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기 KB국민銀 상임감사 결국 사의
-윤종규 회장 만류 불구 자진사퇴
-후임 감사 `낙하산·외압` 우려 감사위 체제로
-감사 1인 판단에 따른 조직 리스크 차단
-제2의 KB사태 방지 차원 중점 논의
-KB 사태 연관자 모두 조직 떠나
-은행권 내부고발자 설 곳 없는 현실
-내부고발자 보호 업권 첫 사례 무산
KB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결국 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동반퇴진, 핵심 관련자 검찰 구속수사 등 KB 내부의 문제점을 금융당국에 알린 정병기 국민은행 상임감사가 결국 사의를 표한 가운데 향후 내부통제 시스템의 변화가 주목됩니다.
KB금융은 정병기 상임감사의 사표가 수리되는 데로 후임 상임감사를 선임할 지 아니면 일부 은행처럼 상임감사 없이 감사위원회 체제로 가는 것인 지를 중점 논의할 예정으로 현재로써는 상임감사를 두지 않고 감사위원회 체제로 가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윤종규 회장이 연말 정기인사를 통해 그룹 내부의 문제점을 외부에 알린 정병기 상임감사에 대해 유임을 확정하면서 정 감사의 거취가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내부고발자에 대한 조직 안팎의 차가운 시선과 엇갈리는 여론 등으로 감사이자 내부고발자인 정병기 감사는 결국 KB를 떠나게 됐습니다.
9일 KB금융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정병기 감사가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에게 사의를 표명한 가운데 KB금융은 정병기 상임감사 자진사퇴 이후 신임 상임감사를 물색하기 보다는 일부 은행의 예처럼 감사위원회 시스템으로 갈것인가를 중점 검토한다는 방침입니다.
현재 금융사의 감사 시스템의 경우 상임감사, 또는 외부이사, 별도의 감사 3명의 감사위원회를 구성해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KB의 경우 상임감사를 두어 내부통제를 시행해 왔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감사위원회 체제로의 전환에 무게로 두고 있습니다.
KB가 상임감사 대신 감사위원회 체제를 검토하는 것과 관련해 금융권에서는 정병기 상임감사의 사례를 경험한 만큼 감사 1인의 판단에 따라 또 한번 조직이 엄청난 회오리에 휘말리는 것을 우려한 조치로 풀이됩니다.
이와함께 향후 상임감사를 신규로 선임할 경우 새롭게 선임된 인사가 관료출신이거나 정치권과 연계됐을 경우, 아니면 특정인사의 내정설이 불 경우 KB금융이 또 한번 낙하산, 관치, 내정설 등으로 혼란을 겪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한 이유라는 분석입니다.
이와 관련해 학계와 전문가들은 “확실한 지배구조와 내부통제가 확립되지 않은 조직의 경우 제왕적인 CEO와 이사회가 조직을 좌지우지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감사위원회의 독립성 확보 여부가 중요하고 상임감사를 선임할 경우 어떤 인물이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내부고발자가 독립성을 확보한 감사기구에 일련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느냐, KB사태를 계기로 지배구조와 내부통제 대변환의 전환점을 KB나 여타 금융사들이 어떻게 마련할 것인 지 분기점에 서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번에 사퇴의사를 전달한 정병기 상임감사는 지난해 KB금융과 국민은행은 물론 금융당국, IT업계 등 전업권을 떠들썩 하게 했던 국민은행 주 전산기 교체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금감원에 알렸던 인물입니다.
정 상임감사는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과 함께 주전산기 교체과정에서의 제반 문제점과 의혹 등을 지적하는 감사보고서를 작성해 이사회에 채택을 요구했지만, 이사회가 검토 자체를 거부하자 금감원에 조사를 촉구하는 등 KB 비리를 외부에 알린 바 있습니다.
이를 시발점으로 국민은행 주 전산기 교체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와 관련해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간에 공방전이 벌어지는 등 내분 사태를 겪게 됐습니다.
이어 기나긴 금감원의 특별조사, 제재심의 절차 등을 거쳐 모두 중징계를 받아 수뇌부 공백 사태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이후 KB 신임 회장으로 취임한 윤종규 회장이 지난해 연말 정기 인사에서 KB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윤웅원 KB금융 부사장과 박지우 국민은행 부행장 등을 선택하지 않자 KB사태 연루자들은 KB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KB지주와 은행 사외이사들 역시 LIG손보 인수 승인과 관련된 당국의 압박 등으로 올해 3월 정기주총에서 전원 사퇴하는 것으로 KB사태는 갈무리 되는 모양새였습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연말 정기인사에서 KB사태 연관자들을 물갈이 한 가운데서도 내부의 치부를 외부에 드러낸 정병기 상임감사를 유임하면서 안팎으로 고초를 겪기 마련인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가 이뤄지나 싶었지만 결국 정병기 상임감사 마저 물러나게 되면서 KB사태와 연관된 내부 인사들은 모두 조직을 떠나게 됐습니다.
정병기 상임감사의 임기는 오는 2017년 1월 2일로 아직 2년 넘게 남아있었던 데다 KB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으로부터도 경징계를 받기는 했지만 당국이 사외이사들의 책임을 추궁할 때도 정병기 감사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었던 상황입니다.
내부고발을 통해 상임감사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는 지지 여론과 더불어 일각에서는 그래도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일을 외부로 알려 KB 사태를 촉발했다는 비난 여론이 양분된 상황에서 윤종규 회장이 정병기 상임감사를 유임하면서까지 신임을 보낸 상황이지만 갑작스레 자진 사의를 표명하자 또 다른 설마저 불거지고 있습니다.
정병기 상임감사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윤웅원 부사장과 박지우 부행장 등 KB사태 연관자들의 사퇴와 관련한 질문에 “KB전산 교체 관련해 연관된 분들 나가고 난 뒤 사외이사들이 경쟁을 붙여서 전산교체 관련 제반 문제를 정상화한 것이기 때문에 감사의 본분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진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바 있습니다.
정병기 상임감사는 또한 “처음부터 전산교체 문제점이 경영진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명백히 잘못됐고 이사회가 감사보고서 자체를 묵살했는 데 이것을 덮고 가는 것은 감사로서 용인할 수 없는 부분 아니겠냐”며 “비리 은폐, 이를 지적하는 감사보고서 봉인 등의 문제점이 다 드러났기 때문에 저로서는 지금도 후회가 없고 떳떳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정 감사는 기자와의 통화 말미에 덧붙여 “사회가 바뀌어야 하지 않겠냐”며 “제가 만약에 자리를 보존하려고 하고 뭔가 이득을 취하려고 했다면 그때 주전산기 문제 그냥 덮어놨을 수도 있겠지만 덮어 놓는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감사가 문제를 제기할 정도가 되면 자리를 던져놓고 해야한다는 생각”이라며 “KB주전산 사태와 같은 이런 큰 문제는 저 한 사람 때문에 문제가 촉발됐다고들 하는 데 다른 시각에서 보면 한 사람 때문에 KB의 잘못된 부분이 바로잡히고 사회 정의가 바로서고 한 것 아니겠냐며 이것은 금융지주도 은행에서도 알 것”이라는 시각을 견지했습니다.
이 같은 입장이었던 정병기 상임감사가 자진사퇴를 한 것과 관련해 KB금융 고위 관계자는 "외부의 입김에 의해 정병기 감사가 사퇴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정병기 감사의 역할에 대해 조직 안팎의 호불호가 갈렸던 것은 사실인데 정 감사께서 유임 이후에도 향후 본인의 거취에 대해 많은 고민을 털어놓으셨다”며 최근 심경의 변화가 있었음을 전했습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정병기 감사께서 KB와 금융권 안팎에서 끊이지 않는 지적과 내부의 일부 곱지 않은 시선을 감안해 윤종규 회장의 새로운 출발에 누를 끼쳐서는 않되고 힘을 실어줄 때 아니겠냐고 주변분들에게 털어놓으셨다”며 자진사퇴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반면 금융권에서는 KB사태와 관련해 정병기 감사의 쉽지 않은 결단으로 KB의 고질적인 비리, 지배구조, 내부통제와 관련한 치부가 드러나 개선하는 계기가 된 것이 분명하고 여타 금융권에도 파급효과가 있는 상황에서 안타깝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 금융지주의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금융사도 그렇고 대기업도 그렇고 조직의 내부비리를 폭로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물론 단기적으로 KB에 끼친 악영향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길게 봤을 때 정병기 감사의 결단이 대전환의 시발점이 된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이어 “지배구조 개편, 내부통제 강화로 비리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각종 사고, 낙하산, 각종 비리로 점철된 KB의 중장기적인 기업 이미지와 평판 등을 감안할 때 윤종규 회장이 정병기 감사에 대한 유임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던 대목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정병기 감사의 사례는 결국 금융권이나 대기업 등 우리사회에서 음해성이나 이득을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닌 건전한 내부고발자 마저 괘씸죄로 몰려 결국 설 곳이 없게 되는 흐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임원은 “비단 KB뿐만 아니라 금융권, 대기업, 사회전반에 내부고발을 조직을 망신시키고 악영향을 준다고만 생각할 게 아니라 향후 더 나은 체질로, 더 나은 조직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인식이 전환돼야 하지만 은행권에서 이러한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는 견해를 전했습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