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매드맥스’ ‘샌 안드레아스’ ‘어벤져스’ … 국적불문 오락액션 영화에 몰리는 이유

입력 2015-06-07 23:48   수정 2015-06-11 13:51

▲ 톰 크루즈가 이단 헌트 역으로 나선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사진 =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스틸컷)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분노의 질주: 더 세븐’,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최근에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들이다. 모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이다.

여기에 대형 재난 영화 ‘샌 안드레아스’가 4일 개봉했고, 앞으로 ‘쥬라기 월드’(11일)도 개봉한다. ‘쥬라기 월드’처럼 속편의 성격을 지닌 영화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예컨대, 이병헌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터미네이터 제네시스’가 여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터미네이터가 아놀드 슈왈츠네거 주연으로 다섯 번째 시리즈를 내놓은 것에 아울러 톰 크루즈는 이단 헌트 역으로 다섯 번째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을 선보인다. 여기에 `007 스펙터`,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등도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게 된다. 이에 비해서 한국영화들은 맥을 못추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은 매체를 통해 여러 차례 제기됐다.

이런 극장가의 현상에서 몇 가지 특징을 이끌어낼 수 있다. 첫 번째는 관객들이 국적을 따지지 않고, 오락영화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재미와 흥미를 중심에 두고 있다. 2015년 상반기 200만명을 돌파한 한국영화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 ‘스물’, ‘강남 1970’, ‘악의 연대기’ 등 단 4편에 불과했다.

이렇게 200만명 관객을 동원한 영화도 모두 오락 액션영화라고 볼 수 있다. 진지하거나 무거운 주제의식을 갖고 있는 작품들은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목적이 완전히 굳어졌음을 인식할 수 있다.

영화 콘텐츠 자체를 소비할 수 있는 매체와 수단은 매우 많아졌다. 인터넷 PC, 스마트폰, IPTV 등이 이에 해당한다. 콘텐츠 자체의 스토리나 설정, 주제의식을 공유하는 데는 별다른 차이점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고집적의 콘텐츠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몰입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극장이 갖는 장점은 기분 효과에 연관돼있다. 극장은 대형스크린과 최상의 스피커가 존재한다. 장면 자체가 갖는 스펙타클이나 다양한 시각적 특수효과를 만끽하기 위해 찾아갈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반응을 느끼고, 서로 공감을 하면서 관람을 할 수 있다. 기분이 좋은 영화관람은 아무래도 웃고 즐기고, 재밌어 할 수 있는 영화가 알맞다. 이런 기분효과에 맞는 영화라면, 그것이 할리우드이거나 한국영화이든 따지지 않는 것이다.

▲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의 한 장면(사진 =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스틸컷)


‘기분 일치성 효과’(mood congruency effect)라는 것이 있는데, 똑같은 대상이라고 해도 기분이 좋으면 좋은 평가를 내리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에 대한 평가도 이에 점점 수렴돼가고 있다. 영화를 보고 기분이 좋으면 좋은 평가를 내리지만, 영화가 아무리 좋아도 기분이 그렇게 유쾌하지 않으면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인터넷 모바일 시대에는 입소문 효과에 저해요인이 된다. 사람들이 원하는 영화가 진지한 영화가 아니라 기분 좋은 영화를 선호한다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인터넷 모바일 시대에 사람들이 입소문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할 때 기분 좋게 보고 관람 후에도 기분 좋은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영화가 흥행 가도를 달릴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근래에 다양성 영화가 천만관객을 돌파한 점이 부각되기도 했다. 사실 다양성 영화에서 관객들을 견인한 것은 두어 개의 아트버스터 영화였다. 전반적으로는 관객수가 적었다. 여기에 대부분 외국영화들이었다. 흥행은 잘되지 않는데, 오히려 수입 작품수는 늘어나 수입가가 폭등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대기업들이 대거 진출하는 바람에 붐이 일어나고 있을 뿐 진정한 다양성 영화들이 보장되고 있지 못하다는 비난도 있다.

어쨌든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이런 다양성 영화들도 기분 효과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강력한 입소문 효과에 따른 흥행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사회경제학적 분석이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경쟁이 심화됐기 때문에 영화 소비를 주로 긴장과 불안, 부담감을 푸는 매개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보다는 한국이 전반적으로 소비주의에 더 경도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실용주의 경향도 강해졌다. 당장에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배제하거나 도중에 포기하기도 한다. 가치나 의미를 인내하며 수용하지 않는다. 당장에 즉응적이고 단기적인 이익적 즐거움에 익숙한 대중문화심리가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심리가 콘텐츠 소비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독립영화에도 장르적 속성이나 오락요소가 많아야 흥행을 할 수 있으니 온전히 독립영화라 부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추세에 영합하면 장기적으로 좋은 영화들이 나올 토양이 훼손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대세에 관계없이 영화적 작업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버틸 수 있는 공간과 여력을 정부에서라도 끝까지 고수해주는 것이 영화콘텐츠 정책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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