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부담스럽기에 해보고 싶었다는 설경구는 천상 배우다

입력 2014-10-28 00:09   수정 2014-10-30 09:22


“배우로서 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복잡한 속내가 깔려있는 이 시나리오를 준 이해준 감독에게 고맙다”

지난해 영화 ‘감시자들’의 범죄 감시 전문가 황반장부터 불행한 일을 겪을 딸에게 가슴 찡한 부성애를 보여준 ‘소원’의 동훈까지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던 설경구가 무명의 연극배우에서 독재자로 변해가는 ‘나의 독재자’의 ‘성근’으로 돌아왔다.

“단선적인 역을 몇 년간 했다. 이해준 감독이 복잡한 속내가 깔려있는 이 시나리오를 주며 기회를 준 것 같다. 자신이 없었고 쉬운 작업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감사했다. 어느 순간 영화 호흡이 빨라져서 느린 영화가 귀해져버렸다. 어려웠기 때문에 가치가 있었고, 부담스럽기 때문에 부담을 갖고 해보고 싶었다”

1999년 ‘박하사탕’을 통해 영화계에 첫 발을 내딛은 설경구는 강렬한 눈빛과 선악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내는 표정연기로 각종 신인상과 남우주연상을 휩쓸었고, 이후 ‘공공의 적’, ‘오아시스’, ‘실미도’ 등 탄탄한 연기력과 흥행력으로 충무로에서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자신 없다고 해서 안하는 배우는 없다. 어려운 역일수록 해내고 싶을거다. 100%는 못해낼 수도 있지만 그런 욕심들이 없으면 배우가 아니다”고 말하는 설경구는 천상 배우였다.


2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만난 설경구는 어딘가 긴장한 모습이었다. 언론 시사를 통해 처음 공개된 ‘나의 독재자’를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긴장을 많이 했다며 “부담스러웠고 시사회 후 기운이 빠졌다”고 밝혔다.

“요즘 영화 세태가 전개도 빠르고 카메라 워킹도 빠른데 ‘나의 독재자’는 리드미컬하고 속도감 있는 영화도 아니고 그냥 담는다. 호흡 자체가 길다. 1972년도라는 과거를 그리고 있는데 나도 잘 기억 안 나는 시기다. 우리가 만든 이야기가 소통이 될까. 그런 고민들 때문에 영화를 제대로 못 봤다. ‘소원’과는 좀 다른 영화다. ‘소원’은 영화평을 하는 자리라도 막말하기 어려운 영화였고 내용에 같이 슬퍼하는, 대입하기도 어려운 내용이지 않았나. 10개월 정도 아무 것도 안하고 크랭크인만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의 부담이자 준비 기간을 길게 가졌던 영화다. 그 자체가 좀 부담이었다”

베테랑 연기자 설경구에게도 ‘성근’은 어려운 인물이었다.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 대역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에 젊은 시절부터 나이든 모습까지 다양한 모습을 소화해야했다. 또한 김일성의 풍채를 만들기 위해 살을 찌웠고, 노인의 모습을 표현해내기 위해 특수 분장을 하고 촬영해야 했다.

“특수분장하면 그 다음날 쉰다. 새벽 1시, 2시에 분장 시작해서 7시까지하고 7시 30분쯤에 촬영 들어간다. 최대 8~9시간 촬영하는데 그 다음날 또 분장하게 되면 피부가 숨을 못 쉰다. 급할 때는 연속 촬영한 적도 있는데 바로 두드러기가 올라온다. 그러다보니 술자리가 많았다. 살도 쪄야하고 갈증을 술로 풀었다.(웃음)”


‘나의 독재자’는 크게 두 가지 축을 갖는다.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이라는 큰 연극의 주인공을 맡지만 결국 정상회담이 무산돼 역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무명배우 ‘성근’과 아들 앞에서 항상 자랑스럽고 싶었던 아버지 ‘성근’. 설경구는 “배우의 삶보다 아버지와 아들에 초점을 맞춰 연기했다”고 밝혔다.

“평범하고 무능한 한 사내로 출발했다. 촬영하며 김일성 역에서 안 빠져나온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자기 의지에 의해 안 빠져나온. 생명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깨지는 순간 무너져버릴지도 모르는. 아들이 그 지경이 되도 기회가 올거라 믿고 한 역만 놓지 못하고 사는 인물. ‘수령은 아버지 아니냐’라는 대사나 아들 눈을 보고 얘기하지 않는 모습, 나중에 쓰러지고 나서 아들한테 ‘태식아’라고 아들 이름 부를 때 역할에서 빠져온 초라한 아버지 같다.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도 무덤덤하게 대본을 받아들고는 아들이 보게 해달라고 말한다. 그때부터 ‘성근’이 된 것이고 대통령과 정상회담 할 때는 철저하게 ‘성근’의 모습으로 김일성을 연기하는 아버지다. 아들 앞에서 망신당했던, 그로 인해 아들까지 망신당하게 했던 리어왕을 시간이 지나 CCTV를 통해 아들과 눈맞춤을 하는 마지막 아버지의 모습. 어렸을 때 국가와 민족을 위한 위대한 연극을 준비했던 아버지가 결국 아들을 위해 연극을 한거다. 마지막에 100마디 말보다 ‘아버지 집에 가요’라는 한 마디가 아들도 아버지를 용서하고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설경구는 ‘나의 독재자’의 긴 호흡을 계속해서 우려했다. 빨라진 시대에 너무 처지는 영화가 아니냐는 것.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 시대에 맞는 템포인가 싶다. 그래도 분명히 흐름을 쫒아온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가 태어나지도 않은 년도라 좋아할까하는 생각도 든다. 관객 폭이 넓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은 있는데…. 15세 관람가를 받았다. 등급은 폭넓게 나왔는데 관객층이 어떨지 모르겠다.(웃음)”

흥행스코어에 대해서도 “이해준 감독과 관객수 얘기하는데 10원도 못 벌어봤다고 하더라. 그래서 10원만 벌자고 했다. 상징적인 흥행, 다음 작품을 기약할 수 있는 10원?”이라며 웃어보였다.

“더 잘 되면 정말 좋겠다. 이런 영화는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한다. 긴가 민가하는 영화긴 하지만. 이런 것도 소통이 되고 먹히는 구나라는, 영화가 너무 획일화 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고. 좋게 봐줬으면 좋겠다. 아버지 생각이 나게 봐주셨으면…”

(사진=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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