번 할 두 ‘젤라스’가 너무 달라 고민이다. 그만큼 재미있다.”
성악, 합찬단, 그리고 뮤지컬 배우 ‘최수형’
최수형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서울행을 선택했다. 돈을 벌다가 유럽으로 나가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서울에 올라온 최수형은 MBC 합창단의 일원으로 다양한 음악을 접했다. 트로트, 팝, 가요, 오페라, 뮤지컬 등을 하면서 처음 가졌던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뮤지컬은 “서서히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는 “이 작품의, 이 역할은 꼭 해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주변에서 ‘너는 뮤지컬을 하면 잘 하겠다’, ‘키도 크고’, ‘소리도 크고’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실제로도 뮤지컬 공연을 본 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서서히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그에게 다가왔다.
뮤지컬은 노래만 잘한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래는 물론이고 연기력까지 갖춰야 하는 것이 뮤지컬 배우다. 최수형은 “노래만 하다가 연기를 하려니 초반에는 많이 힘들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데뷔작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다. 당시에는 시키는 대로 했다. 손을 뻗으라고 하면 뻗고, 상대 배우가 하는 거 보고 그대로 따라 했다. 어차피 연기는 못하는 거고, 처음 하는 거니 도와달라는 마인드로 임했다. 이미 밑천이 다 드러난 상황이라 연기를 잘하는 척 꾸미지 않았다. 그렇게 하니 많은 분이 도와주고 작품을 하면서 배운 것도 많다”라고 첫 데뷔 순간을 떠올렸다.
본격적으로 연기 욕심이 생긴 것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끝나고 뮤지컬 ‘미스 사이공’ 오디션 때였다. 당시 그는 뮤지컬 배우 민영기와 함께 작품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연출은 그에게 “너는 이제 노래하지 말고 여배우와 연기를 해라”라고 말했다. 그는 함께 밤을 보내고 난 다음 장면을 연기해야 했다. ‘낯선 이와 연기해야 하는 상황’, ‘시험대에 오른 연기력’은 그를 긴장하게 했다.
“근데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상대 여배우에게 너무 부끄러웠다. 그 이후부터는 제가 연기를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연기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연기는 계속 배워야 하는 것 같다. 노래의 기술이 10가지라고 한다면 연기는 100만 가지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정말 어렵다.”
최수형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요덕스토리’, ‘쓰릴 미’, ‘삼총사’, ‘넥스트 투 노멀’, ‘두 도시 이야기’, ‘카르멘’, 연극 ‘클로저’ 등 데뷔 이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탄탄히 다져왔다. 처음에는 관객들이 안 좋은 평을 하면 속상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관객을 설득시킬 수 없고 모든 관객이 자신을 좋아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깨달음은 곧 최수형 만의 연기관을 확고히 하게 하는 밑거름이 됐다.
“무대에 설 때, 내 생각을 갖고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한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만 따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굉장히 행복하다. 배우로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늙는다’는 것이다. 살이 찌면 안 되니깐 마음껏 먹지 못하는 것도 힘들다. ‘배우라서 이런 것들이 힘들다?’하는 부분은 없다. 배우로서 즐겁게 무대에 오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 또는 역할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어떤 작품의 무슨 역을 해보고 싶다는 것은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최수형은 “저에게 주어진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다면 최대한으로 열심히 해내고 싶다.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군인답다’, ‘대극장용 배우다’라고 말한다. 그런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우선은 들어온 작품을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