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속 가위바위보 싸움에서 밀리고 있는 로저스 감독(사진 = 리버풀FC)
아스톤 빌라와의 FA컵 준결승에서 패퇴한 뒤, 브랜던 로저스 감독은 “빅 매치를 더 잘 치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독 중요한 경기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선수단에 분발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리버풀의 ‘빅 매치 울렁증’은 단순히 젊은 선수단의 심리적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경기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과감하게 밀어붙이기만 하는 로저스 감독의 전술에 더 큰 책임이 있다.
빌라 전에서도 로저스 감독은 공격적인 전술을 들고 나왔다. 공격진의 라힘 스털링과 필리페 쿠티뉴, 스티븐 제라드는 물론 알베르토 모레노와 라자르 마르코비치, 조던 헨더슨까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고, 엠레 찬도 공격 전개를 위해 빈번히 전진했다. 볼을 빼앗겼을 때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최종 수비 라인을 35~40m 높이에 설정한 뒤 앞 선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하는 형태였다.
이러한 공격적인 경기 운영은 리버풀에게 주도권을 안겨줬다. 볼 점유율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중원의 인구 밀도를 높여 볼을 탈취하고, 신속하게 공격으로 전환한 리버풀은 빌라에 비해 두 배 많은 슈팅을 시도하며 경기를 이끌었다.
문제는 높은 압박 라인이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 경우였다. 리버풀이 내준 두 골 모두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첫 번째 실점은 하프라인 근처에서 상하좌우 10m 안에 4명의 선수가 모여 압박을 가하던 리버풀이 볼을 끊어내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제라드와 마르코비치, 헨더슨과 찬이 볼을 빼앗아내지 못하면서 잭 그릴리쉬에게 공간을 내줬고, 드리블을 통해 순식간에 리버풀의 위험 지역으로 접근한 그릴리쉬는 침투하던 파비안 델프에게 패스를 건넸다. 패스를 받은 델프는 뒤에서 뛰어 들어오던 크리스티안 벤테케에게 완벽한 득점 기회를 제공했다. 하프라인 근처에서 가한 압박이 실패한 뒤 실점을 내주기까지는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실점도 마찬가지였다. 요레스 오코레가 걷어낸 볼을 차지하기 위해 센터 서클 부근에 7명의 리버풀 선수들이 밀집했지만, 떨어지는 볼이 델프의 차지가 되면서 배후 공간을 벤테케에게 공략 당했다. 하프라인에서 시작된 빌라의 공격이 델프 ? 벤테케 - 그릴리쉬 ? 델프로 마무리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10초. 하프라인에서 볼을 잡은 상대가 10초 만에 골문으로 도달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명백한 전술의 문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과 아스날전에서 리버풀은 중원에서의 숫자 싸움을 위해 밀고 올라간 윙백의 배후 공간을 공략 당하며 완패했다. 빌라전에서도 그들은 미드필드 지역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라인을 올리다가 비슷한 패턴으로 두 골을 내주며 역전패했다. 이는 미드필드에 많은 선수를 투입해 볼을 빼앗아내고, 단거리 역습으로 승부를 보는 로저스 감독의 전술이 완전히 파훼됐다는 의미다.
전력의 차이가 크지 않은 팀 간의 경기에서, 전술은 가위바위보 싸움과 마찬가지다. 우직하게 바위만 내는 팀은 유연하게 보자기로 맞받아치는 팀을 이길 수 없다. 리버풀이 빅 매치에서 유독 약한 면모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리버풀이 빅 매치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려면, 로저스 감독의 전술 운용 방식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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