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아빠를 부탁해’는 ‘딸을 부탁해’… 과연 바람직한가

입력 2015-05-09 11:55   수정 2015-05-1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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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 이경규-예림 부녀(사진 = SBS)


SBS ‘아빠를 부탁해’는 사실상 ‘딸을 부탁해’다. 딸과 아빠의 관계회복을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딸과 아빠의 관계 회복을 중심에 두는데 어떻게 딸을 부탁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이 관계 회복에서 제일 중요한 주체는 아빠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딸과 이뤄지는 부녀간의 관계 회복의 중추적인 역할은 아버지가 해야 한다.

주로 딸에게 아버지가 요구하기보다는 딸이 아버지에게 요구하고 아버지는 그것을 들어주거나 최소한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딸을 부탁해가 된다. 거꾸로 이를 통해 아버지의 언행을 바로잡고 교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아빠를 부탁해가 된다.

이런 예능 프로의 기본적인 포맷은 아버지의 잘못, 과오에다가 가부장적인 인습을 전제할 때, 비로소 성립한다. 아버지는 평소 딸에게 잘못했고, 아직도 제대로 못하는 가운데 반성과 참회의 마음으로 새로운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행동이 정말 필요한 것일까.

먼저 이 프로그램의 출연하는 연예인 2세들은 모두 20대가 훌쩍 뛰어 넘은 나이에 이른다. 각자 독립을 해야 할 나이지만, 아버지와의 관계성 속에 있다. 어머니 치마폭에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보면, 아버지 바지를 붙잡고 있다.

이런 점은 한국적인 가치관의 투영일 수도 있지만,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을 강조하는 신세대의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 예컨대, 유태인의 경우 이미 20살이 되기 전에 독립을 시킨다. 그러한 태도가 더 이상 아이로 보지 않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의 인격체로 독립된 경제 주체로 서게 만든다고 믿는다.

사회마다 특수성이 있어 어떤 것을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 사회에서 많은 문제들이 부모가 이미 성장한 자녀들을 끝까지 부양하고 보호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아니 이미 많은 자녀가 부모와 같이 살고 있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 문제나 직장으로 인해서 부모와 떨어져 사는 이들에게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또 다른 측면이다.

정말 자녀들에게 아빠가 필요한 시점은 중고등학교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한참 예민한 질풍노도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때 못한 아버지의 역할을 20대가 훌쩍 넘어선 상황에서 과연 뒤늦게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과연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그 시기에 아버지의 역할을 고민하는 것이 더 나은 프로그램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민한 청소년기에 방송이 다루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물론 그런 복잡한 생각과 관계없이 딸과 아빠 사이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재밌게 그려내는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도 그냥 재미가 아니라 보는 이들의 가치 판단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슈퍼맨이 돌아왔다’같은 예능육아 프로그램이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인식과 행동에 변화를 주는 것처럼 말이다. 정확하게 영향관계를 측정할 수 없을지 모른다.

‘아빠를 부탁해’같은 프로그램은 만24세를 청소년으로 정한 청소년 보호법처럼 애초의 의도와 달리 젊은 청년들을 피동적 혹은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또한 비주체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그리고 자아충족적이면서 의존적인 행태를 강화하고 합리화해준다. 그러나 이는 개인적인 행태로만 분석될 수는 없다.

또한 단순히 아빠에게 투정을 부리는 애교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회경제 구조의 고착은 아버지의 귀환을 그리고 그 존재만이 아니라 역할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 그만큼 성장주의 경제는 한계를 보이고 청년의 삶과 미래는 불투명하다. 가족주의의 새로운 부활 아래 아버지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의무다. 그 가족주의의 부활은 자녀의 자유와 그로 인한 충족이며, 의무는 덜어준다.

그러나 겉으로 그렇게 보이지만, 안으로 보면 가족주의에 기대에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행태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배어있다. 그러한 욕망 충족을 아빠에게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오류겠다. 정말 그렇게 생각할리 없을 것이다. 예능은 예능이니까 말이다.

자녀에 대한 장기적인 보호가 비주체적이고 독립적이지 않은 행태의 강화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자녀를 위한 고용의 연장과 유지가 도리어 청년 일자리를 앗아가는 악순환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자녀를 위하는 행동이 사회 전체의 악화를 양산하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상속제도가 사회의 경제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에 기부문화를 활성화시켜야 양극화 문제도 해결된다고 말한다. 그런 사회로 가기에 우리의 문화적 인식구조는 아직 전통사회에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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