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란이 되고 있는 맥심 김병옥 패륜화보(사진 = 맥심코리아) |
성인잡지 맥심이 김병옥을 내세워 찍은 이른바 ‘나쁜 남자 화보’가 화제다. 현재 공개된 표지 이미지를 보면, 김병옥이 전형적인 폭력배 스타일 차림에 구형 그랜저를 끼고 서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다. 뒤 트렁크가 열려 있는데 문틈 사이로 청테이프에 의해 결박된 여성의 다리가 보인다.
이 사진이 논란을 일으키자 맥심 측은 악역 배우 김병옥을 느와르 영화 속 악인으로 설정한 화보라며, 살인이나 사체유기 등을 영화적으로 표현한 것은 맞으나 성범죄적 요소는 없다고 해명했다. 범죄의 한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 성범죄를 성적 판타지로 미화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성범죄만 표현하지 않으면 이런 화보가 용납될 수 있는 것일까?
영화는 스토리로 말하고 사진은 이미지로 말한다. 영화 속의 범죄 장면은 기승전결 스토리 안의 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지만, 맥심의 사진은 이미지 그 자체가 보는 사람에게 의미를 전달한다. 따라서 영화적 표현이라는 맥심 측의 해명은 말이 안 된다. 수만 컷의 이미지를 연속 재생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와, 단 한 컷의 이미지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진은 다른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
지금 문제가 된 사진은 여자를 결박해 차 트렁크에 가둔 범죄자를 멋지고 당당한 남성으로 그리고 있다. 아래에서 위를 향한 카메라의 시선으로 잡힌 범죄자의 모습은 성공한 남성을 그릴 때의 바로 그런 이미지다. 이 속에서 여성은 남성의 전리품처럼 인식된다. 김병옥이 그랜저에 한 손을 얹은 포즈를 취한 것은, 그랜저와 그 안의 여성이 전리품 혹은 소유물이라는 노골적 과시의 의미로 읽힌다.
맥심은 주로 남성의 욕망을 그리는 잡지로, 이 속에서 여성은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남성은 선망의 대상, 혹은 동일시의 대상으로 다가오게 된다. 즉, 여성을 포획한 남성이 멋진 남성으로 선망의 대상처럼 오인될 우려가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흉악범죄자를 멋진 남성처럼 부각시키는 화보가, 그것이 성범죄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순 없다.
사실은 성범죄를 그린 것이 아니라는 해명도 군색하다. 차 트렁크에서 여성의 결박된 다리가 밖으로 드러난 것 자체가 이미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거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인 의미가 없다고 강변하려면 최소한 옷과 신발이라도 걸쳤어야 했다. 현재 공개된 화보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여성의 맨다리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 성적인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도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납치범죄는 성적인 가해 행위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제작자가 아무리 성적인 의도 없이 ‘순수 폭력’(?) 의도만 가지고 작업했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론 성적인 느낌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첫째, 맥심 측의 해명처럼 정말 성범죄 표현이 아니라고 해도 문제이며, 둘째, 사실은 성적인 느낌이 충분이 녹아있는 사진이라는 것이다.
갈수록 도를 넘는 흉악범죄가 범람해 국민의 공포가 극에 달한 상황이다. 특히 주로 범죄의 대상이 되는 여성의 공포가 극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대상 범죄를 화보로 즐기는 건 그 자체로 패륜이다.
게다가 이런 화보는 이런 종류의 욕망을 가진 잠재적 범죄자를 자극할 수도 있다. 꼭 범죄자와 연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남성 독자의 여성관이나 성의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 단순한 대상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이번에 문제가 된 맥심 화보는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할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막 나가도 흉악범죄 사진을 엔터테인먼트로 즐기는 패륜 막장만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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