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부터 서울역에 흔히 볼 수 없었던 특별한 광고가 게재되어 행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지하철 복도 외진 곳에 위치해 주목을 받기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광고는 SNS를 뜨겁게 달구었다. 인기 일본 애니메이션 ‘러브라이브`의 등장인물 ‘야자와 니코`의 생일을 축하하는 홍보물이 와이드 컬러 사이즈로 서울역 지하 통행로에 걸린 것이다.
“대은하 우주 No.1 7/22 YAZAWA NICO HAPPY BIRTHDAY!” 라고.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관련 광고가 지하철 역에 게재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제까지는 학여울역 같이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이 즐겨 찾거나 평소에는 한적한 역이 타깃이었다. 매니아가 많지 않은 서울역에 광고가 실렸다는 점에서 이번 ‘야자와 니코 생일 광고`는 국내 애니메이션 팬 광고가 한 단계 진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러브라이브는 일본의 전격 G’s 매거진, 란티스, 선라이즈가 합작해 만든 가상 아이돌 프로젝트다. 폐교를 막기 위해 스쿨 아이돌을 결성하고 학교를 알려 입학 희망자를 늘린다는 설정이다. 이러한 설정 위에 러브라이브는 음반과 뮤직비디오을 발매했고, TV 애니메이션을 거쳐 이제는 코믹스와 라이트노벨, 극장판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였다. 러브라이브가 몇 년간 그려온 궤적은 마치 실제 신인 아이돌의 성장 과정을 보는 듯 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를 함께 지켜 본 팬들의 결속력도 진짜 아이돌 그룹의 팬 못지 않다. 그들을 일컫는 ‘러브라이버`라는 이름에는 이런 오랜 시간의 흔적과 이 시간만큼의 열정이 담겨 있다.
이번 광고를 집행한 ‘젠(트위터 사용명)`은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라고 광고의 이유를 밝혔다. 제작사나 담당 성우 뿐만이 아닌 팬들도 함께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 ‘모두 함께 만들어 가는 이야기` 가 러브라이브 프로젝트의 모토이다. 이번 광고도 많은 팬들이 모금 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서류작업 등에 다 같이 참여하여 ‘모두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광고 결과물 만큼이나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젠`은 광고를 위한 140만원의 모금액 역시 팬들이 다 같이 뜻을 모은 것이라고 했다. 광고를 만드는 과정에‘힘든 일도 많았지만, 친해진 사람들도 많았다` 고 하며, 재차 `함께 한 과정`에 더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역 광고만큼이나 ‘니코의 생일 광고’ 모금을 위해 만든 광고 역시 각 커뮤니티에서 많은 이슈를 낳았다. 당시 진행된 광고 디자인은 형형색색의 강렬한 형광 그라데이션, 가독성 떨어지는 글자체에 비율이 찌그러진 그림을 여기저기 엉터리로 배치해서 디자이너들이 한숨을 쉴 법한 도안이었다. 광고 디자인의 금기 사항을 모조리 집어넣는 방식으로 눈에 띄어버린 역발상의 광고는 오히려 많은 웃음을 주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우와 정말 대단해`라는 인터넷 유행어도 만들어냈다.
그러나, 과거 국내에 러브라이브의 공식 콘텐츠로 출시된 모바일 게임 ‘러브라이브 스쿨 아이돌 페스티벌`의 지하철 광고와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당시 국내의 일부 극성스런 팬들은 러브라이브 캐릭터가 그려진 담요 등을 뒤집어 쓰고 광고 앞에 절을 하는, 대만과 일본의 오타쿠들이 했던 일을 국내에서 흉내를 낸 것이다. (누군가가 시작한 러브라이버 커밍아웃 방식이었지만 강렬한 인상 때문에 점차 유행하기 시작했고 러브라이버들 사이에서는 일본을 넘어 범 아시아적인 놀이가 되었다.)
젠은 “제발 러브라이브 팬들이 공공질서를 해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이번 광고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절은) 절대 하지 말라. 그저 지나가다 봤다 라는 느낌이면 좋겠다. 사진을 찍는 정도로 만족했으면 한다"라고 말해 팬심의 과도한 분출은 자제해 달라는 입장을 본인의 블로그에 이어 이번 인터뷰에서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텀블벅과 같은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금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질문에는 ‘그 때는 잘 몰라서’ 라고 대답했다. 덧붙여 이렇게 경험부족으로 이번 광고를 진행했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나름의 노하우를 얻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후로 비슷한 프로젝트가 진행 될 경우 이들과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광고에 후원을 보내준 러브라이브의 팬들에게는 남은 예산으로 광고 도안이 담긴 선물을 제작해 보내줄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내년엔 서울역에 러브라이브의 등장인물 9명 전부를 걸어보고 싶다"라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원대한(?) 포부를 밝힌 ‘젠`은 이번 22일 야자와 니코의 생일엔 자신도 다시 한 번 서울역을 찾아 자신이 만든 ‘성지`를 ‘순례`하겠다고 말했다.
본 광고는 8월 1일까지 게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