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칼럼] “전 계약직인데요” 빵 터진 ‘미생’ 임시완의 한 마디

입력 2014-12-01 12:21   수정 2014-12-02 17:40

▲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임시완 분), 오상식(이성민 분), 김동식(김대명 분)(사진 = tvN)


주말에 방영된 ‘미생’에서, 김동식 대리(김대명 분)가 소개팅에 실패하고 비애를 토로하는 장면이 있었다. 자기 외모 걱정도 하고 목소리 걱정도 하고, 과거엔 대기업 직원이 최고의 신랑감이었는데 요즘은 평가절하됐다는 등 대기업 상사맨의 아픔(?)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옆에서 술만 먹던 장그래(임시완 분)에게 “넌 결혼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장그래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전 계약직인데요.”

드라마를 보다 이 대사에서 ‘빵’ 터졌다. 너무나 통렬했기 때문이다. 결혼 이슈에 대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비정규직에겐 사치라는 현실을 한 마디로 정리해버렸다.

이대로 가면 한민족이 사라질 것이라는 흉흉한 전망이 나온다. 저출산 때문이다. 조금 있으면 노동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해 우리 경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고, 인구 자체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경제성장도 뒷걸음질 치게 될 것이다.

사람의 세포는 계속 바뀐다. 죽은 세포는 계속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그게 바로 생명활동이다. 그런데 어느 날 새로운 세포로 교체되지 못하면 그게 바로 노화이고 죽음이다. 저출산은 인구교체의 지체를 의미하고 대한민국이 노화 단계, 죽음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정말 엄중한 사태인 것이다. 지도층은 말로만 이 문제를 걱정하는 것 같다. 나름 이런저런 대비책을 내놓긴 하지만 정말 중요한 지점을 외면하고 있다. 바로 장그래가 지적한 지점 말이다.

“전 계약직인데요.”

미래가 불안한 상황에선 아이를 낳을 여유가 없다는 현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할 젊은이들이 불안에 시달리는 상황을 방치하고서는 그 어떤 저출산 대책도 탁상공론에 그칠 것이다. 미생의 세상을 완생의 세상으로 만들어줘야 저출산이든, 사회불안이든, 모든 문제가 풀릴 것이다.

“전 계약직인데요”라는 대사 단 한 마디엔 이런 전반적인 현실이 함축돼있고, 그런 현실에 대한 야유까지 장착됐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비수처럼 현실을 쿡 찔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폭소가 빵 터졌다. 즐거운 웃음이 아니라, 너무나 통렬한 한 마디였기 때문에 나온 반사작용이었다. 이 대사는 ‘미생’이 왜 탁월한 드라마인지를 웅변했다.

주말에 방영된 ‘미생’에선 또 다른 야유도 등장했다. 바로 자기계발열풍에 대한 야유였다. 오 차장은 과거 자신이 비정규직 사원에게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말들로 거짓 희망을 줬다고 자책했다.

“꿈을 꿔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자기계발 서적에 항상 등장하는 ‘18번’ 대사들이다. 자기계발 멘토 열풍이 불면서 유명 강사들이 TV에 나와 주야장천 떠들었던 주제이기도 하다. 오 차장은 이런 것들이 다 ‘대책 없는 희망, 무책임한 위로’라고 야유했다.

옆에 있던 직원이 ‘대책 없는 희망 그 한 마디라도 절실한 사람들이 많다’라고 했던 것처럼 위안도 나름대로의 효용은 있다. 꿈이나 노력 같은 가치도 물론 소중하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에게 불안이 강제되는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개인적인 꿈이나 노력이 보상받을 가능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오 차장은, 아니 ‘미생’은 바로 이 지점을 통타한 것이다.

노력이 배신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력이 배신당하지 않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진실. 그 핵심엔 ‘전 계약직인데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을 양산하는 현실이 있다. 불안의 현실 말이다. ‘미생’은 바로 그런 불안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정도면 ‘정도전’과 더불어 올해의 대표작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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