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북폰' 리명국 앞에 고개 숙인 한국축구, 한국 동아시안컵 우승

입력 2015-08-10 10:22   수정 2015-08-11 00:14


▲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의 이종호가 북한과의 경기에서 오버헤드슛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은 동아시안컵에서 우승을 했다.(사진 = 대한축구협회)


웬만한 남자들은 축구장에 서서 골문을 바라보며 쉽게 `골`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기가 국가대표가 된 것처럼 자신감을 나타낸다. 이 세상에 골보다 쉬운 것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제 축구 경기에서 골은 정말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만들어졌을 때 얻어낼 수 있는 소중한 결과물이다. 물론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어이없는 상황에서 굴러들어가는 골도 나오기는 하지만 최고의 선수들이 펼치는 경기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동아시안컵 남자팀끼리의 남북대결에서도 그랬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9일 오후 6시 10분 중국 우한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북한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었지만 끝내 0-0으로 득점없이 비기는 바람에 자력 우승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 대회 첫 경기에서 개최국 중국을 2-0으로 물리치면서 멋진 승리를 만들어낸 선수들을 다시 중용했다. 왼쪽 수비수 홍철 대신 이주용을, 주장 김영권의 파트너로 김주영 대신 김기희를 들여보낸 것만 달랐다.

예상했던 것처럼 한국의 일방적인 공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8분만에 왼발잡이 미드필더 권창훈이 결정적인 왼발 대각선 슛을 날리며 이 흐름이 확인됐다. 하지만 북한선수들의 끈질긴 집중력과 기동력도 이에 못지 않았다. 경기 내내 공이 느슨하게 흐른 흔적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남북대결은 믿고 보는 명승부 그 자체였다.

`박지성의 재림`으로 평가받으며 이번 대회를 통해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 이재성은 역시 최고의 활동력을 자랑하며 한국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자신이 해결사 역할까지 해내기에는 뒷심이 모자랐다.

40분 전북 현대 소속의 팀동료 수비수 이주용의 왼쪽 크로스를 낮게 이어받은 이재성이 골문 정면에서 회심의 왼발 인사이드슛을 날렸지만 북한 골키퍼 리명국은 주장 완장의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슈퍼세이브를 기록했다.

이탈리아의 명 골키퍼 지안뤼지 부폰(유벤투스)의 이름을 따서 `북폰`이라는 별명이 붙은 리명국은 후반전에도 한국선수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막힌 선방을 여러 차례 더 보여줬다.

73분에 오른쪽 측면 공격을 짧게 이어간 한국은 또 하나의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잡았다. 여기서 흘러나온 공이 골잡이 이정협의 오른발 돌려차기에 걸렸지만 북한 골키퍼 리명국은 중심이 흔들렸으면서도 기막히게 쳐냈다.

리명국의 순발력이 더 분명하게 입증된 순간은 후반전 추가시간 2분경이었다. 88분에 이재성 대신 들어온 키다리 골잡이 김신욱이 오른쪽에서 굴러오는 낮은 크로스를 향해 유연한 발목을 이용하여 힐킥으로 골을 노렸다. 누가 봐도 한국의 우승을 확정짓는 극장골 순간이었다.

하지만 리명국은 중심을 최대한 낮춰 이 공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왼쪽으로 몸을 날려 쳐냈다. 김신욱도 벤치의 슈틸리케 감독도 머리를 감싸쥐며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이밖에 왼발잡이 미드필더 권창훈은 가장 안타까운 장면을 두 차례나 경험한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후반전 중반에 왼쪽 끝줄 바로 앞에서 짧은 크로스로 북한 골문을 위협하는 순간, 그 앞을 막아선 북한수비수 리영철이 오른손으로 공을 막아낸 것이다. 누가 봐도 페널티킥을 선언해야 했지만 알리레자(이란) 주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왼쪽 코너킥을 선언했다.

73분 이정협의 오른발 돌려차기가 북한 골키퍼 리명국의 선방에 막히고 흘러나온 공도 권창훈의 왼발에 제대로 걸렸다. 그의 왼발 끝을 떠난 공은 리명국을 이미 통과했기에 이것도 당연히 골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뒤를 버티고 있던 것도 몇 분 전 핸드볼 반칙으로 크로스를 끊었던 리영철이었다. 권창훈과 리영철의 악연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이어진 셈이었다.

이처럼 한국선수들의 결정적인 공격은 북한 골키퍼 리명국이나 수비수 리영철에게 여러 차례 가로막혔다. 결국 승점 3점을 따내지 못한 한국선수들은 고개를 숙이며 경기장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쉬워보였던 자력 우승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이어서 9시 10분에 같은 곳에서 열리는 개최국 중국과 북한의 맞대결에서 중국이 이기면 고스란히 우승 트로피를 빼앗기게 되는 위기에 몰렸으나 다행히 한국 동아시안컵 우승은 이뤄졌다.

이 대회의 우승 의미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한 달도 남지 않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일정을 감안할 때,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크게 심어줄 수 있는 기회를 일단 놓쳤기 때문에 `골 결정력 해결`이라는 작은 숙제 하나를 안고 돌아오게 된 셈이다.

※ 2015 EAFF 동아시안컵 남자부 결과(9일 오후 6시 10분, 우한 스포츠센터)

★ 한국 0-0 북한

◎ 한국 선수들

FW : 이정협

AMF : 이종호(66분↔정우영), 김승대, 이재성(88분↔김신욱)

DMF : 권창훈, 장현수

DF : 이주용, 김영권, 김기희, 임창우(86분↔정동호)

GK : 김승규

- 경고 : 리영철(35분)

◇ 남자부 현재 순위

한국 5점 1승 2무 3득점 1실점 +2

북한 4점 1승 1무 1패 2득점 3실점 -1

중국 3점 1승 1패 2득점 2실점 0

일본 1점 1무 1패 2득점 3실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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