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눈썹에 뚜렷한 이목구비, 탄탄한 몸매와 스턴트 연기 경력, 해병대 출신… 그야말로 상남자의 이미지가 강했던 정석원. 그래서인지 차갑고 말수도 적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최근 강남구 역삼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석원은 개구쟁이 소년 같았다. 2008년 데뷔한 정석원은 이제 7년 차 배우, 하지만 그는 인터뷰에서 “아직 자신의 3%밖에 못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렇다. 정석원은 아직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것이 더 많은 배우다.
정석원은 얼마 전 종영한 MBC 드라마 ‘미스터 백’을 통해 경영권에 욕심내는 냉철한 정이건으로 분해 첫 악역 신고식을 치렀다.
“뭔가 하나 시원하게 끝낸 느낌이에요. 미션을 순조롭게 끝낸 느낌이어서 굉장히 시원섭섭하네요. 조금 더 밀도 있게 그리고 시청자들이 더 인상 찌푸리게 만들었어야하는데… 그 부분이 조금 아쉽네요. 이제 다른 미션에 또 박차를 가해야죠”
최고봉(신하균 분) 회장을 보필하던 정이건은 극 후반으로 갈수록 욕심과 욕망을 드러낸다. 허나 마지막 회에서 너무 쉽게 증거를 내놓으며 싱거운 결말을 맞이하고 만다.
“결말에서 마음에 심경 변화가 있었던 계기가 있었어요. 홍지윤(박예진 분)한테 그간 준비했던 모든 자료를 주며 진심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편집됐어요. 방송된 부분만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편집된 부분이 있는데 최고봉 회장이 준 크리스마스카드에 ‘아들 못지않게 생각한다. 혼자 힘으로 회사를 이끌어 가면 좋겠다’고 쓰여 있는 걸 보고 감동을 받아서 마음의 결심을 한 거죠. 전 계속 그 느낌을 가지고 갔어요”
첫 악역 연기, 정석원에겐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만큼 고민도 많았고, 고민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인물이 가진 중심을 계속 잡고 갔어요. 정이건이 왜 호텔을 가지고 가야하고, 왜 옷을 입어야하고, 왜 안경을 써야하고 헤어스타일을 그렇게 해야 하는지. 처음 생각했던 걸 가지고 가고 싶었어요. 저를 더 욕하고 싫어하고 ‘쟨 왜 저럴까’해야 각 인물들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해 처음에 잡았던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전 같으면 장난치고 블랙코미디 욕심이 있었으니 했었을 텐데. 감독님 의도도 정이건 만큼은 이대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감독님 의도랑 제 의도가 어느 정도 일치해서 이번 작품에선 중심을 가지고 갔다는 게 잘 견뎠어요. ‘정이건 끝까지 잘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시청자들이 드라마 보다보면 몰입을 하잖아요. 주변 지인들도 ‘왜 그렇게 사냐, 나쁜 짓 그만해라, 그렇게 나올 거냐’하시던데요?(웃음)”
백지영과 열애 사실이 알려지고 2013년 6월 2일 결혼식을 올린 후 정석원에겐 ‘사랑꾼’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일명 ‘백지영의 남자’라고 불리며 연기 외적 이미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도 사실.
“서로 사랑하는 걸 드러내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 기운이 많은 분들께 긍정적인 에너지를 심어준 것 같아요. 의도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서 배려하고 사랑한 것 같은데 사랑꾼 이미지가 생겼네요(웃음). 기분 좋아요. 예전에는 단순했거든요. 생각했던 멋스러움이 ‘남자’, ‘강함’ 이런 거였다면 지금은 많이 변했어요. 옛날 같으면 오그라든다고 했을텐데, 지금은 ‘음, 사랑꾼이라’ 이런 느낌?(웃음)”
“결혼 전이라고 하면 속상했을 수도 있는데, 저는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이미지가 그렇게 굳어진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배우라는 노력을 끊임없이 할 거니까. 당장 바꾼다고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즐기는 사람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면 다양한 모습들이 계속 비춰질 거고 사랑꾼 이미지는 하나의 좋은 점으로 부각될 거라 생각해요.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다보면 산 정상이 눈앞에 있지 않을까요? 포기만 안 한다면”
2008년, 24살의 나이로 데뷔한 정석원은 30살 이후부터가 배우 인생의 진짜 시작이라고 말한다.
“20대까지는 연기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사람 사는 것처럼 하면 되는거지’라고 쉽게 생각했었어요. 30살이 되고부터 진지하게 생각했죠. 전 이제 1년차라고 생각해요. 그 전 작품도 정이 있고 고맙고 성장됐지만 지금부터라고 생각해요. 아직 할 것도 많고 배워야할 것도 많아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고 알면 알수록 더 갇히는 것 같고”
정석원은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러기 위해 연기 공부와 고민에 푹 빠져있다.
“사람들은 스턴트 연기자가 높은데서 뛰어 내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느낌을 알고 공포를 아니까 더 무섭거든요(웃음). 연기도 하면 할수록 두렵고 무서워요. 30년 연기하신 선배님들도 그런 얘기를 하세요. 그만큼 그 사람이 해왔던 것도 있고 관객들이 기대하는 게 있기 때문에… 그런 분들도 고충이 있고 다 힘들다고 하시는데 아직 시작한지 1년 밖에 안 됐는데 당연하죠. 강심장과 노하우를 얻기 위해 사전조사와 엄청난 공부, 고민을 시작하고 있는 단계예요”
“사람 자체를 다 보여줄 순 없죠. 작품도 많이 안 했고, 스스로를 보여준 적이 별로 없어요. 허당같은 모습도 있고 리더십있고 남자다운 모습, 소년같은 모습도 있고 듬직한 모습도 있고 코믹한 모습도 있어요. 그 중에서도 코믹적인 모습이 큰 것 같아요. 이미지랑 다르게 평소 유머러스한 걸 좋아해요. 많은 사람들을 보다보면 그 사람의 표면적 모습만 평가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걸 꺼내지 못했고 보여주지 못했던 거죠. 아직 3%밖에 못 꺼냈어요. 꺼내기도 힘들고. 계속 공부하다보면 그것들을 조금씩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사진=민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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