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해철. 그는 비록 갔지만 그의 음악과 열정은 영원히 후배들에게 길을 밝혀주는 빛으로 남을 것이다.(사진 = 한경DB) |
신해철의 죽음은 단지 과거의 인기 가수 한 명이 떠나갔다는 정도의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한국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가 보여준 음악적 가치나 성찰의 치열함, 사회를 향한 외침의 불꽃같은 열정을 이어받은 후배가 없기 때문에 그가 떠난 빈자리가 특히 크게 느껴진다.
연예인이 유명 대학에 다닌다는 것이 일종의 프리미엄처럼 느껴지던 시절, 그는 학사 꽃미남 가수 캐릭터로 데뷔했다.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같은 걸출한 발라드 히트곡들을 내며 슈퍼스타로 군림했다.
한국 가요계는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 이후 혁명적인 변화를 겪으며, 그 이전까지의 유명가수들이 급속히 쇠락하게 된다. 하지만 신해철은 그런 격변에도 살아남았다. ‘도시인’ 같은 경쾌한 음악으로 댄스음악의 도전에 응전했던 것이다. 90년대 초에 들불처럼 나타났던 락카페(오늘날 클럽의 효시) DJ들도 신해철의 음악을 즐겨 선곡하곤 했다.
그에게 탁월한 대중적 감각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감각을 살려 얼마든지 안전한 슈퍼스타로 계속 군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해철은 그렇게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 그는 실험에 도전하는 독창적인 뮤지션으로, 사회적 문제아로, 가시밭길을 선택했다.
그의 음악적 족적은 거대하다. 서태지의 위대함 중의 하나가, 한국어로는 불가능하다고들 했던 랩을 구현한 것이었는데 신해철이 그 전에 이미 서태지의 랩 혁명을 예비했었다. 1집 ‘안녕’에서 영어 랩을 시도한 후 2집 ‘재즈 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등에서 본격적인 한국어 랩을 심화시킨 것이다.
댄스음악 혁명과 함께 대중화된 랩은, 이후 의미보단 말의 운율을 맞추는 쪽으로 발전하게 된다. 신해철의 독특한 성취는 신나는 운율이 아닌 성찰적 의미를 랩에 담았다는 점이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나에게 쓰는 편지中)
신해철의 가사에 울림이 큰 것은 거기에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편한 슈퍼스타로서의 길을 버리고 끊임없이 무모한 도전을 하고, 사회적 발언을 하며 시대와 불화하는 길을 선택했다.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어준 진정한 선배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앨범은 타이틀곡 몇 개와 대충 무난한 곡들로 이뤄진 그런 형식이 아니었다. 그는 앨범 한 장을 낼 때마다 피를 토하듯 수록곡 전체에 고뇌의 시간을 새겨놓았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것이 그의 생명력을 갉아먹었는지도 모른다.
1990년대 서태지 혁명 이후 댄스음악은 HOT가, 힙합은 듀스가, 록음악은 신해철이 각각 심화시켰는데 공교롭게도 듀스의 김성재와 신해철이 모두 요절한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신해철의 록음악은 특별했다. 신해철의 데뷔곡 ‘그대에게’는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흥겨운 록넘버다. 이 곡은 아직까지도 응원가로 사랑받을 정도로 불멸의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다. 신해철은 이렇게 대중적인 록음악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한국 주류 가요계에서는 대단히 희귀한 음악을 시도했다. 록큰롤, 하드락, 헤비메탈, 펑크 등 가요 록음악 주류의 흐름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런 음악적 형식에 신해철만의 성찰적 가사를 얹어 전대미문의 경지로 나아갔다.
자기자신의 내적인 세계 안에서만 안주한 것도 아니었다. 연예인이 사회적 발언을 할 경우 욕먹기 십상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악플을 감수해가며 끊임없이 사회에 파열음을 냈다. 그는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 사람들이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잊고 살아간다고 한탄했는데, 그 자신은 끝까지 상처 입은 분노를 토하며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지금 신해철의 존재감을 이을 후배가 과연 있을까? 어딘가엔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뮤지션이 있겠지만 적어도 널리 알려진 주류 인기가수 중에선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해철의 가치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유효하다. 이렇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 특히 더 아쉬운 것이다. 그는 비록 갔지만 그의 음악과 열정은 영원히 후배들에게 길을 밝혀주는 빛으로 남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눈을 감았다는 소식을 들은 후 계속 떠올랐던 그의 노래 한 대목을 적는다.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순간인 것을.
영원히 함께 할 내일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기다림도 기쁨이 되어“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中에서)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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