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제목처럼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다룬 작품이다. 동시에 그와 7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영혼의 교감을 나누었던 동생 ‘테오 반 고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뮤지컬은 위대한 유산으로서 남은 ‘고흐’의 그림이 아닌, 가난과 세상의 잣대를 견뎌야 했던 인간 ‘빈센트’를 담는다. 작품은 누구보다 풍성하고 황홀한 색채로 희망을 그려낸 빈센트의 그림들은 물론 그를 괴롭혔던 무의식적 공간까지 미디어 프로젝션 맵핑을 사용해 무대 위로 불러올린다.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베스트신을 꼽아봤다.
‘From. 빈센트 반 고흐’
첫 장면-마지막 장면의 반복 효과
형의 죽음을 정리하던 동생 테오가 허공에 던진 “이날 밤 어땠어?”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장면이다. 빈센트는 동생의 질문에 답하듯 “바람과 온도, 달과 별의 하모니 모든 시름을 잊을 만큼 아름다운 오베르 밤”을 노래한다. 바람을 타고 밀려드는 밀밭 파도를 어루만지는 듯한 평화로운 멜로디 속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빈센트의 모습이 환영처럼 움직이고, 테오는 형이 남긴 그림과 편지들을 바라본다.
이 장면은 첫 장면과 극의 종반부에 다시 한 번 반복된다. 오프닝 장면은 동생 테오와 다른 시공간에서 움직이는 빈센트의 모습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향후 펼쳐질 이야기의 ‘서막’을 체감하게 한다. 시각적으로 잔상이 남아 있는 이 장면은 극의 끝에 이르러서야 그 진가를 발휘한다. 관객은 작품이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형제애, 희망, 좌절, 고통 등을 가슴에 쌓게 되고, 리프라이즈 장면에 다다르면 응축된 사연들이 첫 장면과 겹쳐지면서 강렬한 각인 효과를 준다. 극이 끝나고 난 뒤에도 바람부터 밀밭으로 떠나는 빈센트의 뒷모습은 ‘From. 빈센트 반 고흐’의 멜로디와 함께 오래도록 잔상이 남는다.
‘개의 눈물’
버리고, 버림받은 빈센트의 절규
‘개의 눈물’은 빈센트가 집안의 압력으로 인해 사랑했던 거리의 여인 ‘시엔’과 이별한 후 집으로 돌아와 부르는 노래다. 이 장면은 프로젝션 영상과 배우의 연기, 음악이 혼연일체를 이루는 베스트신 중 하나다. ‘개의 눈물’은 고흐가 ‘광기’에 휩싸이게 된 원인 중 가장 첫 번째 사건으로 극에서 묘사된다. 사랑했던 ‘시엔’을 버리면서 고흐의 정신적 세계는 무너진다. 이때 영상은 고흐의 무의식적인 세계를 시각적으로 옮겨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장면에서는 영상으로 구현된 빈센트의 방이 그의 발길질을 따라 붕괴해 내리고, 빈센트는 그것을 피해 벽장 속으로 몸을 숨긴다. 배우는 실제 세트 속에 숨지만, 그 위로 미리 촬영해 둔 ‘벽장 속에 숨은 빈센트’의 영상이 더해져 입체감을 입힌다. 음산하면서도 음울한 가사와 선율은 오싹한 느낌까지 준다. 무의식적 세계를 다루어낸 프로젝션 맵핑의 창의적인 활용법을 살펴보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눈앞에 비춰지는 시각적 효과도 상당하다. 특히, 서서히 광기에 사로잡히는 빈센트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숨을 삼키게 한다.
‘피할수 없는 충돌-끝나지 않는 고통’
달라도 너무 다른 고흐와 고갱
빈센트는 마지막 희망의 끈이었던 ‘화가 공동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과 경력이 비슷한 고갱이 노란 집으로 찾아와주길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성향은 시시때때로 부딪힌다. 결국, 고흐의 지나치게 예민한 성격과 과다 몰입적인 태도를 견디지 못한 고갱이 떠나려 하고, 고흐는 광기와 절규로 그를 붙잡으려 한다.
이 장면은 배우의 연기가 압권이다. 빈센트 역의 배우가 거세게 내친 이젤이 두 사람의 그림을 무너뜨리고, 영상으로 덧입혀진 프로젝션 맵핑의 영상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면서 고흐의 이성이 혼란에 휩싸인 것을 표현해 낸다. 바닥을 기면서 자신의 혼란을 토해내는 배우의 열연은 영상 효과마저 잡아먹을 듯 무대를 가득 메운다. 감정적으로 압도당하는 장면이자, 동시에 가장 파괴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8월 2일까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김경수, 김보강, 조형균, 김태훈, 박유덕, 서승원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