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인터뷰]'천송이 스타일 메이커' 정윤기, 'K패션의 책임'을 논하다

입력 2014-12-09 16:59   수정 2014-12-09 16:59

듬직한 몸매, 그러나 한없이 섬세한 목소리, 문외한이 봐도 최신 유행처럼 보이는 뿔테 안경을 비롯해 온몸 구석구석을 장식하고 있는 범상치 않은 액세서리들. 스타일리스트 정윤기(인트렌드 대표)의 첫인상이다.


말 그대로 `바닥부터 시작해` 대한민국 최고의 톱스타들의 의상을 책임지게 된 정윤기 대표는 직업인 스타일링 외에도 다양한 방송 활동으로 `준 연예인`이 됐다.
특히 올해는 그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데, 바로 2014년 최고의 히트 드라마인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의 여주인공 천송이(전지현)의 스타일링으로 `패션 한류`를 이끄는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천송이 코트`를 중국에서 사려고 하는 중국인들 때문에 한국 인터넷 쇼핑몰의 구조 문제까지 논의될 만큼 전지현의 패셔니스타로서의 파워는 대단했다.

속 깊은 얘기는 쉽게 꺼내지 않는 정윤기 대표이지만, `한류의 중심`에 서 본 것에 대해서는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 성공을 계기로 한류, 그 중에서도 K패션의 전달자로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수줍게 말하는 그를 만나 스타들의 패션을 통해 2014년을 되짚어봤다.
★올해의 K패션, `별그대` 전지현과 `밀회` 김희애
정윤기 대표는 올해 굵직한 패셔니스타 두 명을 탄생시켰다. `별그대`의 전지현과 `밀회`의 김희애다. 두 드라마는 한국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정윤기 대표는 "`별그대`와 `밀회`가 있기 전과 후가 다르다. 중국 쪽에서의 협업이나 스타일 클래스 제의도 많아지는 등 달라진 위상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의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책임감도 다소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 드라마나 영화의 스타일링 제의도 많이 들어오지만, 한국의 콘텐츠에 더 많이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은 `애국심` 때문일까? 정윤기 대표는 직접 `애국심`이라고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K패션을 알리는 게 큰 인생의 목표가 된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예전에 홍콩영화가 번성할 때는 트렌치코트와 청재킷, 청바지를 우리 한국 사람들도 따라 입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유행하는 스웻셔츠, 야상, `천송이 반지`에 열광하게 됐어요. 그런 K패션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면 더욱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스타일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곱씹어보면 `국위선양`과도 큰 관계가 있어 보이는 대답이다.

★어떻게 입히고 고르나…핵심은 `캐릭터`

아무나 `K패션의 전달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대체 어떻게 깐깐하고 콧대 높을 것만 같은 톱스타들을 기가 막히게 스타일링하는지는 사실 인터뷰를 통해 알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 어떤 `영업비밀`이 있기에 고소영 김희애 전지현 하지원 등 여배우는 물론, 장동건 정우성 이정재 등 세월을 초월한 남성 패셔니스타들까지 그의 `단골`이 되는 걸까. 알기 어렵지만 궁금한 그 부분을 정윤기 대표에게 물어봤다.
"일단은 대본에 맞춰서 배우와 의논해요." 정윤기 대표의 심플한 대답이다. 스타 자신에게 그저 어울리는 룩보다는 극에서의 역할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고민한다는 이야기다. "럭셔리하게 갈지, 캐주얼하게 갈지부터 먼저 정하죠. 그리고 컬러는 어떤 톤이 좋을지, 원 포인트를 준다면 무엇을 줄지 세세히 의논하죠. 물론 이 과정에서 배우의 취향까지도 조합해야 해요." 말은 쉽지만 다른 세상 이야기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별그대`의 전지현을 스타일링할 때는 회당 최소 30벌을 매번 준비했다는 설명이다. 이 준비의상 중 무엇을 최종적으로 입을지는 당연히 전지현이 직접 하나하나 입어 보고 나서 결정했다. "정말 귀엽고 통통 튀고, 카멜레온 같으면서도 속 마음은 따뜻한 그런 여자에게 어울리는 룩을 고민했어요."
그렇다면 김희애는 어떨까? `우아한 클래식 무드`를 기본으로 정했다. 오피스룩의 정석 중에서도 당당하고 클래식한 화이트 셔츠와 블라우스, 진, 심플한 스커트 등이 김희애 룩의 중심이다. 정윤기 대표는 "김희애와 김성령을 맡으면서 중년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나 자신도 깨달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입히고 고르면서 `페이(pay)`는 어떻게 받을까. 농담을 섞어 질문을 던져봤다. 그는 "드라마 속 스타일링을 맡을 경우 페이는 한 달간 정해 놓은 보수를 받는다"며 "그 외에 더는 없다"고 설명했다.
★변신시켜 주고 싶은 스타는 신은경 이제훈…왜?

정윤기 대표가 `중년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얘기할 때를 놓치지 않고 살짝 물어봤다. 스타일링을 직접 맡아 보고 싶은 스타가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수줍어 보이는 그는 이에 답할 때는 강한 도전 의식을 드러내며 "1990년대 최고의 청춘 아이콘이었던 신은경 씨다"라고 답했다.
드라마 `종합병원`, 영화 `젊은 남자` 등으로 1990년대를 풍미한 여배우 신은경은 여전히 영화와 드라마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정윤기 대표는 "충분히 더 멋지게 업그레이드해서 패셔니스타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여배우"라며 "20년 만에 신은경의 매력 100%를 끌어내는 데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자 배우 중에서는 이제훈을 꼽았다. 이제훈은 실제로 최근 정윤기 대표가 스타일링을 맡은 스타이기도 하다. 정윤기 대표는 "이제훈에게는 특유의 댄디함이 있다"며 "젊고 신선한 이미지에 세련됨을 덧입히면 완벽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의 손길을 거쳐간 차승원 이정재 장동건 정우성 최시원 등은 나이를 떠나 모두 `패셔니스타`로 거듭났다.
그는 `스타`임에도 옷매무새에 신경쓰지 않는 일부 인사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옷차림은 `프로 의식`을 대변한다는 것이 정윤기 대표의 지론이다. "제발 `추리닝`만은 입고 다니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스타는 대중의 패션 멘토잖아요. 편하게 입더라도 진(청바지)에 셔츠 정도는 입어야죠. 스타라면 늘 TPO를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현재 그가 담당하고 있지 않은 스타 중 패셔니스타는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지드래곤, 여자는 공효진"이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답이 돌아왔다. "자기 스타일이 정확하니까 두 분 다 진정한 패셔니스타라고 할 수 있죠."

★스타 스타일리스트의 `사랑`은? "배우 말고 옷"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 생소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스타일리스트는 명실공히 `전문직`의 하나가 됐다. 스타일리스트를 지망하는 젊은이들도 많아진 가운데, 이들에 대한 조언을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연예계에 대한 동경을 품은 이들이라면 쉽게 꿈꾸는 직업이기도 한 스타일리스트지만, 정윤기 대표는 "스타일리스트가 사랑하는 것은 배우가 아니라 옷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옷에 대한 사랑은 기본이고, 열정과 성실성, 그리고 감각이 겸비돼야 해요. 얼마나 많은 스트리트 룩을 보고 감각을 느껴봤느냐도 한 스타일리스트의 재산이 될 수 있어요. 솔직히 요즘은 길에 다니는 모든 사람이 전문가라고 생각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늘 배워야 합니다."
그는 어느 누구라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에 대해서는 한 사람의 전문가지만, 거기에서 `개성`을 발굴하는 것이 스타일리스트의 본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람마다 잘 맞는 스타일이 당연히 있기 마련인데, 스타일리스트라면 그 스타일을 입히면서 그만의 `개성`을 어떻게 살릴지를 고민해야 해요. 저는 그런 개성을 살리는 작업으로, 새로운 스타도 좋지만 기존의 이미지가 강한 스타를 메이크 오버하는 일에 흥미를 가지고 있어요."
최근에는 가요계 `큰언니`인 가수 이선희의 30주년 앨범과 관련해 스타일링을 맡으면서 `익숙함 속에서 개성찾기`의 시도를 했다는 그는 "앨범과 뮤직비디오 모두 `팬심`을 가지고 열심히 작업했는데 결과도 정말 좋아 자랑스럽다"며 소년처럼 다시 한 번 웃었다.
한국경제TV 이예은 기자
yeeuney@blu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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