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화정’의 한 장면(사진 = MBC) |
사극의 유행에서 그 인기요인에 관해 여러 가지 분석이 있었는데, 그 분석들을 반영한 사극들은 오히려 모두 고전을 하는 경향이 있다. 도대체 그 장점과 비결대로 제작을 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1)너무 말이 많으면 안된다. 또한 2)복잡하면 안된다. 3)최신 흐름에 맞춰 앞서간다며 덥석 낯설어도 안된다. 이에 견줘볼 수 있는 정통과 멜로사극 그리고 퓨전 사극이 세 편 방영되고 있어 비교사례가 되고 있다.
드라마 ‘징비록’은 드라마 ‘정도전’이 보여준 정통 사극의 면모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정도전’에 기대감을 갖게 만든 것은 그동안 잘 조명되지 않았던 정도전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고려말 권력 쟁투와 조선초 이성계와 이방원의 패권 싸움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도전은 조선을 설계한 인물이라고 회자되면서 의식이 있다는 지식인 시청자를 중심으로 기대감을 갖게 했다. 이것이 초반부의 입소문을 좌우했다.
드라마 ‘징비록’도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영화 ‘명량’ 열풍에 이어 이순신 신드롬이 일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제작진은 이순신은 일부러 배제했다. 특히, 전투장면들이나 이순신의 에피소드는 최대한 줄였다. 이러한 점은 이순신에 대한 집중성을 제거하고, 류성룡에게 초점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류성룡을 부각하기 위해 선조가 희생양(?)이 됐다. 이유는 이 드라마가 주로 액션보다는 말로 서사구조를 풀기 때문이다.
시각적 매체인 텔레비전에서 말이 너무 많으면 시청자들은 인지적 피로감을 갖게 마련이다. 말이 많은 사극 즉 정통 사극이 외면 받고 퓨전 사극이 나온 이유는 이 때문이다. 퓨전 사극의 대표적인 특징은 바로 언어의 과잉이 아니라 시각적 이미지와 효과의 과잉이었다.
임진왜란을 다룬 드라마 가운데 행위적 장면을 억제한다면 시청자의 기대감을 배반하게 된다. 무엇보다 류성룡의 한 인물에 임진왜란 전체의 사건구조를 수렴해나간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복잡성의 깔때기 효과는 역사적 공간과 사안이 잘 맞을 때 일어날 것이다.
현대사극은 천편일률적인 캐릭터의 단선성을 벗어나 복합적이고 상대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상대적이고 복합적이면 역시 피로증을 유발한다. 감정을 이입할 대상은 명확하고 뚜렷하게 유지되어야 좋다.
드라마 ‘화정’은 최근 불고 있는 광해군 코드에 멜로 그리고 복수 코드에 중층적 서사구조를 결합하고 있다. 또한 현대 사극이 가지고 있는 선악의 상대성을 말하고 있다. 이는 전환과 반전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자극하지만 그것이 빈번하게 이뤄지면 시청자는 피로해진다.
드라마 ‘화정’에서 각 인물들은 단선적인 인물이 하나도 없을 만큼 복합적인 선과악의 구도 속에 있다. 이런 인물들의 상대적인 갈등과 번민은 인간적인 동정과 감정이입을 낳을 수 있지만, 시청자에게는 그것이 자칫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더구나 고증에 바탕을 둔 사극이라면 중심인물의 명확한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한다.
이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이 소망과 바람을 대리충족 시키고자 하는 인물은 없는 셈이다. 예컨대, 영화 ‘광해’에서 감정을 몰입할 대상은 분명하고 명확했다. 하지만 드라마들은 대개 복잡한 서사와 캐릭터의 복합성을 내세워 애초의 스토리에 대한 과잉정보성만 강화했다.
▲ 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의 한 장면(사진 = MBC) |
대표적인 것이 뱀파이어 코드다. 뱀파이어 코드는 케이블이나 웹툰, 웹소설 등에서 큰 화제를 모은다. 이러한 새로운 소재를 받아들이는 것은 드라마의 진보를 위해 좋은 듯싶다. 하지만 이도 적절한 단계적 융합이 필요했다. 친숙함의 길들이기 과정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뱀파이어 캐릭터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 구성면에서 보았을 때 여전히 낯설기 때문이다.
의학드라마였음에도 고전한 ‘블러드’의 실패는 이를 말해주는 것이었고,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삼은 ‘밤을 걷는 선비’의 운명도 그렇다. 밤선비는 물론 멜로 코드로 그 방어막을 치고 있지만, 멜로의 복합성은 혼란을 초래할 수 있었다.
시각적 볼거리가 많아도 오히려 낯선 캐릭터와 그것이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서사는 배우들의 열연에도 고전하게 만든다. 애초에 고전의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는 웹툰과 드라마의 인터페이스의 차이만이 아니다. 차라리 뱀파이어와 구미호의 대결을 펼치는 것이 나을 뻔 했다. 그것은 익숙함과 새로운 것의 점진적 결합이기도 때문이다.
요컨대, 정통의 정통으로 치달아가는 것은 클래식의 질곡으로 들어가 미아가 되기 쉽고, 익숙한 것을 구별 짓기 위해 복합화, 상대화하면 기대불일치 효과가 일어나게 되며, 평범한 범인들에 비해 너무 앞서가면 친숙할 절대시간이 필요함을 간과하게 만든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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