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돌아왔다. 원조 ‘로코퀸’ 배우 김정은이 지난 1일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한국경제TV 와우스타와 마주했다.
“걱정 많았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범한 척 했지만 부담도 많이 됐죠. 약간의 기대치라도 부응하지 못할까봐 우려를 많이 했어요. ‘이상하게 받아들여지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앞으로 더 용기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정말 잘 만난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어요. 고마운 드라마에요.”
김정은은 지난달 30일 인기리에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여자를 울려(연출 김근홍, 박상훈·극본 하청옥)’에서 전직 강력반 여형사이자 밥집 아줌마 정덕인 역을 맡아 연기를 펼쳤다.
“정덕인 스스로 주체가 되고 문제를 해결하는 부분이 정말 매력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여자가 주체가 되는 이야기는 많이 없잖아요. 그런데 이 드라마는 이 여자의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어서 안할 이유가 없었어요. 물론 극중에서 너무 큰 사건이 있었고 쉽게 간과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매력 있었어요. 감독님, 작가님도 저의 ‘밝음’ 때문에 캐스팅을 하셨다고 말씀하세요. 어두운 부분을 ‘어두운 사람’이 아닌 ‘밝은 사람’이 극복해나가는 차이가 있잖아요. 내가 도전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정덕인은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후 직장을 그만두고 학교 앞에서 밥집을 운영한다. 학생들에게 인심 좋은 아줌마로 통하기도 하고 전직 여형사답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 홍길동 아줌마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래서였을까. 자신의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학생이 학교 폭력에 시달리자 이를 대변하듯 교무실에서 울부짖기도 했다.
“처음에는 ‘내 아들이 아닌데 왜 이럴까? 가해자가 아닌 왜 교무실에서 그럴까?’라고 생각하다가 멈췄어요. 계산할 문제가 아니었어요. 어느 순간 아침에 눈을 떴는데 ‘나는 엄마다. 나는 자식을 먼저 보낸 엄마다’라는 문장이 하루 종일 맴돌았던 것 같아요. 세상의 엄마를 대변하는 느낌이었죠. 나는 엄마고, 세상을 향해서 울부짖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정신없이 촬영했던 것 같아요.”
덕인은 사연이 참 많은 여자다. 아들을 잃었고 남편이 바람났다. 그의 상처를 감지한 듯 학교 선생님인 강진우(송창의 분)는 오열하는 덕인을 보듬어줬고, 이내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덕인은 ‘나 같은 여자를 왜 사랑하느냐’고 물으며 진우의 ‘혼내줄 거야’라는 명대사(?)를 낳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담백한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짧았던 애정신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드라마 보실 때 많은 여성 팬 분들이 저를 아바타로 삼고 제 눈으로 창의 씨를 보시는 것 같아요. 창의 씨는 자칫 느끼할 수 있는 대사를 안 느끼하게 하는 매력이 있거든요. 담백한 얼굴을 갖추고 대사도 담백하게 툭툭 던지니까 전혀 느끼하지가 않아요. 실제로 설레기도 했죠. 연기할 때 어느 순간 이 사람 눈을 오래 마주치고 ‘눈이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사랑할 것 같아’ 라는 대사를 읊조리기도 했어요. 그 순간 만큼은요. 많이들 아쉬워하셨는데 타이밍이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극이 마라톤처럼 전개되다가 덕인에 관한 이야기가 먼저 가고 다른 부분이 뒤처지게 돼서 한꺼번에 얘기를 하게 되다 보니까 창의 씨와 알콩달콩한 부분도 적었죠. 그래도 늘어지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풀어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두 사람의 행복은 잠시였다. 덕인의 아들은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일진 학생의 폭행을 피하려다가 도로로 뛰어들어 사고가 났고, 그 일진 학생이 진우의 아들 강윤서(한종영 분)이었던 것. 그 사실을 알게 된 덕인은 다시 교무실을 찾아 오열하고 이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을 함께 눈물짓게 했다.
“도망가고 싶었어요. 무기 없이 맨 몸으로 적이 있는 장막 안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어요. 전에 찍었을 때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진이 다 빠지고 정신도 없는데 이렇게 해도 되나 겁이 나기도 했고요. 감독님께 어떻게 하면 되냐고 많이 물었는데 그때 ‘괜찮다, 네 등 뒤에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이 있다’며 힘을 주셨어요. 울컥했어요. 이것 보다 강한 용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여자를 울려’라는 제목 때문이었을까. 극 중반부터는 덕인 특유의 밝고 건강한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보였다. 감정신이 길었던 만큼 시청자를 지치게 하기도 했다.
“제가 초반에 너무 잘해서 그러셨을까요?(웃음) 아마 시청자분들께서 제 감정을 따라오시니까 답답하셨을 것 같아요. ‘아이가 죽은 이유가 이 남자 때문이다’라는 전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반의 건강함을 잊지 못하신다는 건 초반의 모습을 그리워하신다는 생각을 했어요. 덕인이가 아줌마의 힘으로 나쁜 놈을 제압하고 때려 부수고 하는 모습이 우리나라 엄마들의 카타르시스를 풀어주지 않았나 싶고요. 하지 않기로 된 이야기로 전개되거나 그런 부분은 없어요. 계획한대로 진행됐지만 많이 충족시켜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우려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 25.5%(전국 기준, 닐슨코리아 제공)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정말 감사하죠. 시작할 때는 15%에 가까이만 가도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정말 온에어로 보시는 분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런데 드라마가 참 재미있었던 게 궁금증을 자아냈던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고생한 스태프 생각하면 시청률 잘 나온 덕분에 포상휴가도 가고 배우로서 뿌듯하죠. 말은 안 해도 사기 충전이 되거든요. 그런 면에서 기분 좋은 일이죠. 정말 다행인 것 같아요.”
김정은은 작품이 끝난 후 캐릭터를 빨리 벗어나는 것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총 40부작이라는 긴 호흡을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내내 지친 기색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고민이 무엇인지 물었다.
“잘 빠져나와서 최대한 제 자신이 스트레스나 상처 안 받고 잘 회복하고 극복하고 위로 받으면서 빨리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게 숙제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 배우들은 작품 끝난 후에 정신과를 방문한다던지 그런 게 용납이 안 되고 잘 안 가게 되잖아요. 이런 걸 쉽게 치부해버리기 쉬운데 제가 보기에는 힐링이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너무 극한 상황을 연기할 때 일수록 싱거워지고 웃으려고 노력했어요. 실없다고 할 정도로 더 그런 것 같아요. 너무 다 안고 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겠어요. 드라마 끝나니 무장해제 하는 기분이에요. 인터뷰도 마찬가지고요. 해제 되서 막 떠들고 하는 게 훨씬 더 편한 것 같아요.”
올해로 데뷔 20년차인 김정은은 공백기 동안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부담도 컸다. 그런 그에게 ‘여자를 울려’를 만나게 된 2015년은 참 의미 있는 해다.
“작품을 할 때 저는 누구보다 용기를 내는 사람이거든요. 이런 사람인 제가 작품을 띄엄띄엄하게 되면서 느끼는 바도 컸어요. 쉬는 기간 동안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급하거나 피폐하게 보내지 말고 좋게, 느긋하게 시간을 여유 있게 보내자고요. 그런데 저도 인간인지라 어찌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런 고민을 잔뜩 하던 찰나에 좋은 작품을 만났어요. 어찌할 바를 몰라서 일단 ‘내 것을 다 놓고 해야지’ 하는 기분으로 했는데 그게 다른 모습으로 많이 봐주셔서 큰 용기를 불러일으킨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사실 배우는 어떻게 보면 강하지만 나약하거든요. 응원해주고 잘한다고 해주면 끝없이 올라갈 수 있지만 그게 아닐 경우에 맞서고 버틸 수 있는 배우는 몇 없을 거에요. 만약에 고민 많이 하고 힘들게 해서 보여드렸는데 호평과 칭찬이 이어지고 하지 않는다면 그만큼의 용기는 얻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작품이 저한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2015년은 제게 큰 용기를 준 해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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