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아홉수소년’ ‘개콘-시스타29’ 그들은 왜 아홉수를 말할까?

입력 2014-09-04 10:08   수정 2014-09-09 19:32

▲ 9살, 19살, 29살, 39살로 이뤄진 남자들의 일과 사랑을 그린 tvN 드라마 ‘아홉수소년’(사진 = tvN)


서양인들에게 9는 9자 마케팅을 연상할지 모른다. 99달러는 아직 백 달러 단위가 아니라 십달러 대라는 것을 부각해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한다. 아직 백 달러 단위에 머물러 비싸지 않음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에서 아홉은 아홉수라는 단어를 더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이는 동양적인 철학적 지혜가 있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이와 동떨어져 있다. 공포감과 두려움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인기를 모았던 KBS ‘개그콘서트’ 씨스타 29에서는 뭐든지 안 좋은 일이라 생각하는 것은 모두 “아홉수라서 그래!”라고 딱지 붙이고 만다. 스물아홉에는 당연히 안 좋은 일이 생기기 때문에 체념하면서 합리화 한다. 이는 여성판 아홉수라면 tvN 드라마 ‘아홉수소년’에서는 네 명의 아홉수에 걸린 남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한 점쟁이는 서른아홉 수의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홉수가 끼어서 될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또 다른 역술가는 네 명의 아홉수 아들을 둔 엄마가 아들들의 결혼에 대해 궁금해 하자, 한 명만 귀한 인연과 이어진다는 말도 한다.

아홉수이기 때문에 될 일이 없다는 것은 주술이나 마법에 걸린 듯하다. 불행이 충만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주술적이고 미스터리 콘셉트의 드라마인 셈이다. 애초에 아홉수가 가진 철학적인 인과관계는 배제하고 마치 불변의 메커니즘이라는 관점이 지배하고 있다. 주술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콘셉트는 초월적인 힘과 이를 뛰어넘는 초능력을 등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아홉이라는 숫자는 부정적일 뿐이다. 아홉은 본래 부정적인 숫자가 아니라는 점을 잊고는 한다. 아홉이 부정적인 숫자가 아니며 매우 철학적이면서도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은 뒤로 밀려난다.

아홉수는 왜 이렇게 위험하게 간주되는 것일까.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에서 철이와 메텔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탑승한 열차가 999호였다. 왜 많은 숫자 중에 999호였을까 궁금증이 한번쯤은 있었다. 동양에서 아홉은 가장 완전한 수다. 가득 찬 수 9가 세 개나 있으니 이보다 더 완전할 수가 없다. 여기에 석 삼자라는 길할 숫자가 포함돼있다. 1000바로 전의 999가 더 이상 충만할 수 없는 숫자인 것이다.

완전하다는 것은 가득 차 있다는 의미를 말한다. 29살은 20대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20대들 가운데 가장 위에 있는 연장자다. 하지만 30대로 넘어가야 하는데 30으로 넘어가면 이제 30대의 제로에 해당한다. 30살은 이제 30대의 지위가 가장 낮아 쌓아놓은 이점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그야말로 알의 상태가 된다. 20대초는 좌충우돌이지만 29살은 그렇지 않다. 30대 초반은 또 바쁘고 정신없지만 39살은 30대의 생활에 익숙하고 평안하다.

9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의 경지다. 평안할 때 위기를 생각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무릇 가득 찰 때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릇에 물이 차면 그릇이 스스로 넘어지기 쉽다. 잘 나가는 찰나에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게 되기 쉽다. 찰 영(盈)이라는 글자는 가득 충만이라는 뜻이 있는데, 교만하다는 뜻도 있다. 가득 차면 다 이뤘으니 자만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가득 차면 곧 쇠퇴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달도 보름달이 되면 곧 줄어들고 꽃도 화사하게 피면 곧 수그러든다. 숲도 극상을 이루면 녹음이 빛을 바랜다. 그러나 다시 줄어들면 극상의 충만함으로 나아간다. 아홉수를 잘 넘긴다는 것은 교만하지 않고 근신하며, 겸손해야 함을 뜻한다. 아홉수라는 개념으로 돌아오면 사람이 10년 단위로 성장과 조절을 교차로 해야 함을 뜻하기도 한다.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는 원래 영민하고 상서로운 동굴로 간주됐다. 하지만 그 영민함을 빚고 재주를 부리는 캐릭터가 되기도 했다. 자신의 재주가 많으니 그것을 믿고 오만하거나 탐욕적이 된다. 그 탐욕은 인간이 되기 위한 살상으로 이어졌는데 그 대상은 바로 인간 그중에서도 남자였다. 구미호는 999개의 간을 먹었고, 한 개의 간을 더 먹어 인간이 되려 한다. 999개로 만족한 것이 아니라 하나를 더 채워 더 완전한 존재가 되고 싶은 교만함을 부렸던 것이다. 여우는 여우대로 자족하는 것이 좋으리라는 관점이 담겨 있는 셈이다.

은하철도 999를 해석해보면 영원한 생명을 구하려는 행동 자체가 이미 지나친 행동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미 충만한 점을 알고 자족해야 한다는 주제의식이 제목에 담겨 있다. 만약 영원한 생명 1000을 채우는 순간 인간은 더 위험할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아홉수는 무조건 미스터리 한 주술의 위험 대상으로만 간주돼 등장한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만과 안일함을 경계하고 항상 성찰하는 삶을 일깨우는 것이 아홉수라는 콘셉트인데 방송영상콘텐츠에서는 무속의 코드에 오컬트 코드가 젊은 세대의 초월적 욕망에 결합되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