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오만과 편견’ ‘피노키오’ ‘힐러’ ‘나쁜 녀석들’ 검사와 기자

입력 2014-12-13 10:02   수정 2014-12-14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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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검사로 출연 중인 백진희와 ‘피노키오’에서 기자로 분한 박신혜(사진 = MBC, SBS)


요즘 영화, 드라마들은 기자나 검사가 스스로 자신의 사생활을 내러티브의 소재로 삼는다. 본래 기자나 형사, 그리고 검사는 객관과 사실을 중시하고 스스로 중립적인 위치에서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 객관적인 수사나 취재를 수행하는 존재에서 거리가 멀다. 수사나 취재의 동기는 사적이며, 심지어 복수 때문이다. 그리도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감정에 호소하고, 이를 명분 삼아 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공권력이나 미디어를 이용한다.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한열무(백진희 분)는 자신의 동생에 대한 복수를 위해 검사가 된다. 그것도 자신의 옛 애인이자 같은 검사 구동치(최진혁 분)가 범인이라는 확신 때문에 검사가 됐다. 검사는 범죄의 피해자를 위해 수사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한다. 범죄자를 수사하는 존재가 아니라 수사를 받는 존재이기도 하다.

영화 ‘끝까지 간다’의 주인공 도건수(이선균 분)은 스스로 살인자가 되어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위기를 모면하려는 가운데 동료 형사들로부터 추적을 받게 된다. 피해자를 위한 수사가 아니라 스스로 구제하기 위한 수사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최달포(이종석 분)는 방송 기자의 오보를 통해 고통을 당한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방송사 기자이기도 하다. 최인하(박신혜 분)도 이런 구도에서 자유롭지 않다. 연인인 최달포의 결백이 방송출연을 통해 증명되자 방송시장에 매료된다. 또한 엄마이자 스타 언론인인 송차옥(진경 분)의 모순을 최달포의 사례를 들어 거침없이 공격한다. 결국 최인하는 오보를 내며 언론미디어를 사욕을 위해 활용해 특정인에게 피해를 준 엄마를 뒀고, 언론 보도 피해자 애인을 둔 기자인 셈이다.

드라마 ‘힐러’에서 서정후(지창욱 분)는 정치나 사회 그리고 정의와 윤리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고 오로지 자신의 소망을 위해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처리한다. 그러나 이기적인 그는 스타기자 김문호(유지태 분)와 스타기자를 꿈꾸는 채영신(박민영 분)의 상처의 영향으로 변한다. 언론인들은 다른 사건이나 인물을 취재하는데 머물지 않고, 그들 스스로 취재와 보도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언론을 활용한다.

드라마 ‘나쁜 녀석들’에서는 범죄자가 범죄자를 잡는다. 범죄자가 수사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형량을 감할 수 있다는 개인적인 이익 때문이다. 그들을 수사관처럼 활동하게 하는 경찰청 리더들도 자신들이 범죄자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즉 개인적인 차원의 동기로 사적복수를 하는 셈이다. 이는 시민과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권력이 사적인 동기에 따라 이용되는 것을 말한다.

나쁜 범죄자와 이를 추격하는 선한 수사관, 진실을 취재하는 언론인과 취재 대상은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이미 메디컬드라마에서는 의사본인이 환자의 위치에 선다는 설정이 빈번해졌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시청자나 관람객들에게는 감정몰입을 이끌어내고, 흥미를 자극한다. 창작자에게는 구조적인 치밀함과 완결성을 기할 수 있게 만든다. 주인공들은 객관과 냉철함을 항상 유지하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상처와 고통을 함께 지니고 있는 보통 사람이거나 이웃일 수 있다. 이를 통해 그 주인공들은 더욱 우리 자신이며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인 듯싶다.

다만, 전문직 드라마에서 그들의 사생활 등이 주요 내러티브로 사용되는 것은 자칫 그들이 가져야할 본분을 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적인 행동보다 공적인 행위를 통해 시민의 행복과 복지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공적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이 존립할 수 있는 근본적인 명분이자 실제이다. 공공에 대한 봉사와 헌신을 해야 할 의무보다는 개인의 사적인 목적을 우선하는 행동에 대한 사필귀정이 명확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현실에서 시민들은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거나 조사해주는 사람을 원하지 자신의 사적인 애환을 호소하는 공적인 존재들, 경찰, 검사, 기자들을 바라지 않을 수 있다는 한계도 있는 셈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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