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수 결손이 예상되는 것은 세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성장률과 물가, 기업 실적 등이 정부의 전망치에 못 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제 연구소들과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에서 올해도 세수 결손이 불가피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세금이 예상보다 덜 걷히자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자 예산에 편성해놓고 쓰지 못하는 불용액이 매년 수조원에 달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 "성장률 높아야 세금 많이 들어오는데"…3.8% 달성 `의문`
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2월 내놓은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을 3.8%로 전망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계경제 회복으로 수출이 증가하고 국제유가가 하락하는 가운데 재정지출 확대와 투자 촉진 등 정책 효과로 내수가 개선되면서 경제가 3.8%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내수 증가율이 전체 경제성장률 상승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재부는 내다봤다.
이런 성장률 전망치에 따라 정부는 예산을 편성했고 올해 세입 예산은 지난해 정기 국회에서 221조1천억원으로 확정됐다.
하지만 올해 대내외 경제 여건을 살펴보면 정부가 예산을 편성할 때 근거로 했던 경제 전망치가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 부진과 투자 둔화 흐름은 특별히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세계 경기의 회복세는 약하고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엔화 약세 등 불안 요소들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 민간소비는 전기보다 1.0% 증가해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분기(-0.3%)보다는 개선됐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3분기 설비투자는 전기보다 0.5% 감소했다. 건설투자는 2.5% 증가했지만 기저효과의 영향이 컸다.
미국은 경기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유럽과 중국, 일본 등 나머지 주요국은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에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정부보다 0.3%포인트 낮은 3.5%로 공식 발표하면서 3%대 초반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금융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LG경제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등 주요 경제 연구소들도 올해 경제성장률이 정부의 전망치에 못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 3.8%는 예산안을 편성할 때 적용했던 전망치보다 0.2%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성장률이 높아야 세금이 많이 들어오는데, 3.8% 성장률을 달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올해에도 세수펑크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국제유가 `뚝뚝`…물가상승률도 먹구름
저물가도 세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정부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0%로 내다봤다. 담배값 2천원의 물가 인상효과인 0.6%포인트가 반영된 수치다.
종합적 물가지수인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는 경제성장률과 함께 정부 세수 추계의 중요한 근거 자료다.
하지만 국제유가 하락세가 계속되면서 올해 물가 상승률이 2.0%를 달성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GDP 디플레이터가 정부의 전망치보다 훨씬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자연스럽게 올해 세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저물가 기조가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한다. 연초부터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내려가면서 이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증권과 크레디트스위스는 최근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각각 0.9%로 대폭 낮췄다. 유가가 석유·화학은 물론이고 대부분 산업의 비용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반영한 결과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를 기록한 적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0.8%)이 유일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0.8%를 기록해 월간 기준으로 1999년 9월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1%대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KDI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연평균 49달러까지 하락하면 60달러일 때보다 물가상승률이 0.4%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산했다.
◇ 기업들 실적 악화로 법인세 타격 전망
기업의 실적 악화도 올해 세수 전망을 어둡게 한다.
법인세는 전체 국세 수입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비중 있는 세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상장·비상장 기업들의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2% 감소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2009년 2분기(-4.0%) 이후 최저치다. 세계·내수 경기 둔화와 엔화 약세 등에 따른 결과다.
통상 당해연도 기업 실적에 따른 법인세는 그다음 해 3월에 징수되기 때문에 지난해 대기업들의 영업이익 악화는 올해 세수에 영향을 준다.
기업들의 수익성도 나빠졌다.
지난해 3분기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4.2%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0.9%포인트 낮다. 2013년에 1천원어치를 팔아 51원을 남긴 기업들이 지난해에는 42원만 손에 쥐었다는 뜻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상장법인의 순이익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지난해 1분기 4.1%에서 2분기 1.6%로 증가세가 둔화한 데 이어 3분기에는 -11.9%를 기록, 감소세로 돌아섰다.
예산정책처는 "내수경기 부진이 지속하는 가운데 기업 실적 악화가 겹치면서 올해에도 세수 펑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기업의 실적이 떨어지면서 일단 법인세가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고, 기업의 수익이 가계소득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소득세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 세수 결손으로 불용액↑…"재정의 경기대응력 약화" 지적
잇따른 세수 펑크로 나라살림이 빠듯해지면서 정부 재정의 경기 대응력이 약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수 결손에 따라 예산을 편성해두고도 애초 계획했던 지출을 인위적으로 줄이면서 `불용액`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정불용액은 지난 2009년 이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2009년 5조2천억원, 2010년 5조5천억원, 2011년 5조8천억원, 2012년 5조7천억원이었던 불용액은 세수가 8조5천억원 가까이 덜 걷힌 지난 2013년 18조1천억원으로 급증했다.
재작년 불용액이 껑충 뛴 것은 세금이 덜 걷히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가 기존 예산으로 편성된 지출까지 허리띠를 졸라맸기 때문이다.
아직 세입 세출 결산이 끝나지 않아 공식적인 수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해에도 상당한 규모의 세수 결손이 있었던 터라 불용액도 만만찮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성 의원은 "지난해 세수 결손 규모는 최소 15조원 이상일 것으로 보이며, 세수 부족에 따른 세계잉여금을 0원, 이월액을 최근 3년 평균치였던 6조7천억원으로 계산하면 세출 결산은 288조원"이라며 "예산 316조9천억원 중 22조2천억원이 불용액이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주장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예산을 확장적으로 편성했더라도 불용액이 커지면 결국 재정을 통한 경기 대응력이 그만큼 떨어지고 복지 증대도 어려워진다.
최재성 의원은 "불용액이 늘어나는 것은 재정의 경기 대응력을 악화시키고 이는 다시 세수 부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는 세수 결손과 불용액의 정확한 규모는 다음달 세입·세출 결산이 끝나야 확인이 가능하며, 지난해 불용액의 경우 지난 2013년보다 규모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