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ㆍ일본ㆍ태국의 음식 전문가가 본 한식은 ‘헬시(healthy)’

입력 2015-09-19 11:15  

“한국 음식은 헬시(healthy)하다. 한국엔 훌륭한 음악과 춤이 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궁중요리와 백자ㆍ청자ㆍ금속 놋그릇이 있다. 이런 점을 널리 알리면 세계인이 한국 음식을 더 많이 사랑할 것이다.”
15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한ㆍ중ㆍ일ㆍ태 4개국 한식 진흥 국제포럼’(농림축산식품부 주최, 한식재단 주관)에서 일본 전통 요리 연구가인 아야오 오쿠무라 원장은 “일본에서 저장 음식 ‘넘버 1’은 김치이고, 이유는 맛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오쿠무라 원장(78)은 55년간 일본의 전통음식을 연구한 학자로 ‘일본의 식문화 1300년’ㆍ‘건강한 일식 권유’ 등 수십 권의 음식 관련 책을 쓴 저술가이기도 하다.
오쿠무라 원장은 “일본 음식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며 “2차 대전 뒤 일본에 주둔했던 미군이 본국으로 돌아가 일본에서 먹은 음식이 맛이 괜찮았다고 주변에 알린 것이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또 “한때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던 일본의 자동차ㆍ카메라ㆍTV 등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덩달아 일본 음식에 대한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며 “하지만 요즘 지구촌에 퍼진 일본 음식은 일본의 전통 가정식이 아니라 상업화된 일본식이어서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는 요즘 서구식 식생활이 만연되고, 젊은 여성이 주방을 인테리어의 일부라고 여기며, 편의점ㆍ슈퍼에서 팔리는 간편 식품이 인기를 누리면서 일본의 전통 음식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한국인은 먹거리 문제에서 일본의 실패를 뒤따르지 말았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이날 ‘국제포럼’에선 일본의 식문화를 뜻하는 와쇼쿠(和食.화식)가 2013년 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오쿠무라 원장은 “무형문화유산 신청 당시 일본의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며 “일본이 와쇼쿠(화식) 대신 일본식을 내세웠다면 무형문화재 선정 실패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와쇼쿠가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됐을 때 가장 환호한 사람은 교토의 조리사였으며 일반인의 관심은 지금도 그리 높지 않다”며 “한식을 김장문화(2013년12월)에 이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면 정부ㆍ식품회사ㆍ조리인ㆍ대중이 혼연일체가 되고 한식의 건강 효과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일본의 유명 음식 작가 혼마 토모코씨(여)는 포럼에서 “와쇼쿠의 무형문화유산 등재가 수많은 일본인에게 일본 음식의 장점ㆍ특성을 바로 인식하게 한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며 “한식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려면 건강을 키 포인트로 내세울 것”을 조언했다.
‘태국 음식을 세계의 주방으로’란 슬로건을 앞세워 세계인의 혀끝을 자극하고 있는 태국의 음식 전문가들도 한식의 경쟁력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태국 방콕 소재 카세삿 대학 수라카이 주카로엔사쿨 교수(외식관리 전공)는 “한식은 채식 위주의 건강식이란 사실이 최대 강점”이며 “전 세계적으로 채식 열풍이 불고 있어 한식의 세계화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음식과 문화를 융합시켜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한식과 태국의 공통점이자 경쟁력이라고 풀이했다. 길거리 음식을 관광 상품화하는 일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라카이 교수는 “태국을 찾은 해외 여행객을 조사했더니 싸면서 맛있는 길거리 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았다”며 “길거리 음식 메뉴를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취급하게 해 길거리 음식은 싸구려 음식이란 인상을 지워 가치를 높여준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태국 음식과 와인을 함께 제공한 것이 태국 음식의 세계화에 기여했다”며 “서구에서 인기 높은 술과 한국 음식을 함께 식탁에 올리는 것도 연구할 것”을 제안했다.
이날 한식을 주제로 강연한 호서대 바이오산업학부 정혜경 교수(식품영양학 전공)는 “한식(韓食)은 밥이 주식, 반찬이 부식인 반상(飯床) 문화의 전형”이며 “밥과 반찬을 통해 탄수화물ㆍ단백질ㆍ지방ㆍ비타민ㆍ미네랄 등 5대 영양소의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웰빙 식단”이라고 규정했다.
두부 등 콩 식품과 김치 등 발효음식이 자주 밥상에 오르고, 식이섬유ㆍ불포화 지방ㆍ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 식물성 생리활성물질)이 풍부한 것도 한식을 돋보이게 한다고 했다. 나물과 발효음식이 발달된 것도 한식의 장점으로 꼽았다.

정 교수는 “‘99가지 나물 노래를 알면 3년 가뭄을 넘긴다’는 말이 있을 만큼 다양한 나물 반찬이 존재한다”며 “덕분에 한국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채소를 많이 섭취하는 국가”라고 전했다.
각종 나물엔 노화ㆍ성인병의 주범으로 알려진 활성산소를 없애주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최근 속속 밝혀지고 있다. 100세를 넘긴 국내 장수 노인의 공통점 중 하나가 항산화 성분이 많은 채소, 특히 나물 반찬을 즐겨 드시는 것이다.

정 교수는 한식의 담긴 철학의 하나로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뜻)을 거론했다. 우리 국민은 소스(sauce)를 양념이라고 부르는 데 양념은 ‘약’과 ‘생각’이 합쳐진 용어다. 양념은 음식의 잡내를 잡아줄 뿐 아니라 몸을 보(補)하는 약재란 것이다.
이날 ‘국제포럼’엔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대가인 한복려(중요무형문화재) 원장도 참석했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박태균 회장은 궁중음식의 특징으로 “음식종류ㆍ조리법 다양, 자극적인 맛을 피함, 엄격한 법도에 따라 조리, 모양이 바르지 않은 채소ㆍ생선은 쓰지 않음, 왕실의 건강 우선 고려” 등을 꼽았다.
사찰음식의 원칙으론 “채식 위주, 아침ㆍ저녁은 가볍게, 반찬 가짓수는 최대한 줄임, 시판 양념 사용 자제, 백미를 멀리 함” 등 5가지를 열거했다.
박 회장은 또 “종가음식에 대해 손이 너무 많이 가는 음식, 현대인의 입맛엔 맞지 않는 음식, 허례가 심한 음식이라고 오해를 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며 “종가음식은 슬로푸드(slow food)의 전형이면서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이라고 예찬했다. 사찰음식ㆍ궁중음식ㆍ종가음식은 중국ㆍ일본ㆍ태국 음식과 차별화되는 한식(韓食)의 숨은 매력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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