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24세 나이에 글을 쓰기 시작해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82세까지 한평생을 역작 “파우스트”의 집필에 힘썼다. 뮤지컬 ‘더 데빌’은 괴테의 명작 ‘파우스트’를 오마주 한 작품이다.
뮤지컬 ‘더 데빌’에는 ‘파우스트’, ‘X’, ‘그레첸’이 등장한다. 승승장구하던 ‘파우스트’는 갑작스레 커다란 난관에 빠진다. 그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X`가 던진 그럴듯한 유혹의 먹이를 움켜쥔다. ‘X’는 악마 같은 게임 메신저 ‘메피스토펠레스’의 또 다른 아바타 같은 존재다. 작품은 ‘X’의 초인적 유혹의 내기로 밀고 당기는 가운데 변해가는 인간성의 변모, 그리고 ‘파우스트’를 구원하려는 ‘그레첸’을 둘러싼 관계와 변화를 되짚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작품에는 ‘심장’과 ‘사과나무’가 언급된다. ‘사과나무’는 생명의 원천인 ‘심장이 메말랐다 부풀어 터지고 그래도 피어나는 실핏줄과 같다. ‘사과나무’처럼 영글어 가는 듯 허상을 좇는 현대인의 자아와 일상은 과거 속 캐릭터와 오버랩 된다.
뮤지컬 ‘더 데빌’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한 게임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사건의 배경과 극적 상태를 대비시킨다. 이를 통해 작품은 인간 본연의 자기 성찰과 같은 내면의 진실을 묻는 ‘자기 찾기’의 화두를 던지기도 한다.
원작에서처럼 ‘파우스트’는 신의 경지를 꿈꾸진 않지만, 역경의 늪으로의 돌파구로 ‘X’와의 절대적 내기를 통해 끊임없이 내면의 쾌락과 욕망을 일깨운다. ‘그레첸’은 사랑과 순수, 젊음과 구원의 상징인 성녀 ‘피에타상’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레첸’을 사이에 둔 관계의 변화는 1987년 10월 19일 고속 성장으로 질주하고 욕망과 탐욕이 꿈틀대던 뉴욕의 월스트리트 증권가의 블랙먼데이로 연결된다.
‘파우스트’는 블랙먼데이와 함께 인생 대폭락의 역경에 직면한다. 그는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잃고 처참하게 치명적인 빈사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 순간 예정된 몰락 같은 유혹의 늪에서 부유하던 ‘X’라는 이름이 부상된다. ‘X’는 신과 같으며 때로는 저주의 악마와도 같다. ‘파우스트’는 그렇게 선과 악의 양면이 회오리치는 그 안의 또 다른 그, 환상과 허구처럼 한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의문의 이름 ‘X’와의 게임에 거침없이 마법처럼 빠져든다. 그리하여 그는 기어코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이고 파격적인 거래가 놓은 덫의 늪에 빠지고 만다. 그리하여 끝내 욕정과 욕망의 소용돌이 그 중심에 서게 된다.
‘그레첸’은 그런 ‘파우스트’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고통과 능욕도 감내하고 구원의 성자로 거듭난다. 그의 희생과 애원, 통한의 눈물은 ‘X’에 의해 더욱 처참하게 짓밟힌다. 심지어 ‘X’는 가장 밑바닥에 숨어 있는 인간 욕망의 임파선을 건드리며 폭풍처럼 깨어나게 한다. 그리하여 ‘그레첸’은 어느새 능숙하게 고통마저 즐기는 사디스트 같은 요부로 변해간다. 작품은 그렇게 ‘그레첸’의 인간적 본질과 변화의 그 크기를 직시하게 한다.
‘파우스트’는 ‘X’에게 매달리는 증오와 동경의 시간을 지나 마치 전자파의 상극처럼 극과 극이 존재하듯 젊음과 사랑으로 나뉜다. 젊음은 어느새 가버린 청춘, 더 많은 부와 욕망에 대한 세속적인 집착과 갈구로 끊임없이 피어난다. 사랑, 그 이상의 사랑과 증오, 질시가 인생을 걷잡을 수 없는 희생과 절망으로 발아된다.
끊임없이 베푸는 봉사와 지극히 극단적인 이기심은 공존한다. 실패와 성공의 줄다리기가 있고 그 안에는 또 다른 그인 선과 악이 함께한다. 생기와 허무가 반복되며 인간적인 삶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파우스트’가 ‘X’이고 또한 ‘그레첸’이며 ‘인간’인 것이다. 그런 인간적인 한계와 굴레를 넘고자 우리는 인간 존재 그 이전의 존재와 같은 ‘X’를 찾게 된다. 사람들은 그에게 구원받고자 봉사와 선행을 일삼으며 용서를 갈구한다.
뮤지컬 ‘더 데빌’은 종교적 차원을 떠나 인간의 본질적인 삶의 가치와 한계를 은유와 상징으로 작품 속 곳곳에 심어 놓는다. 작품은 인간 내면에 대한 생태적 성찰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사과나무를 심고자 한다. 무릇 인간의 욕망과 욕심으로 빚어지는 파멸의 끝은 숨은 그림을 찾듯 도처에 배치된다. 거부할 수 없는 내기를 통해 비롯된 인간적 상처는 어디까지 위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괴테가 이야기했던 ‘삶은 그것을 누리는 자의 몫이다’라는 문구처럼 일상적인 상식과 관념을 떠나 오랜만에 또 다른 제시와 다름의 방법을 택한 작품이 반갑다. ‘X’는 ‘파우스트’와 하나이지만 ‘파우스트’의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고 심지어 ‘그레첸’이기도 하다.
작품은 인간관계의 단절과 소외, 파괴와 만남을 엮어낸다. 단절은 천국과 지옥 같은 마천루의 도시 빌딩 숲과 욕망의 끄트머리에서 허우적거리는 얼음 같고 밑바닥 같다. 소외는 그러한 단절로 만들어진다. 의식과 무의식의 부딪힘은 파괴를 낳는다. 파괴는 또다시 만남을 빚는다. 그런 만남의 단면과 파괴를 통한 또 다른 만남을 보여주는 무대 장치와 조명은 현실과 판타지가 결합된 스타일리시하고 세련된 무대 미장센을 일구어낸다.
뮤지컬 ‘더 데빌’은 8월 22일부터 11월 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