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빨래’는 ‘솔롱고’와 ‘나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외에도 작품은 ‘희정 엄마’, ‘할머니’, ‘구씨아저씨’ 등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우리네 이야기를 맛깔나게 녹여낸다. 극 중 ‘솔롱고’는 몽골 청년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는 넉넉지 않은 삶에도 언제나 웃으며 오늘을 살아간다.
배우 박정표는 2008년 ‘솔롱고’와 길고도 긴 인연의 끈을 처음 맺었다. 그는 2014년 오늘도 관객 앞에 ‘솔롱고’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고향집 같은 작품”의 매력에 빠져 다시금 무대로 돌아오는 그와 함께 뮤지컬 ‘빨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뮤지컬 ‘빨래’, 고향집 같은 푸근함
뮤지컬 ‘빨래’와 배우 박정표의 만남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배우 정문성과 함께 대학로에서 뮤지컬 ‘빨래’를 관람했다. 그때 접한 뮤지컬 ‘빨래’는 박정표에서 신선한 문화 충격을 안겨줬다. 그는 “공연을 보고 나서 ‘아무 역할이라도 좋으니 같이 공연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짜릿한 첫 만남은 뮤지컬 ‘빨래’ 오디션 공고만을 기다리게 했다. 기다리던 오디션 소식은 불현듯 갑자기 찾아 왔다. 당시 박정표는 뮤지컬 ‘시간에’ 공연 준비로 대구에 내려가 있었다. 뮤지컬 ‘시간에’는 DIMF 창작공연경연작으로 공연을 앞둔 상황이었다. 오디션 날짜와 공연 준비 기간은 절묘하게 겹쳤고 그는 아무런 준비 없이 뮤지컬 ‘빨래’ 오디션을 치러야만 했다.
오디션 후 박정표는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아쉬움을 떨쳐내려 노력했다. 그때 김희원 예술감독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박정표에게 뜻밖의 소식을 전해줬다. 박정표는 믿을 수 없는 소식에 합격여부를 재차 확인했다. 서울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 준 뮤지컬 ‘빨래’가 고마운 순간이었다.
뮤지컬 ‘빨래’로 처음 무대에 선 순간은 어땠을까. 그는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며 그 순간을 이야기했다. 박정표는 “극장은 정말 아담했다. 옥상 무대에 올라가면 조명기가 바로 눈앞에 있을 정도로 좁았다”라며 입을 열었다. 첫 무대의 설렘과 잘 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그날의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그려냈다.
“그날 정말 많이 떨었다. 연기를 한다는 것보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잘 지켜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심했다. 연습할 때 익힌 것들을 빼놓지 않고 챙기는데 온 정신을 쏟았다. 예를 들어 퇴장할 때 빨랫줄을 거두고, 문을 넣어주고 하는 것들을 놓치면 안됐다. 그 전에는 제 연기하느라 그런 부분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첫 공연은 저보다 공연을 챙기느라 바빴다.”
작품은 박정표의 연기 인생에 새로운 시작점을 찍었다. 뮤지컬 ‘빨래’가 보여준 세상은 혼자가 아닌 ‘함께’에 집중할 수 있는 미덕을 일깨워줬다. 그는 연기자가 가져야 할 덕목에 ‘함께하다’를 새롭게 써내려갔다. 그만큼 작품에 대한 애착도 점점 커졌다. 함께 만들어 나가는 작업은 오랫동안 그를 ‘빨래’ 무대에 올려놓았고, 그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았다.
“‘솔롱고’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뮤지컬 ‘빨래’ 속 모든 이야기는 실화가 아닌 창작진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세계다. 관객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에 울고 웃는다. 이것이 제가 뮤지컬 ‘빨래’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하게 되는 이유다. 제가 만들었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작품을 찾게 된다. 마치 ‘고향집’ 같다.”
고향집 같은 푸근함은 그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박정표는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만들어 작품에 참여하려 애를 썼다. 초반에는 작별이 아쉬워 눈물도 많이 흘렸다. 하지만 곧 다시 그리운 마음에 무대를 찾았고 이제는 제법 덤덤하게 이별을 맞이하고 있다. 곧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기에 적당히 눈물을 훔치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솔롱고’와 나이가 차이가 제법 난다. 이번이 그래서 마지막 ‘솔롱고’ 연기가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연기를 할 때 배우 박정표로 ‘솔롱고’라는 캐릭터가 짠해진다.”
‘솔롱고’, 여동생 시집보내는 마음
뮤지컬 ‘빨래’는 2006년 상명아트홀 1관에서 공연된 이후 많은 배우들이 작품을 거쳐 갔다. ‘솔롱고’ 역시 마찬가지다. 박정표가 ‘솔롱고’를 애정 하는 만큼 다른 배우들의 마음도 똑같다. 먼저 ‘솔롱고’를 연기한 배우로서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솔롱고’를 볼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물었다. 박정표는 “여동생 시집보내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동생이 없지만 왠지 그 기분일 것 같다”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가 평생 여동생을 데리고 살 수는 없다. ‘솔롱고’를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면 내 여동생을 모르는 사람한테 시집보내는 기분이다. 나랑 똑같은 사람이 내가 했던 것을 다하고, 내가 사랑했던 만큼 다른 이가 ‘솔롱고’를 사랑하는 것을 지켜보는 상황은 기분이 묘하다. 딱 그 느낌이다. 그렇다고 내가 다시 ‘솔롱고’를 연기해도 그들보다 잘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음만 그럴 뿐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여동생과 결혼하겠다고 찾아온 남자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당연하다. 애지중지 키운(?) 동생이 아니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짠해진다. 괜히 더 깐깐하게 군다. 그동안 자신이 연기했던 ‘솔롱고’를 무대 밖에서 바라보면 그런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민다. 박정표는 “‘솔롱고’를 연기한 다른 배우들도 저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할 거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애정이 있을 테니 어쩔 수 없다. 완벽하게 같지는 않아도 비슷할 거다”라며 미소 지었다.
어떤 배우가 이토록 사랑스러운 ‘솔롱고’를 연기해야 마음이 편해질까. 그는 ‘좋은 배우’가 ‘솔롱고’를 연기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좋다’는 종합점수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를 일컫는 것은 아니다. 박정표는 “이 역할을 하면 안 되는 배우가 오면 같이 하는 사람에게도 민폐다”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 배우는 어떻게든 악착같이 그 역할을 소화해 내지만 관객들은 돈을 내고 공연을 보러 오기에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좋은 배우’가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그가 그린 ‘좋은 배우’는 꽤 구체적이었다.
“자기가 잘 되고 싶어 연기하면 표가 난다. 그런 배우는 공연을 보고 펑펑 울고 싶은 날 보면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배우는 자신이 잘 보이기 위해 관객을 신경 쓰면 안 된다. 연기할 때는 상대방 눈을 보고 호흡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더 많은 것을 받아갈 수 있다. 자신을 낮추고 전체를 비추는 배우가 무대에 계속 섰으면 한다.”
배우 박정표와 만난 ‘솔롱고’
캐릭터는 배우와 만나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캐릭터가 처한 상황은 배우의 경험과 일치할 수도 있지만 불일치하는 경우도 많다. 경험하지 못한 부분은 연기로 표현될 때 배우의 가치 또한 높아진다. 그만큼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들은 책,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으며 어려움을 해쳐나간다. 그러기에 배움은 게을리 할 수 없다.
몽골 청년 ‘솔롱고’는 캐릭터 구축에 있어 꽤 많은 학습을 필요로 한다. 그는 외국인인 동시에 한국말도 곧잘 해낸다. 말투는 어눌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한국말 잘 하시네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박정표는 이런 ‘솔롱고’를 연기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는 녹음한 파일로 들고 다니며 수시로 들었다.
하나를 해결하니 다른 문제가 찾아왔다. ‘솔롱고’를 연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두 번째 문제는 살아본 적도 없고 가본 적도 없는 몽골을 상상하는 일이었다. 배우는 연기로 캐릭터가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해야 한다. 관객은 배우의 연기로 인물의 삶을 이해한다. ‘솔롱고’는 그런 전달적인 측면에서 큰 숙제를 안겨줬다. 몽골을 어떻게 그리고 관객에게 어떻게 몽골 하늘을 보여줄까.
“배우들은 천장이 막혀 있는 극장에 있지만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을 표현한다. 인물들이 비를 맞는 장면에서는 아무리 무대라고 해도 진짜 비 맞는 순간을 연기해야 한다. 일전에 추민주 연출이 ‘솔롱고는 서울 하늘을 보고 있지만 관객들은 네 눈에서 몽골 하늘을 봐야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는 그 말이 이해가 안됐다. 요즘은 몽골 하늘 대신 엄마 생각을 한다. 그렇게 연기하니 ‘솔롱고’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해됐다.”
‘솔롱고’와 ‘나영’의 오늘 그리고 내일
‘솔롱고’는 ‘나영’에게 첫 눈에 반한다. 그는 “‘나영’이 미인이기 때문에 ‘솔롱고’가 첫 눈에 반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몽골에서는 건강한 여자가 ‘미인’이라고 그러더라. ‘솔롱고’는 ‘나영’을 보고 ’건강함’에 반했을 것이다”라며 두 사람의 만남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했다.
뮤지컬 ‘빨래’에서 ‘솔롱고’와 ‘나영’은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확인하고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작품은 울고 웃는 시간을 거쳐 ‘힐링’ 공연으로 거듭난다. 관객은 눈물을 흠치고 두 사람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행복을 기원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관객은 여전히 두 사람의 내일을 상상한다. 과연 ‘솔롱고’와 ‘나영’은 동화 속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글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그들의 내일은 오늘처럼 행복할까 궁금증을 더한다.
“‘솔롱고’와 ‘나영’은 몸도 정신도 굉장히 건강한 사람들이다. 작품 안에서 두 사람은 두들겨 맞아도 다음날 서로를 위로하며 힘내자며 토닥인다. 그런 것을 보면, 힘든 상황에 부딪혀도 다시 툴툴 털고 일어날 것 같다. 특히 ‘솔롱고’는 어린 나이에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머나먼 한국 땅까지 왔다. 대학을 다닐 만큼 똑똑한 청년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 두 사람은 그런 모습만 봐도 삶이 불행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 같은 믿음이 생긴다.”
박정표는 ‘솔롱고’와 ‘나영’의 미래를 밝게 비추는 등불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그동안 그려온 두 사람의 내일을 들려줬다. 그는 “현실적인 문제는 ‘나영’이 집에 어떻게 ‘솔롱고’가 인사하러 가느냐는 것이다. 분명 두 사람은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을 것이다”라며 머릿속으로 그려온 상황을 표현했다. 그가 그려낸 미래는 분명 행복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행복했을 거라는 희망도 놓지 않았다.
“‘솔롱고’는 정치·행정적인 이유로 결국 몽골로 쫓겨났을 것이다. ‘나영’은 부모님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솔롱고’를 만나기 위해 몽골로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싶다. 결혼을 하게 되면 영주권이 생기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극 중 두 사람이 자신들의 삶을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이런 상상은 못했을 것이다. 결국에는 잘 살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봤다.”
10년을 향해 달려온 뮤지컬 ‘빨래’
창작뮤지컬 제작환경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뮤지컬 ‘빨래’는 오늘도, 내일도 공연을 멈추지 않는다. 한 번 맺은 인연은 다시금 작품을 찾게 했고, 스태프들은 오랜 시간 무대를 지키며 관객을 맞이한다. 뮤지컬 ‘빨래’가 장수 공연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체계적인 제작 환경은 배우들을 온전히 작품에 집중하게 도왔다. 적은 연습시간은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물을 도출해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10년 이상 진행된 공연은 조금씩 수정 작업을 거치며 완성도를 높여 나가고 있다. 그 시간만큼 박정표도 작품과 함께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었다. 그것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그는 “작품에 출연할 때마다 나이가 들어 고민이다”라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고민은 배우 본인을 떠나 관객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번졌다.
“극 중 ‘나영’의 나이는 27세고 ‘솔롱고’보다 ‘나영’보다 두 살 어리다. 제가 ‘솔롱고’를 연기하면 이제는 누가 봐도 오빠 같아 큰일이다. 캐릭터도 많이 점잖아졌다. ‘너무 점잖은가’ 싶기도 하지만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차분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연기하고 있다. 만약 그러한 것이 거슬렸다면 연출님이 한소리 했을 텐데 아직까지는 믿어주는 반응이다.”
그만큼 오래 함께한 작품은 박정표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을 선사했다. 그는 “아버지가 몸이 불편해 한 번도 제가 하는 공연을 본 적이 없다”라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뮤지컬 ‘빨래’ 부산 공연이 있었던 날, 박정표는 극장 대표에게 아버지가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부탁했다. 아버지는 관객들이 다 입장한 후 휠체어를 타고 공연장에 들어섰다. 자리는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1층 객석 문 쪽이었다.
“아버지가 제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날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학전에서 마지막 공연을 한 날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날 관객들이 비행기를 접어 무대로 날려줬다. 흔한 이벤트였지만 처음 받아보는 거라 마치 상을 받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정말 마지막인 줄 알고 펑펑 울었는데 다시 ‘솔롱고’를 하고 있더라. (웃음).”
끝없는 관객의 사랑, 작품의 매력
뮤지컬 ‘빨래’ 이야기를 하면서 뮤지컬 넘버를 빼놓을 수는 없다. 어떤 곡을 좋아하는지 묻자 박정표는 “청승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뮤지컬 넘버 ‘비오는 날이면’이 좋다”고 답했다. 곡은 좋지만 노래를 부르는 순간은 한 없이 어려웠다. 장면을 연기할 때 배우들은 ‘이들은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뿐’, ‘그것이 짠할 뿐’, ‘나도 오늘 그랬지’라는 생각을 관객이 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했다.
“친구는 아프고 비는 오고 나는 돈을 벌어야 하는데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고 한다. 나까지 아프면 큰일 나는 상황이다. ‘솔롱고’는 이런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뭐라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상황을 생각하면 눈물이 자동으로 흐른다. ‘비오는 날이면’은 아무 감정 없이 담백하게 불러도 짠한 감정이 전해진다. ‘참 예뻐요’와 ‘안녕’이 작품 안에서 히트곡이라면 ‘비오는 날이면’은 숨은 명곡이다.”
마지막으로 뮤지컬 ‘빨래’가 어떤 작품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그는 “뮤지컬 ‘빨래’가 기억되지 않고 계속 공연됐으면 좋겠다”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예상치 못한 대답은 허를 찔렀다. 모든 작품의 그의 바람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억되는 순간 잊혀 지는 공연이 아닌 지금 우리와 함께 숨 쉬는 공연은 상상만으로도 행복감을 전해준다.
“시간이 지나면 물가가 오르고 티켓 값도 모를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빨래나 한 번 볼까?’라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마다 느낌이 다를 것이고 언제나 공연 중인 작품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뮤지컬 ‘빨래’가 고향집 같은 공연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