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주요 동맹이 잇따라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를 전격적으로 선언하면서 미국이 곤혹한 입장에 빠졌다.
동맹국의 AIIB 참여를 저지하고자 총력을 기울여 온 미국에는 정치·외교적으로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영국이 지난주 AIIB 참여를 공식으로 선언한 데 이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3개국도 17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AIIB의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최대 투자대상국이 되기를 바라는 영국의 `대오 이탈`로 미국 주도의 반(反)AIIB 전선에 균열이 생긴 뒤 경제적 불이익을 우려한 유럽의 핵심 동맹이 잇따라 중국의 손을 잡은 것이다. 이들 국가 입장에선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럽 국가들 이외에 호주도 입장을 바꿔 AIIB에 가입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AIIB 참여를 놓고우리 정부 역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중 양국이 AIIB를 놓고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이것이 단순히 아시아지역 내 경제기구의 의미를 넘어 아시아 지역 내 역학구도 변화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향후의 아시아 경제·무역질서를 누가 써갈 것인가를 둘러싼 양국 간의 기 싸움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그 첫 시험대가 바로 AIIB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예 "중국의 돈 자석이 미국 우방들을 끌어당기고 있다"면서 AIIB 출범을 21세기 미-중 간 권력 이동의 신호라고 진단했다.
2013년 AIIB 창설 계획 발표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몸소 나서 동맹의 AIIB 참여를 반대해 온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다만, 미국 정부는 현재 공식으로는 "AIIB 참여는 각국이 판단할 문제"라며 애써 태연한 반응을 보이면서 AIIB의 투명한 운영을 강조하는데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사실상 게임이 이미 끝난 만큼 이후의 운영상 절차적 문제를 거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세계 곳곳에서 기간시설 투자 확대에 대한 압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다만) 어떤 새로운 다자기구라도 국제 사회가 이미 세계은행이나 다른 지역 개발은행에 구축한 높은 수준의 똑같은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은 그동안 AIIB와 관련해 동맹 참여 시의 출구전략을 마련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강경일변도로 나갔으며 이 때문에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AIIB 대책은 주무 부처인 재무부와 더불어 국무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관여했는데 실제로는 가장 강경한 NSC가 좌지우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가 앞으로 일본과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의 조속한 타결, 신흥국의 입장을 더 반영한 국제통화기금(IMF) 개혁 등을 시도하면서 반전을 모색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시아 내 미국의 경제 주도권에는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를 넘어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미국과 이에 도전하는 중국, 두 나라 간의 신경전은 전방위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방송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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