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성의 The Stage] 뮤지컬 '난쟁이들'

입력 2015-03-24 10:59   수정 2015-03-24 15:52



뮤지컬 ‘난쟁이들’은 2013년 신진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국내창작뮤지컬 개발을 위해 한국 콘텐츠진흥원과 충무아트홀이 주관하고 기획한 ‘블랙 앤 블루’의 최종 선정작이다. 작품은 이듬해 2014년 제3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SMF)의 예그린앙코르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작품은 그동안 지원제도 경연에 참가하고 트라이아웃을 과정을 착실히 거쳤다. 이후 마침내 PMC 프러덕션이 제작에 참여해 정식공연으로 이어지게 됐다. 이지현 작가, 황미나 작곡가, 송희진 안무가, 김동연 연출가 등 초연 1차 크리에이터가 참여했고, 박성민 무대 디자이너, 이승주 조명 디자이너, 송승규 영상 디자이너, 조윤형 소품 디자이너들이 합세해 작품을 완성했다.

작품 속 난쟁이들은 광산에서 뼈 빠지게 일만하지만, 이들도 동화 나라의 왕자나 공주들처럼 아름다운 키스를 나누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늘 그렇듯이 비켜가는 톱니바퀴처럼 얼토당토하지 않은 허황된 꿈일 뿐이다. 난쟁이들은 하나같이 외모도 능력도 부족하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격한 호기심이 이내 물거품처럼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하소연하듯 수다로 토해내다 이내 체념한다. 하지만 ‘찰리’는 다르다. 그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동화 나라의 공주들이 대거 참여하는 무도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모두가 콧방귀 뀌며 그를 왕따를 시켜도, ‘찰리’는 자신의 일생을 걸고 기필코 무도회에 참여하려 한다. 설상가상 백설공주를 흠모했던 동병상련의 할아버지 ‘빅’도 가세한다. 이들은 함께 마녀에게 찾아가 우여곡절을 겪은 뒤, 드디어 무도회에 참여하게 된다.



뮤지컬 ‘난쟁이들’은 마치 동화책 펼쳐놓은 듯한 박성민 무대 디자이너의 솜씨와, 송승규 영상 디자이너의 프로젝션을 통해 순차적으로 읽어 나가는 느낌을 준다. 진행 모션과 장면별 적합한 이미지 몽타주는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연극적 상상력과 극적 이미지의 구체화의 경계의 접점을 기막히게 찾아냈다. 이는 적절한 조명과 어우러져 세련된 무대 미장센을 구축해 냈다.

이 작품은 ‘누구나 사랑에 대한 해피엔딩을 꿈꾼다’는 사실에 입각해 출발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 동화로 만나 익히 알고 있던 ‘신데렐라’,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인어공주’ 등에 등장하는 모든 공주와 왕자, 그리고 일곱 난장이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멋지고 심성이 고운 소유자들이다. 하지만 뮤지컬 ‘난쟁이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온갖 욕망에 사로잡히고 허영으로 가득 찬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들이다. 작품은 이러한 현대인의 양상을 캐릭터에 입히고 비틀어서 어른이 된 시각과 시점으로 돌발적인 가상의 스토리로 엮는다. 이야기는 마치 원래 그랬던 것 같은 익숙함의 옷을 입고 금세 새로운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즉, 작품은 오늘날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동화 속 인물들에게 동시대의 옷을 입히고 재구성 해 현시대의 세태풍자로 비틀고 꼬집어낸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한층 친숙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경쾌하게 풀어낸다.

또한, 부와 명예, 외적인 조건 등 요즘 삶의 척도가 되어버린 동시대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절대 기준은 경쾌한 넘버의 유머와 비틀어진 해학으로 버무려져 곳곳에서 공감의 카타르시스로 터져 나온다. 이는 잠시나마 일상을 제쳐두고 웃어넘길 수 있는 일탈의 짜릿함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세 왕자들의 등장과 함께 ‘뜨그덕 뜨그덕’으로 시작되는 경쾌한 넘버 ‘끼리끼리’는 코믹한 안무와 버무려져 시청각적 재미의 정점을 이룬다.



하지만 너무 여러 갈래로 비튼 내용들과 얽힌 설정들은 자칫 산만하거나 보여주기 식의 공허한 무의미로 남을 수 있을 듯하다. 또한, 어설픈 개그 코드는 ‘억지 춘향’처럼 어수선하게 전락할 수도 있다. 배우들은 정해진 언더스코어에 많은 대사들을 하려다 보니 너무 빠르거나 발음이 불분명해지기도 한다. 음악과 배우들의 보이스톤이 섞이지 않아 전달에 다소 불편함이 있었고, 음악은 라이브와 멀티를 혼용하더라도 조금 더 현장감 있게 활용되었더라면 더 축제 같은 분위기가 되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대인들에게 만연한 ‘신데렐라’적인 욕망과 허영의 모습들이 오버랩 될 때는 허허로운 미소를 짓게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돈을 쓰면 안되는 게 없다’ 혹은 ‘돈이 마법이다’, ‘연말정산이 세금폭탄으로 돌아왔다’ 등 현시대와 불합리한 사회를 폭로하듯 직격탄으로 까발려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도 한다. 노골적으로 현실을 반영하며 비아냥거릴 땐 저절로 통쾌한 웃음으로 화답하게 하며, 위트와 재치가 넘쳐 향기롭고 싱그러운 레시피로 돌아오게 한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할 때는 찡한 페이소스까지 잘 차려져 간이 잘 섞인 맛깔 난 음식상을 받은 느낌이었다.

‘찰리’ 역의 조형균과 ‘빅’ 역의 진선규의 착착 감기는 호연과 케미스트리도 좋았지만, ‘신데렐라’와 ‘왕자’를 번갈아가며 특유의 카멜레온 같은 연기로 좌중에 웃음폭탄을 선물한 전역산의 캐릭터 구축은 작품에 방점을 찍은듯하다. 아울러 ‘백설공주’ 역의 최유하와 ‘인어공주’ 역의 백은혜는 이제 어떤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더라도 믿고 볼 수 있는 내공과 저력을 겸비하고 있는 것 같다.

뮤지컬 ‘난쟁이들’은 4월 26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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