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헌과 김부선(자료사진 = 한경DB) |
최근 연예인들의 법적 행동이 매우 적극적이다. 예전에는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 관리차원에서 소극적이었던 것과 매우 다른 상황이다. 최근에 이병헌과 김부선의 사례는 이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적극적인 법적 조치 그리고 대처 방식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한명은 피해자인데 도덕적 파렴치함으로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됐고, 한쪽은 애초에 가해자인 것처럼 알려졌지만 오히려 정의로운 열사가 됐다.
그는 한류스타였다. 일본에서는 뵨사마로 불렸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 할리우드에도 진출했다. 평소 성실하고 열정적이며 언제나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부드럽고 신뢰감 있는 이미지 때문에 광고주들의 열렬한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그 이미지와 달리 사생활은 복잡했다. 특히 여자관계는 문란하다는 루머가 돌았다. 사람들은 ‘설마’ 싶었다. 그러나 결혼 후에 터진 음담패설 협박 사건은 이를 확증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특히 대저택 같은 신혼집에 아내가 없는 틈에 뭇 여성들을 불러 들였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여성들의 분노를 사기에 이르렀다.
법적으로 협박 피해자였지만, 도덕적으로는 지탄의 대상이 됐다. 평소에 자주 사용했던 손 편지는 따뜻하고 친근한 인간적 매력을 줬지만, 이제는 자신을 유리하게 변호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해 보였다. 평소에 좋은 이미지를 구축해줬던 편지 자체가 오히려 역효과를 냈던 것이다.
김부선의 이미지는 사실 그렇게 좋지 않았다. 한 네티즌은 떡볶이 아줌마 이미지가 강해 부정적으로만 봤다고 적었다. 과격하고 괄괄한 언니 이미지라는 말도 있었다. 부정적 이미지에는 젊은 시절 에로틱한 영화에 많이 출연했던 점도 작용한 것으로 평가돼왔다.
지난 14일 주민 한명을 폭행했다는 뉴스가 포털에 오르자 ‘역시’라는 심리가 작용했다. 그러나 일방 폭행이 아니라 쌍방폭행이라는 소식에 반전되기 시작됐다. 먼저 폭행을 당했다는 김부선의 주장에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문제의 발단이 난방비 0원 문제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옥수동 아파트에서 실제로 300여명이 난방비를 한 푼도 내지 않아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확고해졌다. 이제는 아파트 주민들이 오랜 동안 난방비를 내지 않는 문제를 용감하게 지적해온 김부선의 행동에 응원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이제 김부선이 아니라 난방비를 내지 않고, 오히려 폭행 고소에 이른 이들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김부선은 자신 스스로 반성하는 고백도 했다. 처음에는 자신도 난방비를 내지 않는 방법의 유혹에 한순간 넘어갔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 때문에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 이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대체로 자신의 이미지와 인지도에 문제가 생길까봐 많은 연예인들은 이런 협박이나 고소에 처하게 되면, 더욱 조심을 하게 된다. 거꾸로 상대방은 이런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면서 유리한 입지를 점하고 이득을 취하려 한다. 이병헌도 이런 약점 잡기 행태에 일침을 가하려는 것이었지만, 효과는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부선은 “공인이기 때문에 무조건 서민을 위해 나서 싸워야 한다”며 “파급력이 있는 연예인들이기에 옳은 일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제 김부선은 불의에 맞서 싸우는 상징, 아이콘이 됐다. 부정적인 이미지의 소유자가 실제는 불의를 바로잡으려고 고군분투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과 함께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는 시민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최근 정우성이 한 매체 인터뷰에서 한 말이 화제가 됐는데 이것이 이병헌에 해당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정우성은 “단역이나 악역을 맡아가면서까지 할리우드에 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을 했고 이것이 특정 배우를 겨냥한 디스 발언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 배우 가운데 한 명이 이병헌이다. 이병헌은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에서 악당 스톰 쉐도우를 맡았다. 더구나 이 악당은 일본 캐릭터 닌자였다. 이어 ‘레드:더 레전드’에서는 엉성한 카리스마 코드의 악당을 맡았고, 화제의 영화 ‘터미네이터5’의 에서도 결국 악역이었다.
우리 배우의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장밋빛 평가의 본질이었다.
어디 그만일까. 영화 ‘루시’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을 하자, 국내 언론에서는 최민식이 영화 ‘명량’과 함께 국내외에서 모두 흥행 1위를 차지한 배우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영화 ‘루시’에서 최민식이 맡은 역은 그냥 잔인무도하고 무뢰한 조폭 보스였다. 캐릭터 자체에서 악당의 철학을 느낄만한 점도 전혀 없었다.
정우성은 자신의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후속 발언을 통해 특정인을 겨냥한 발언이 아니라고 밝혔다. 즉 그는 “그런 분들을 겨냥할 이유도, 의도도 없다”며 단지 할리우드의 아시아 배우 캐스팅 행태의 문제점을 밝힌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은 어느새 악역을 해서라도 할리우드에 진출해야 한다는 수단론이 더 우선인 사회가 됐다. 정우성의 말대로 할리우드 진출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할리우드 진출을 내세우는 것은 배우에 대한 가치를 높이기 위한 홍보전략 차원이다.
이병헌이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화려한 한류스타라지만, 그가 맡은 배역은 악역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자신의 인기를 사적인 욕망에 활용하다가 도덕적 비난에 시달리고 이어 광고퇴출운동에 직면하게 됐다.
김부선은 악역에만 머물 배우로 보였지만, 일상에서 불의에 맞섰고, 연예인이라는 점을 약점 잡아 사필귀정(事必歸正)을 막으려는 이들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타개한 셈이 됐다. 좀 더 좋은 아파트를 만들려는 김부선의 이미지의 형성으로 아파트 광고 모델로 삼으려는 광고주들의 러브콜이 쇄도할 판이다.
어느 것이 과연 진실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정말 김부선은 정의의 상징일까. 이병헌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러나 적어도 연예인들의 진정한 가치는 종국에 일상의 실제 삶이 우선이라는 점을 이병헌과 김부선이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겉 이미지가 좋아도 실제의 실천과 행동이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하면 붕괴되기 쉽다. 디지털 SNS 환경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이병헌과 김부선의 희비극이 갈린 이유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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