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안에 ‘코스피 지수 2700선 도달도 가능하다’할 정도로 극단적인 낙관론까지 나왔던 국내 증시가 4월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 이후 주춤거리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주가 상승을 견인해 왔던 외국인 자금의 유입세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 시장참여자의 관심이 외국인 자금 향방에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정국의 외국인 자금 유입 지속 여부는 두 경우로 나눠봐야 한다. 실물과 금융 간 연계가 강할 때는 경제기초여건이 건전하고 증시가 저평가돼 있으면 외국인 자금은 유입된다. 하지만 실물과 금융 간 연계가 약할 때는 두 요건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금리차와 환차익만을 겨냥해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글로벌 유동성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다. 정책적으로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QE)에 이어 아베노믹스가 지속되고 있고, 3월부터는 유럽중앙은행(ECB)의 QE도 추진되고 있다. 특히 증시 주변자금은 은행과 채권, 그리고 부분적으로 부동산 시장에서 이탈된 자금이 몰리고 있어 역대 최고 수준에 가깝다.
국제 간 자금흐름에 가장 큰 변수인 세계 경기는 아직까지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낙관적으로 예측됐던 미국 경제는 근립궁핍(beggar-thy-neighbor)적 성격이 짙은 강한 달러의 부담으로 1분기에는 0.2%로 추락했다. 작년 3분기 5%, 4분기 2.2%에 이은 가파른 둔화세다.
일부 경기선행지표가 고개를 들고 있지만 일본과 유럽 경제도 아직까지는 침체 혹은 저성장 국면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경제도 올해 1분기에는 7%로 한 단계 더 떨어졌다. 4월 수정 전망에서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을 연초 3.4%에서 3.1%까지 하향 조정했다.
주당순이익(PER) 등과 같은 증시 저평가 지표는 국제 간 자금흐름에 큰 의미는 없다. 금융위기 이후 시장 자율적으로 위기 극복이 어렵게 되자 각국 중앙은행은 주가를 경제기초여건이나 기업 실적과 관계없이 의도적으로 끌어 올려 경기 회복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QE 등이 추진됐던 국가의 PER는 추진되지 않는 우리보다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
남아있는 두 변수 ‘금리차’와 ’환차익‘ 중 어느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는 각국의 금리 수준과 통화 가치를 감안한 ‘피셔(Irving Fisher)의 국제 간 자금이동이론(m=rd-(re+e), m: 자금유입규모, rd: 투자대상국 수익률, re: 차입국 금리, e: 환율변동분)’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피셔의 이론에 따르면 투자대상국의 수익률이 통화가치를 감안한 차입국 금리보다 높으면 투자, 즉 외국인 자금이 유입된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지속됨에 따라 이제 시장금리는 떨어질 데로 떨어져 각국 간 금리 스프레드에는 커다란 변동이 없다. 국제 간 자금흐름에 환차익 발생 여부가 최대 변수라는 의미다.
환율구조모형 등을 통해 추정된 원?달러 환율의 적정수준은 1080원 내외다. 신흥국 통화인 원화 환율은 적정수준에서 상하 50원 범위대(적정환율 범위대)에서 움직이는 것이 정상적이다. 이 범위 대에서 이탈된 것은 시간이 지나면 되돌아오기 때문에 환율 예측도 적정환율 범위대 하단 밑으로 떨어지면 상승하고, 상단보다 높아지면 하락한다고 보면 무난하다.
외국인 자금 유출입 여부도 같은 방법으로 예측하면 큰 무리가 없다. 금융위기 이후 환율수준별 외국인 자금의 움직임을 보면 원·달러 환율이 1100원 내외에서 매수 강도가 약해진다. 원?달러 환율이 더 떨어져 적정수준 밑으로 내려오면 스마트 자금을 선두로 이탈하기 시작하다가 하단 밑으로 추락하면 외국인 자금이 본격적으로 국내 증시를 떠난다.
국내 외환시장은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많이 예정돼 있다. 특히 미국 금리인상과 같은 중대한 통화정책 결정 뒤에 반드시 나타나는 `잔물결 효과`로 원화 환율의 변동성이 의외로 커질 가능성이 높다. 잔물결 효과란 호수에 큰 돌을 던지면 한차례 큰 파동과 함께 시간이 지날수록 가장자리까지 이어지는 작은 파동을 말한다.
미국 금리인상시 신흥국에서 외국자금 이탈 여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부패다. 같은 브릭스에 속하더라도 부패 척결 위해 개혁에 팔 걷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 위상은 높아지는 대신 대통령 등 핵심 권력층이 부패에 휩싸인 러시아, 브라질 경제는 위기가 우려될 정도다. 특히 최근 글로벌 증시에서는 부패가 최대 투자장애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 나라의 뇌물과 부패 정도는 시장경제 원리가 활성화되지 못한 국가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이런 국가에서는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행정 규제와 정치적 영향력으로 `경제적 지대`가 발생한다. 이를 얻어내기 위해 사회 구성원은 치열한 로비활동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뇌물과 부패가 만연되는 ‘지대 추구형 사회(rent oriented society)’가 된다.
오랫동안 각국은 뇌물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선진국?개도국 가릴 것 없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규모나 커지고 횟수가 더 잦아지는 듯한 분위기다. 방산 비리, 자원개발 등 국책사업 비리, 국가재정 손실 비리, 사회안전 비리 등 우리도 권력층을 뇌물과 부패 사건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독일의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각국의 부패지수(CPI)를 보면 우리는 경제 위상대비 CPI가 가장 높은 국가다. 작년 기준으로 국내 총생산(GDP) 세계 12위, 수출과 시가총액은 각각 세계 7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20-50클럽((1인당 GDP 2만 달러, 인구 5천만명)`에 가입했지만 CPI는 45위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그레이 베커 교수는 뇌물과 부패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각종 규제와 인가 △공무원의 자유 재량권 등을 꼽고 있다. △관료의 질 △공공부문의 임금수준 △정당의 자금조달 등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연일 터지고 있는 뇌물과 부패사건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쉽게 이해된다.
특정국의 경제성장과 증시발전에 뇌물이나 부패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장경제 기반과 행정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경제발전 초기단계에는 관료들에게 급행료를 치르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1인당 국민소득이 3천 달러 이하인 저소득 개도국이 해당한다.
하지만 경제와 증시발전 단계가 높아질수록 뇌물과 부패는 시장기능을 마비시키고 `외부 불경제(사적 비용<사회적 비용)`를 초래하면서 경제성장과 증시발전에 저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우리처럼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국가가 뇌물과 부패 고리를 청산하지 못하면 경제성장이 멈춘다.
부패는 돈의 흐름을 흐트러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다. 특정국의 경제 여건이 좋다 하더라도 돈의 흐름이 명확하지 못하면 외국인은 투자자금을 회수한다. 특히 신흥국에서 이 같은 성향이 뚜렷하다. 글로벌 시대에서 ‘권력층의 부패를 ’나라 팔아먹는 매국론‘으로 정의하는 것도 이 이유에서다.
우리 경제 내에서도 재계를 중심으로 ‘최근에는 제대로 된 정책이 제때에 나오지 않는다’라는 비판이 많다. 앞으로 어떤 대책을 추진하든 간에 의도했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책 수용층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권력층을 중심으로 부정부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도 ‘좀비 국면’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정책당국은 각종 판단지표로 가능성이 낮게 나오는 데도 대외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각종 위기설에서 자유롭지 못한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잦은 정책변경,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 부족, 부정부패 등으로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실물경기 회복이 완전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은 효과가 불투명한 경기 부양책을 연일 내놓을 필요가 없다. 우리 부패지수를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수준 정도로만 개선시키면 성장률을 0.65% 포인트 끌어 올릴 수 있다. 가장 효과가 큰 경기부양조치다.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스가 김영란 법의 국회 통과에 대해 `뇌물과 부패가 정착된 한국 경제의 획기적인 이정표`라고 추켜세웠을까.
우리 경제와 증시 안정을 위해서는 뇌물과 부패 고리를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여러 방안이 있겠으나 현 시점에서 최소한 네 가지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가장 빨리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은 대통령을 포함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솔직하고 뚜렷한 공약이 있어야 하고 어떤 뇌물과 부패도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
각종 규제, 조세 혜택 등과 같은 정책들을 축소하는 동시에 필요한 규제는 자의적이지 않도록 제도화해 뇌물과 부패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것도 시급하다. 공급 측면에서도 부패와 관련된 정치인과 공무원에 대한 신상 필벌해야 한다. 특히 김영란 법에서 빠진 국회의원과 정당의 자금조달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뇌물과 부패정도를 줄일 수 있다.
외화 운용도 ‘평균수준’보다 ‘변동성’ 관리에 더 치중해야 한다. 국내 외환시장처럼 대외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칠 때는 원?달러 환율이 정규분포 상 평균수준에 집중하기보다 양쪽 끝이 두터워지는 ‘팻 테일 리스크’가 발생한다. 이때 평균수준을 사업계획 환율로 잡아 외화를 운용하다간 키코(KIKO) 사태처럼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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