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칼럼] ‘왔다 장보리’ 연민정의 최후가 아쉬운 이유

입력 2014-10-13 06:10   수정 2014-10-13 23:43

▲ ‘왔다 장보리’에서 악녀 연기로 화제를 모은 연민정 역의 이유리(사진 = MBC)


국민드라마라는 찬사까지 받았던 ‘왔다 장보리’가 가족 간의 대화해와 연민정의 파멸로 마침내 막을 내렸다. 연민정이 국밥집에서 장보리가 당했던 구박을 고스란히 당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이렇게 악행을 저지르던 악녀가 마지막에 파멸하는 건 막장드라마의 기본 공식이어서 새삼스럽진 않은 결말이다. 악녀의 파멸을 보는 것은 막장드라마의 통쾌한 재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민정의 파멸은 온전히 통쾌하지만은 않았다. 구도가 씁쓸했기 때문이다. 연민정은 국밥집 딸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출생을 부정하고 감히 보리의 인생을 넘봤다. 보리는 최고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연민정 모녀의 악행으로 인해 국밥집 부엌데기 신세로 자라났다. 그러나 타고난 고귀한 품성과 능력이 빛을 발해 결국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감히 신분상승을 꿈꿨던 연민정은 도로 국밥집으로 떨어져 개처럼 취급받는다는 설정이다.

이렇다보니 드라마 주제가 ‘주제파악’인 것처럼 느껴졌다. 각자 태어난 주제를 알고 그 주제대로 평생을 살아야지, 감히 신분상승 따위를 꿈꾸며 상류층 ‘그분’들의 세계로 끼어들려 해서는 천벌을 받는다는 구도다. 딸을 도왔던 어머니는 정신이 망가졌고, 딸은 전과자 신세에 한쪽 손이 망가졌다.

연민정, 연민정의 친모와 함께 악의 축을 형성했던 보리의 친모와 시모도 모두 신분상승을 추구했던 사람들이다. 보리의 친모는 비술채라는 귀족들의 세계로 진입하려 했고, 보리의 시모는 재벌가로 진입하려 악전고투를 치렀으나 돌아온 건 악녀라는 낙인뿐이었다. 각자 태어난 팔자대로 살아야지 감히 ‘웃전’을 넘봤다간 이 꼴 될 줄 알라는 경고처럼 느껴진다.

▲ ‘왔다 장보리’에서 악녀 연기로 화제를 모은 연민정 역의 이유리(사진 = MBC)


물론 작가가 처음부터 이런 의도로 극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기구한 인생, 출생의 비밀, 뒤바뀐 운명, 악녀 코드 등 뻔한 흥행공식을 조합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악녀가 고귀한 집안에서 태어난 공주의 인생을 훔치려다 천벌 받는 내용으로 귀결된 것이다.

‘왔단 장보리’는 이렇게 일반적인 흥행코드들을 조합하고 그 강도를 높여 시청자를 자극한 드라마, 즉 막장드라마였다. 그런데 그 조합이 너무나 잘 이루어져 인기가 폭발하다보니 막장을 넘어선 국민드라마라는 말까지 듣게 됐다. 보통 막장드라마는 욕하면서 본다고들 하는데 ‘왔다 장보리’는 찬사 받으며 순항했다.

‘왔다 장보리’가 방영되는 동안 마치 ‘성공한 쿠데타는 반역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성공한 막장은 막장이 아니다’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 같은 분위기까지 형성됐다. 그만큼 시청률 높고 재미가 있으니 막장이 아니라는 평가가 많이 나왔다.

이것은 마치 자극적인 양념과 인공 조미료로 맛을 낸 음식이, 사람들이 좋아하고 장사가 잘된다는 이유로 웰빙식단이라고 소개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자극적인 음식이 웰빙식단이란 찬사까지 독차지하면 진짜 웰빙식단은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왔다 장보리’ 같은 작품이 명작이란 찬사까지 받을 경우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어느 작가가 힘들게 수준 높은 작품을 창조하려 긴 밤을 새우겠는가? 그저 극단적인 설정과 자극적인 캐릭터들을 버무리기만 하면 돈과 명예를 독차지할 수 있는데 말이다.

‘왔다 장보리’가 우리 국민에게 강력한 재미를 선사해준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악녀 막장극으로 만들어진 재미는 뒷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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