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흥민의 14/15 UEFA 챔피언스리그 도전은 16강에서 끝났다.(사진 = 바이엘 04 레버쿠젠) |
레버쿠젠이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패퇴하며 14/15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에 실패했다. 당초 AT 마드리드의 압도적 우세가 예상됐던 대진인 만큼 이상할 것은 없는 결말이지만, 막판까지 승부를 몰고 가는 데 성공한 레버쿠젠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결과다.
그러나 승부차기에서 승패가 걸렸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내용 면에서는 레버쿠젠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경기가 아니었다. 경기 시작 27분 만에 선제골을 허용하며 일찌감치 1차전에서 얻은 리드를 날렸을뿐더러, AT 마드리드의 압박과 수비를 뚫는 데 실패하면서 무의미한 긴 패스로 시간만 소모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AT 마드리드는 전 유럽을 통틀어서도 가장 조직적인 압박 능력과 공간 통제력을 자랑하는 팀이다. 앙트완 그리즈만과 마리오 만주키치를 필두로 강한 전방 압박을 구사하며, 상대가 하프라인을 넘어오면 네 명의 미드필더와 포백이 좁은 간격을 유지하면서 공간을 장악한다. 공격 전개할 여유를 허락지 않는 전방 압박과 여덟 명이 하나의 블록을 형성해 페널티박스 앞을 틀어막는 그들의 수비는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조차도 버거워하는 수준이다. 16강 진출 팀 중 상대적인 약팀으로 평가받는 레버쿠젠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수비다.
하지만 바로 이 대목에서 손흥민의 가능성과 과제도 엿볼 수 있었다. 지난 1차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손흥민은 자주 아래로 내려가 패스를 받아주면서 연계 플레이에 힘을 쏟았다. 강한 압박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볼을 소유한 선수 주위로 접근해서 패스 코스를 만들어주는 플레이가 필요한데, 손흥민이 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팀플레이 능력 향상은 손흥민이 얼마나 전술적으로 성숙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만약 손흥민이 과거처럼 앞 선에 머물면서 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면, 오늘 레버쿠젠의 공격은 90분 내내 의미 없는 롱볼만 반복하다가 끝나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손흥민이 아래로 내려가 볼을 받아주고, 원터치로 전방에 패스를 공급하자 AT 마드리드도 전방 압박을 풀고 후퇴해서 방어선을 새로 구축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손흥민의 진화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과제도 남았다. 기본적으로 볼터치와 드리블이 섬세한 편이 아닌 손흥민은 좁은 공간에서 수비수를 떨쳐내고 슈팅 기회나 도움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시원시원한 돌파력과 슈팅력에 강점이 있는 반면, 정교함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다. 그런데 AT 마드리드는 여덟 명의 선수가 촘촘한 간격을 유지하며 중앙을 두텁게 지키는 수비를 펼친다.
이러다 보니 손흥민은 수비 블록 앞에서 볼을 잡고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수비 블록 가운데서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까지는 AT 마드리드처럼 공수 전환이 빠르고 수비 조직력이 뛰어난 팀을 상대로 어떻게 플레이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모습이었다. 손흥민이 한 단계 높은 클래스의 선수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뛰어난 적은 최고의 스승이다”는 말이 있다. AT 마드리드는 손흥민의 꿈을 16강에서 일시 정지시켰지만, 손흥민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깨닫게 해준 뛰어난 적이었다. AT 마드리드라는 좋은 적이자 스승을 만나 약점을 깨달은 손흥민이 다음 시즌 더 성장한 모습으로 ‘꿈의 무대’에 돌아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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