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역에 무사히 도착한 안도감 때문일까.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피노키오’를 통해 연기 변신에 성공한 배우 이종석은 한결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지난 23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나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눈 이종석은 연기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다. 무엇보다 자신이 한 연기에 대해서는 후회보다는 보완하고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인터뷰 내내 본인의 연기에 대해 조곤조곤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제는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난 모습이다.
‘피노키오’는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로 호흡을 맞춘 박혜련 작가와 조수원 PD가 1년 여 만에 만나 의기투합한 작품. 여기에 이종석의 합류 소식은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조수원 감독님과 박혜련 작가님과 작업하고 싶었어요. 사실 ‘피노키오’ 전에 슬럼프가 와서 좀 지치던 찰나기도 했어요. 그러던 차에 작가님과 감독님이 작품하신다고 해서 일단 하겠다고 마음 먹고 대본을 봤죠. 결과적으로 좋았고 촬영할 때나 방송으로 봤을 때나 굉장히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했어요. ‘닥터 이방인’이 끝나고 슬럼프가 왔어요. 원톱으로 작품을 끌고 간다는 책임감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커서 준비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보니 지치는 면이 생겼죠. 분량도 워낙 많고 상대하는 캐릭터가 많아 그때마다 변화를 줘야 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종석은 ‘피노키오’에서 정·재계와 언론의 검은 커넥션 앞에서 무력하고 처참하게 무너져버린 집안, 그 비극 속에서 살아남아 분노와 상처를 가슴에 안고 거짓된 시골소년 최달포로 살다가 결국 자신의 이름 기하명을 되찾고 진정한 기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연기했다.
“이번 캐릭터는 특징을 갖고 있지 않아서 다르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대본에서 작가님이 만들어주신 더벅머리, 고무신. 무심한 듯한 성격. 그런 설정을 따라갔던 것 같아요. 일단 저 스스로 감수성이 풍부해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모니터 할 때도 전처럼 불안해하면서는 본 것 같지 않아요.”
기자가 된 기하명이 기성 언론의 잘못된 관행과 사회 부정의에 용감하게 맞서는 모습에 많은 시청자가 박수를 보냈다.
“회를 거듭하고 과거 상처가 하나 둘 밝혀질수록 연기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감정을 살려야 하는 장면도 정말 이입이 잘 됐어요. 11부와 12부 대본을 읽을 때는 계속 눈물을 흘렸어요. 박혜련 작가가 쓴 대본의 힘인 것 같아요.”
직업이 배우인 이종석은 늘 취재를 당하는 입장. 그러나 극중 방송기자로 변신해 기자라는 직업을 간접 경험했다. 실제로 SBS 보도국에 가서 리포트를 작성 하는 법과 아나운서 교육을 받았다.
“간접적으로 기자라는 직업을 경험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힘들었어요. 기자는 못 할 것 같아요. 엄격한 선후배 관계와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실제 기자를 하게 된다면 스트레스가 클 것 같아요. 특히 리포트할 때가 가장 어려웠어요. 리포트가 아마추어처럼 보이면 몰입도가 떨어질 것 같아서 정말 열심히 연습했죠.”
‘피노키오’의 흥행 요소 중 하나는 실제 연인으로 보일 정도로 자연스러웠던 이종석과 박신혜의 풋풋한 로맨스 연기였다. 두 사람은 작은 스킨십마저도 설레게 만드는 빼어난 조합을 보여줬다. 무려 키스신은 진짜 연인을 보는 듯 달달하고 때론 숨막힐 정도였다.
“감독님이 멜로 장면을 되게 좋아하세요. 정말 세밀하게 찍으시죠. 어깨에 손 하나 올리는 것도 감정을 넣어서 찍으셔요. 처음에는 멜로신이 민망했어요. 워낙 신혜랑 친하니깐...나중에는 키스신을 찍어도 그림이 예쁘게 나올지 고민을 했죠. 신혜랑 둘이서 어떻게 해야 예쁘게 나오나, 이런 연구도 했어요. 눈 오는 날 키스한 장면이 있는데 정말 공들여 찍었죠. 그 장면만 밤새 찍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신혜와 요리하는 장면이었고, 기억에 남는 장면은 변희봉 선생님 욕조에서 목욕 하는 장면이었어요. 욕조가 좁아 정말 힘들었어요. 나중에 방송을 보니 뽀얏고 야하게 나오더라고요.”
드라마 초반 이종석은 더벅머리라는 촌티 가득한 머리모양으로 팬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선사했다. 하얀 피부와 큰 키는 그에게 예쁜 남자 배우라는 인식을 줬었는데 더벅머리는 인위적인 못생김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뭘 해도 촌스럽지 않아서 더벅머리까지 한 거였어요. 바가지머리도 했었거든요. 했는데 되게 여자 같더라고요. 주변에서 너무 예쁜 것 아니냐고 하셔서 더벅머리를 했죠. 처음에 가발을 썼는데 다들 괜찮다고 했어요. 신혜도 정말 귀엽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끝날 때 되니깐 웃겼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제 머리스타일을 모니터했거든요. 그런데 괴롭더라고요. 머리는 기르지 않은 걸로 하려고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 스태프와 다시 호흡을 맞추는 것도 좋았지만 또래 배우인 박신혜, 김영광, 이유비 등과 함께하는 촬영 현장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네 사람이 함께 촬영하는 장면이 있을 때마다 시끌벅적했다고.
“유비가 진짜 웃겨요. 그렇게 웃길 수가 없어요. 유비랑 연기를 할 때마다 제가 긴장을 하죠. NG 낼까봐 긴장하는데 그래도 결국 웃어요. 저희 넷만 모이면 난리였어요. 스태프가 정신없다고 하셨죠. 유비가 웃긴 표정을 지어놓고 웃음 참는 소리가 있어요. 어떻게 표현을 못하겠는데, 이상한 콧바람 소리가 있어요.”
이종석은 ‘학교 2013’, ‘너의 목소리가 들려’, ‘닥터이방인’, 그리고 ‘피노키오’까지 드라마의 4연속 흥행을 이뤄냈다. 흥행성공의 비결은 뭘까.
“쉬는 날은 집에서 잠을 자거나 TV 보는 걸 좋아해요. 드라마를 통해 다양한 역할을 간접 경험하는 게 흥미로워요. 그리고 드라마를 많이 보면서 대중적인 취향을 알아가죠. 그것이 작품 선택에 도움이 되고 흥행에 성공하는 것 같아요.”
‘배우’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은 이종석은 지금 이 순간도 그 이름에 걸맞은 배우로 성장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멈추지 않고 있다. 2015년 훨훨 날아오를 그의 비상이 기대되는 이유다.
“배우라고 말하기는 창피해요. 아직 누가 저를 ‘배우 이종석’이라고 소개하면 민망해요. 저 스스로 모자란 점이 너무 많이 보이거든요. 언젠가 남자 영화를 하고 싶어요. 제게 누아르 같은 무거운 느낌의 영화가 어울릴지 생각해보면 아직 물음표가 생기긴 해요. 제가 잘하는 것부터 하자는 생각에 말랑말랑한 역부터 하고 있어요. 남자 영화는 제게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담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