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란 1949년 미국인 알프레드 존슨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일종의 사모펀드다. 대체로 100명 미만의 소수 투자자로부터 개별적으로 자금을 모아 파트너쉽을 결성한 뒤 카리브해 연안의 버뮤다,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말레이시아 북동부 등과 같은 조세회피지역에 거점을 마련해 활동해 왔다.
외환위기를 한번 당했던 우리 국민에게는 헤지펀드의 부정적인 측면만 알려져 있으나 이론적으로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순기능으로는 △금융서비스 개선 △금융제도 및 감독기능의 선진화 △대외신인도 제고 등을 꼽는다. 특히 한국과 같은 준선진국 지위에 있는 국가에서는 순기능이 잘 나타나야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다.
반면 역기능으로는 자산들의 고객인 투자자들의 이익만을 고려해 높은 수익을 쫓는 과정에서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점이 가장 크다. 이를 테면 특정 국가와 시장에서 높은 수익이 기대되면 자금이 한꺼번에 몰려 거품을 발생시키다가도 손실이 예상되면 순식간에 자금이 빠져 각종 위기를 초래한다.
대부분 헤지펀드들은 활동거점으로 조세회피(tax haven) 지역을 선택한다. 조세회피지역은 법인이윤과 개인소득에 대한 원천과세가 전혀 없거나 과세시에는 아주 저율의 세금이 부과되는 지역을 말한다. 면세대상과 정도에 따라 △조세천국(tax paradise) △조세은신(tax shelter △조세특혜(tax resort) 지역으로 구분된다.
그 중에서 헤지펀드가 활동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가 조세천국지역이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헤지펀드들의 80% 정도가 이 지역에서 활동해 왔다. 세계 3대 조세회피지역으로는 캐리브해 연안과 아일랜드, 말레이시아 북동부 지역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갈수록 활동무대가 인터넷과 같은 온라인상으로 이동되는 추세다.
투자전략은 ‘수동적’ 자세가 지배적이었다. 수익을 내주는 주체는 투자대상이고, 헤지펀드는 레버리지(증거금대비 총투자 금액) 비율을 끌어올려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취해 왔다. 그만큼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움(채무상환 유예)의 직접적인 배경이 됐던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의 경우 레버리지 비율이 100배에 달했다.
헤지펀드 투자전략에 변화를 몰고 온 것은 2008년 금융위기다. 1990년 이후 각종 위기에 직간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한 헤지펀드가 금융위기를 정점으로 국제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초래했다. 헤지펀드가 수익성이 떨어지고 투자원금이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하면 투자자로부터 마진 콜(margin call)을 당한다. 마진 콜이란 각종 펀드들이 수익률 하락으로 증거금에 일정 수준 이상 부족분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보전하라는 투자자들의 요구를 말한다.
헤지펀드는 자신의 고객인 투자자로부터의 신뢰 확보를 생명처럼 여기고 있다. 특히 갈수록 기관투자자의 고객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야 지속 가능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헤지펀드들이 마진 콜을 당할 때에는 우선적으로 보완해 놓아야 계속해서 활동을 할 수 있다.
마진 콜이 발생하면 디레버리지 현상으로 연결된다. 디레버리지란 헤지펀드들이 자신의 고객으로부터 마진 콜이 있을 경우 증거금 부족분을 보전하기 위해 기존에 투자해 놓은 자산을 회수하는 행위를 말한다. 만약 이 과정에서 신용경색(credit crunch) 현상이 발생할 경우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국제금융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미친다.
헤지펀드들이 마진 콜을 당하면 먼저 신흥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대상으로 택한다. 그 결과 신흥시장에서는 외국자금 이탈에 따라 통화 가치와 주가가 동반 하락하게 된다. 헤지펀드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선진국 시장에서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가도 신흥시장에서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발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가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전환됐다. 미국 단일금융법의 핵심이 된 ‘볼커 룰’에서는 헤지펀드의 상징인 레버리지 비율을 5배 이내로 엄격하게 규제했다. ‘헤지펀드의 대부’로 통했던 조지 소로스가 자신이 운용하던 타이거 펀드 등의 자금을 고객에게 되돌려주면서 헤지펀드 활동이 위축국면에 들어간 것도 이때부터다.
하지만 엘리엇매니지먼트 운용자인 폴 싱어와 기업 사냥꾼으로 알려진 칼 아이칸 등은 새로운 규제환경에 적극 변신해 나갔다.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명목을 내걸고 투자대상 기업의 모든 것을 간섭하는 능동적인 자세로 바뀐 것이 행동주의 헤지펀드다. 금융위기 이후 수익률에 목말라 하는 투자자가 자금을 몰아주면서 급성장하는 추세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주인 정신’이다. 하지만 한국은 ‘윔블던 현상’이 가장 심한 국가다. 윔블던 현상이란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것처럼 국내 금융시장에서 주인인 우리 국민보다 외국인의 영향력이 높은 현상을 말한다.
한국처럼 윔블던 현상이 심한 국가는 외자유입에 따른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심하게 발생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외국자본이 우리 경제와 함께 발전하는 공생적 투자가 되지 못해 국부유출과 직결되는 점이다. 벌써부터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외환위기 이후 대표적인 먹튀 사례인 ‘제2의 론스타가 되지 않을까’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제정책 무력화도 우려된다. 외국자본은 수익을 최우선시함에 따라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에 비협조적일 때가 많다. 이 문제는 외국자본이 확대된 만큼 우리의 경제주권이 약화된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국제사회에서 금융위기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체제에 빗대 윔블던 현상을 ‘제2의 경제신탁통치 시대’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내 기업의 경영권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앨리엇 매니지먼트는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수익을 능동적으로 창출해 가기 때문에 종전과 같은 수준의 외국인 비중이라 하더라도 국내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정도는 더 심하다. 이밖에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켜 신용불량, 자살 등 사회병리 현상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높다.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행동주의 헤지펀드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외자선호 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과다 외화보유액과 경상수지흑자가 논란이 되고 있는 만큼 외자정책은 우리 경제의 공생적 투자가 될 수 있느냐 여부가 우선적으로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
외자유입 정도에 비례해 국내 자본의 육성과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처럼 대증적인 사모펀드나 헤지펀드를 조성하기보다는 외환위기 이후 제도 곳곳에 만연돼 있는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 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 간 역차별 요소를 걷어내는 것이 급선무다.
글로벌 시대에 있어서는 한국계 자금만 따지는 ‘은둔의 왕국’적인 사고방식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에는 언제든지 백기사가 된다. 이런 자세만 있다면 앞으로 더 심해질 행동주의 헤지펀드 공격으로부터 국내 기업과 우리 국부를 충분히 지킬 수 있다. 다음달 17일에 열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승인 주주총회 결과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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