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40만권 팔린 ‘지대넓얕’ 신드롬, 어떻게 봐야 할까?

입력 2015-07-02 10:20   수정 2015-07-02 17:47

▲ ‘지대넓얕’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사진 = 한경DB)


40여만권이 판매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대넓얕’, 잘 나갈수록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의 비난과 부러움을 동시에 받은 책 가운데 하나가 됐다. ‘지대넓얕’의 멤버들보다 더 공부를 많이 하고,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관건은 그 지식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따라 선호의 차이는 발생할 법하다. 물론 그 전달의 수단이 무엇인지 중요하겠다. 대개 지식의 전달수단으로는 인쇄매체를 생각할 수 있고, 그 수단이 디지털매체라고 해도 인터넷 글쓰기를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지대넓얕’의 효과는 오로지 책의 힘이라기보다는 팟캐스트의 힘이 컸다. 대개 이런 현상을 쉽게 말할 수 있듯이 미디어셀러인 셈이다. 일단 많은 이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인지하고, 그 인지 여부에 따라 책의 구매가 이루어지는 현상은 특별하지도 난데없지도 않다. 다만, 기존의 미디어셀러가 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영화의 힘에 좌우되는 경향과 달리 인터넷 1인 미디어의 효과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지만 단지 이런 미디어의 속성 때문에 찾은 것은 아닐 것이다. 마셜 맥루한이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했지만 그 미디어 때문에 선호를 받는다면 다른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지 못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일단 이를 위해 ‘지대넓얕’의 제목에 주목을 할 필요가 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원래 제목이다. 여기에서 지식은 얻는 목적이 나와 있다. 일단 대화를 위해서다. 그 대화라는 것도 학술이나 연구활동과 거리가 멀다. 대화는 ‘지적’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아예 본색을 드러내 버렸다.

‘지적(知的)’이라는 말은 지적이라는 말은 지식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정말 지식이 많은지는 알 수가 없다. 대화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깊숙하게 알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발음하기는 약간 어렵지만, 넓고 얕은 이라는 단어를 덧붙이고 있다. 대화의 연결고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분야보다는 여러 분야를 다양하게 아는 것이 중요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넓고도 얕게 다방면에 걸쳐서 알아야할 듯싶다. 넓고 얕게 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아무 것도 모른다는 뜻일 수 있다. 하지만 아는 체를 하는 대화의 자리라면 그것이 정확하게 그리고 심오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지적으로만 보이면 될테니 말이다. 물론 이 책이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 지식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놀라운 것은 시대적인 정서의 변화다. 이제 더 이상 ‘~철학’이라거나 ‘~정석’이라는 단어가 붙는 책들은 외면 받는다. 무겁고 둔중하고 깊이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책들은 피한다. 시대적인 경향은 가볍고, 얕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다.

오히려 가볍지 않은 것에 대해서 질타를 하거나 불안의식을 갖고 있다. 전 시대가 너무 무겁고 진지했기 때문에 정말 문제가 많았던 듯싶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문제가 많은지는 알 수가 없다. 미디어 자체가 아니라 포맷이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어쨌든 학술이나 연구를 위한 공부를 필요 없다. 어디라도 철학을 붙이는 따위의 진중하고 아카데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일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냥 지적인 대화를 하기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당당할 뿐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안다는 것만큼 쓸데없는 것도 없다. 어차피 지식은 이미 그 권위를 잃은 지 오래다.

여기에서 새삼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식들의 연결고리를 갖는 관점과 이론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라도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여기에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지대넓얕’에 배인 심리가 결정장애 세대의 딜레마와 닿아있다는 점이다.

세상의 지식을 넓고 얕게 알기 때문에 결정을 할 수가 없다. 세상의 지식을 넓고 얕게는 몰라도 하나를 제대로 알면 그것에 열정을 갖고 끝까지 투지를 가지고 밀고 올라가는 집중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넓고 얕게 많이 아는 것 같지만 갈수록 그러한 점은 결정장애 현상을 낳을 수 있다.

문제는 선택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자기 실현화다. 오로지 자신의 신념과 경험 그리고 비전을 통해 자기 실현화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고, 본인에게도 선순환의 결과를 도출해줄 것이다. 지적 대화가 아니라 무식하더라도 실천을 통해서 무엇인가 현실화시키는 것이 오히려 결정장애세대가 갖는 딜레마를 푸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식은 팟캐스트와 유투브, 책에서만 존재할 것이다. 즉 그 존재 자체가 미디어 속에서만 맴돌 뿐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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