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무한도전, 아이유… 정치권력의 달력은 이제 연예인 권력에 좌우?

입력 2014-12-04 12:24   수정 2014-12-05 12:11

▲ 최근 공개된 ‘2015 아이유 캘린더’에서 아이유는 미키마우스 머리띠에 블랙 시스루룩 패션으로 눈길을 끌었다.(사진 = 로엔트리)


‘사다함의 매화’라는 가야의 책력이 등장했던 드라마 ‘선덕여왕’, 이 드라마에서 덕만과 미실은 일식을 예측에 필요한 역법을 두고 권력을 다퉜다.

책력이 중요했던 이유는 바로 날씨를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날씨 가운데 비 오는 날을 예측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비가 중요했던 이유는 당연히 농사 때문이었다. 국가의 부는 바로 농업에 있었다. 농사 때문에 달력을 연구했던 대표적인 지역은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였다.

역시 달력을 지니고 있던 이들이 권력을 갖기 마련이었다. 기원전 48년 율리어스 시저(Julius Caesar)가 이집트원정 때 윤년제 달력인 이집트의 태양력을 로마에 처음 도입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붙여 율리어스력이라고 했다. 7월의 명칭도 퀸틸리스에서 율리우스(Julius)로 바꿨고, 이로써 ‘July’(7월)이 탄생하게 됐다. 뒤이은 아우구스투스도 그의 이름을 8월(August)에 썼다.

그러나 8월의 날짜가 율리우스의 달보다 적었고 이에 질 수 없었던 그는 2월에서 하루를 가져와 더하기도 했다. 서양의 7월(July)과 8월(August)이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이름에서 비롯됐으니 이는 권력과 달력의 관계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율리우스력은 실제 시간과 미묘한 차이가 있어서 16세기 말에는 그 오차가 약 10일까지 벌어졌다. 이 때문에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10월 4일 다음날을 10월 15일로 조정했고, 4년에 한 번 윤년을 뒀다. 결과적으로 1년이 365.2425일이 되게 했다.

황제에서 교황으로 달력을 정하는 권력자가 이동했을 뿐이지 여전히 힘은 달력과 밀접했다. 한국에서는 다시 대국인 중화의 역법을 사용하다가 세종 24년에 이르러 칠정산이라는 독자적인 역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권력자들은 새로운 달력을 널리 퍼트려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70년대 말까지도 시골에서 달력이 귀했다. 전통의 음력과 양력이 상당히 달랐기 때문에 달력을 걸어놓고 각종 집안의 대경소사를 적어놓아야 했다. 따라서 필수품이었기 때문에 달력을 얻기 위해서 별도의 노력을 해야 했다. 개인 컴퓨터 시대가 돼도 책상 달력쯤은 필요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활성화되면서 달력의 발행이 30~40% 줄었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이 달력을 찾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달력을 자기 돈 내고 구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력에 따라 날개가 돋친 듯이 팔리는 경우는 있다. 2008년 ‘무한도전’ 달력은 10만부 한정 판매됐고, 수익금은 1억350만원이었다. 2009년 50만부 이상 판매, 매출액 20억원을 돌파했다. 달력판매 수익금은 전액 기부됐다. 최근 4년(2010~2014년)간 ‘무한도전’ 달력판매 수익금 등으로 27억3577만원을 기부했다. 지난 4년간 MBC 전체기부금의 6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연예기획사의 달력도 있다. 세븐, 거미, 빅뱅, 2NE1 등이 포함된 ‘2011년 YG, 빅뱅 캘린더 & 다이어리’ 7종 세트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배용준을 비롯한 많은 한류스타들이 달력을 제작해 해외팬들에게 판매하고 많은 수익을 얻기도 했다. 2009년 배용준의 달력판매액은 20억원에 이르렀다. 2012년 카라는 일본에서 연예인 달력 인기순위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얼마 전 JTBC ‘비정상회담’ 달력이 4분 만에 3500부가 완판됐다. 에네스 카야, 테라다 타쿠야, 로빈 데이아나가 참여한 기념 사인회도 열렸고, 수익금은 빈곤소외아동급식사업에 조달될 예정이라고 했다.

최근 가수 아이유가 ‘2015 아이유 캘린더’에 실린 달력 이미지를 공개했는데 미키마우스 머리띠에 블랙 시스루룩 패션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렇게 연예인 스타 등이 만든 달력이 그 쓰임에 관계없이 기념품 차원일 경우 구입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연예인 등이 일반인과 같이 협업을 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악동뮤지션, 이선균, 윤도현, YB밴드, 양동근 등과 일반인들이 함께 달력을 제작하기도 했다.

앞으로 연예인들의 일과나 계획이 표시된 달력이 따로 제작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일반 달력은 필요 없고, 문화권력을 지닌 막강한 스타들의 행보만이 중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달력이 디지털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 정체성과 존재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어쨌든 달력의 가치는 권력에 따라 좌우돼왔는데 이제는 정치권력이 아니라 문화권력(?)에 좌우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달력의 체계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달력 제품의 판매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아날로그 형태의 달력이 얼마나 존재할 수 있는지 그것은 문화권력자들의 향배에 달린 셈이다. 농업 국가시대는 정치권력자자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문화적 권력을 지닌 이들이 달력을 좌지우지하는 셈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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