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하이드 지킬, 나’ 현빈, ‘킬미 힐미’ 지성… 다중장애는 왜 재벌남에게?

입력 2015-01-23 02:38   수정 2015-01-26 15:50

▲ ‘하이드 지킬, 나’의 현빈과 ‘킬미 힐미’의 지성(사진 = SBS, MBC)


현빈과 지성이 비슷한 캐릭터로 열연중인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 ‘킬미 힐미’에는 모두 다중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남자주인공이 이렇게 정신장애나 정신질환의 상태에 있는 경우는 2000년대 드라마에서 흔히 관찰된다.

그렇다면 2000년대 이후에 현대인들의 정신건강이 약화돼버렸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경쟁의 격화나, 위험사회의 사회적 외상을 대변하는 캐릭터라는 지적도 있다. 세밀한 내면 묘사가 극적인 긴장과 몰입을 강화시키는 콘텐츠 차원의 장점도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아니, 존재론적인 차원에서도 우리 모두는 결국 다 정신장애 등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결국 남자주인공들의 특이한 공통점이다. 적어도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를 통해 질병양상의 본질을 짐작할 수 있을 듯 싶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 평범한 인물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여기에서 평범함이란 능력이 아니라 신분, 즉 사회적 지위를 말한다. 그들은 모두 재벌 2세나, 재벌 3세들이다. 왜 평범하지 않은 이들이 다중인격장애와 같은 정신적 고통상황에 빠져 있는 것일까.

정말 그들에게 정신장애와 질환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재벌 2세나 3세들이 다중인격장애는 물론 다양한 정신장애에 놓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들이 일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2세와 3세는 매우 심한 압박감과 부담감을 지니고 살아간다.

물론 이런 강도는 매우 강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벌가의 자식이라는 점 때문에 이로운 점이 있지만, 거꾸로 매우 부담감을 갖게 된다. 자신이 스스로 이룬 성과가 아니라 주어진 토대 위에 존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스스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때로는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한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더구나 고성장기도 아니고 저성장기에는 말이다. 또한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엄한 경영수업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행동의 자유도 넉넉하지 못했다. 보통 사람들과 달리 살았으니 말이다. 자칫하면 언제나 구설수에 오르기 쉬운 사회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고 사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이들 부유한 남성들이 사업이나 경영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여성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의 주인공이 된다. 여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의 정신적 미흡을 감싸주거나 구원해주는 역할을 한다. 다 갖추고 있는데 정신적으로만 결함을 갖고 있는 그들을 여주인공은 지극히 사랑하게 된다.

그렇다면 평범하거나 그 이하의 남자가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그럴 때 그들은 남자라기보다는 장애인이나 정신적 환자라고 규정될 뿐이겠다. 로맨스의 주인공은커녕 갈등의 진원으로 남을 것이다. 더구나 얼굴도 그저 그렇다면 말이다.

물론 정신장애나 질환이 부유한 젊은 남자들에게 유독 많은 것인지 객관적인 데이터는 없다. 그런데 그런 남자들이 보통 서민의 여자를 사랑하게 될 지 알 수 없다. 오히려 그런 남자가 옆에 있다면 보통 사람의 역량으로 버텨낸 다는 것이 가능할지 싶다. 만약 돈이라도 많지 않다면 말이다.

만약 남성들이 즐겨보는 드라마에는 정신장애나 정신질환이 있는 여성이 등장할까? 물론 ‘몸매 착하고 얼굴 착한’ 여성이겠다. 열심히 치열하게 스트레스 받으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평균이거나 평균 이하인 서민 남녀들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 힘들다. 정신장애와 질환도 부유한 이들 차지다. 이런 분별과 구도를 벗어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치유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스토리가 더 바람직해 보인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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