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전개로 또 한 번의 대하사극 열풍을 예고했다.
KBS 1TV 대하드라마 ‘징비록’은 서애 류성룡 선생이 집필한 ‘징비록’을 바탕으로,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전부터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까지의 시기에 조정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극은 임진왜란 3년 전(1589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 권신 이인임의 아들이며 고려왕을 죽이고 조선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는 ‘대명회전’(명나라 법전)의 내용을 수정하며 마침내 종계변무의 뜻을 이룬 선조. 조선의 200년 숙원을 방계 혈통인 자신이 이뤘다는 사실에 선조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종계변무라는 외교적 성과에 기뻐하던 선조의 능력을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리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끊임없이 국교 회복을 요청해오는 일본. 일본은 계속해서 사신을 파견하여 다시 통신사를 보낼 것을 요청했고, 선조는 “자신의 주군을 시역한 금수의 나라”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한편, 조선에 당도한 대마도주 평의지(소오 요시토시)는 류성룡에게 관백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은 오랜 전쟁으로 단련되고 조총으로 무장한 수십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다는 말을 전했고, 그에 앞서서는 조선 조정에 조총까지 건네 보이며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주려 했다.
전쟁 시 전초기지로 쓰일 것이 분명한 대마도를 지키기 위해 대마도주는 어떻게든 전쟁을 막으려 애썼고, 안일한 태도로 탁상공론만 거듭하는 조선 조정의 행태에 우려를 표했다.
일본 사신단의 접견 문제는 조선 조정에 일대 풍파를 일으켰다. 절대 일본과 통교하지 않겠다는 선조와 풍신수길이 위험한 만큼 그들의 동태를 살필 필요가 있다는 동인 중심의 조정이 긴장감을 형성한 것. 더욱이 여기에 동인들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으려는 정철·송익필·성혼 중심의 서인 측이 가세하며 정국은 더욱 어지러워졌다.
결국 선조와 이산해를 중심으로 한 조정 대신들의 첨예한 대립은, 일본이 왜적들의 수괴와 반역자 사화동을 잡아오고 그들에게 잡혀간 조선 백성들을 데려온다면 일본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검토해 달라는 이산해와 류성룡의 제안을 선조가 받아들이며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정국이 안정되려는 찰나, 대동계 수장 정여립이 역모를 꾀했다는 이야기가 선조의 귀에 들어갔다. 이는 “동인의 씨를 말리겠다”는 송익필의 계략에 의한 것으로, 실제 정여립이 역모를 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정통성에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선조는 애초에 자신은 이 자리에 있지도 못 할 인물이었다며, 다시 한 번 조정 대신들 앞에서 콤플렉스를 드러냈다.
이후, 정여립은 주검으로 발견되고 정여립 일당은 모두 잡혀 들어오며 역모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정철과 송익필의 사주를 받은 유생들에 의해 정여립의 역모 사건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상소가 이어졌고, 이에 우판이 파직되고 그 자리에 정철이 올랐다. 조정에서 마주하게 된 정철과 류성룡. 선조를 알현하러 온 류성룡을 정철이 막아서고, 선조 역시 알현을 청하는 류성룡을 문전박대하며 극의 긴장감을 높였다.
‘징비록’ 첫 회는 명과 일본과의 국교 문제와 이를 둘러싼 동·서인 간의 첨예한 대립, 그리고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선조의 심리를 그려내며 극의 큰 줄기를 드러냈다. 무게감 있는 극본과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감각적인 연출, 그리고 대사 한 마디에도 힘이 느껴지는 명품 배우들의 열연이 무엇보다 돋보였다.
45살의 배우 김태우가 스스로를 막둥이라고 표현할 만큼 ‘징비록’에는 연륜과 관록을 갖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바, 믿고 보는 배우들의 명품 연기가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극을 중심부에서 이끌어갈 류성룡 역의 김상중부터 윤두수 역의 임동진, 이산해 역의 이재용, 귀인 김 씨 역의 김혜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의 김규철 등 일일이 그 이름을 열거하기도 벅찬 명품 배우들이 극의 무게감을 더했다. ‘사극 왕자’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 정태우는 류성룡의 심복 이천리 역을 맡아 짧은 등장에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징비록’은 자타공인 ‘대하사극의 명가’ KBS가 야심차게 선보이는 새 대하사극이다. 8개월여 전, ‘정도전’이 최고 시청률이 20%에 육박하며 지난 연말 시상식에서 5관왕을 차지하는 열풍을 일으킨 바, 그 뒤를 이은 대하사극 ‘징비록’은 시작부터 비교 대상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징비록’에 쏟아지는 관심 역시 ‘정도전’이 보여준 현실 정치에 대한 속 시원한 비판에 대한 기대감의 발로일 것. 과연 ‘징비록’이 그 기대감을 채워줄 수 있을까. 일단, 그 시작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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