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수의 현대문화평설] 생산(生産)하지 말고 매개(媒介)하라

입력 2015-09-3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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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올해도 어김없이 수확의 계절이 왔다. 지난 주말부터 시작된 추석 연휴가 막을 내리고, 오늘부터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터로 돌아가게 됐다. 추석 이동차량으로 꽉 막혔던 고속도로도 뚫렸다는 소식이다.
<p class="바탕글">추석은 농경문화에서 살았던 우리의 선조들이 가을 추수를 마치고 하늘과 조상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전통 축제다.
<p class="바탕글">그래서 첫 수확한 햇곡식으로 송편과 각종 음식을 만들어 제물로 바쳤다. 그것이 차례(茶禮)다. 멀리 떠난 가족들도 고향을 찾아 부모형제와 함께 한 해의 풍년을 자축하는 의식이다. 또한 품앗이를 하며 함께 밭을 일구었던 이웃 간에도 화합을 다지는 날이기도 하다.
<p class="바탕글">그때 달에게 기원한 것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였다. 오곡백과(五穀百果)가 풍성한 가을의 넉넉함으로 매일 매일 부족함 없는 한가윗날만 같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다. 또한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풍요로운 수확이 되게 하기를 기원할 것이다.
<p class="바탕글">하지만 한가위 풍요 속에서도 땅 한 평 없는 사람들은 상대적 빈곤감을 느꼈을 것이다. 양반과 상놈이라는 신분의 귀천을 따지고, 사농공상이라는 직업의 귀천을 따졌을 때는 그 같은 명절 축제도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다.
<p class="바탕글">그래서 제한된 땅에서 보다 많은 수확량을 산출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제기되는 것은 필연적인 경제발전 과정이었다.
<p class="바탕글">그렇듯 조선에서도 농업혁명을 위한 책이 발간됐다. 세종 때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說)`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중국 의서(醫書)에서 벗어난 한국적 의학 이론이듯이, `농사직설` 역시 중국의 농서(農書)에서 벗어난 한국적 농업이론이다.
<p class="바탕글">당시 정부가 도지사(관찰사)들을 통해 농작물 재배 경험이 풍부하고, 산출량이 높은 농업인들로부터 농업기술을 수집해 정리한 것이다. 그때까지 기존의 농서들은 대부분 중국의 땅과 기후에 적합한 이론들이었기에 한국 실정과는 차이가 있었다.
<p class="바탕글">그래서 10종의 주요 농작물에 대한 한국적 경작이론이 탄생됐다. 종도(種稻) 편에서는 벼의 재배방법, 종맥(種麥) 편에서는 보리와 밀의 재배법이 제시됐다.
<p class="바탕글">마찬가지로 종교맥(種蕎麥)은 메밀, 종대두소두녹두(種大豆小豆菉豆)는 콩과 팥, 녹두, 종호마(種胡麻)는 참깨, 종서속(種黍粟)은 기장과 조, 수수, 종마(種麻)는 삼, 종직(種稷)는 피의 파종과 재배, 수확의 방법을 기록했다.
<p class="바탕글">위의 것은 각론일 테고, 총론으로는 이듬해 파종하게 될 종자의 준비방법을 적은 비곡종(備穀種)과 파종 전에 경작지를 일구어 고르는 방법을 기록한 경지(耕地) 편이 있었다.
<p class="바탕글">이 같은 농업연구가 조선의 경제학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영국에서는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1772~1823)와 같은 사람들이 토지와 재배 농작물과의 관계를 면밀히 검토해 `수확체감의 법칙(Law of diminishing returns)`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p class="바탕글">이를 테면 땅 스무 마지기를 다섯 사람이 농사 짓은 것이 적당한 것이지 열사람이 농사짓는다고 해서 소출량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경제적으로, 수학적으로 체계화해 발표한 것이다.
<p class="바탕글">하지만 농업 이외의 분야에서 그 반대 이론이 등장했다. 바로 브라이언 아서(W. Brian Arthur, 1945~ )가 주장한 수확체증의 법칙(Increasing returns to scale)이다. 처음엔 지식 정보산업에서 적절하게 이 이론을 활용하더니 최근에는 유통분야의 최신이론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p class="바탕글">단언하면... 땅 파는 농부가 되지 말고, 고향에서 소 판 돈을 밑천 삼아서라도 쌀장사를 하라는 것이다. 농부와 회원(소비자) 중간에 서서 쌀 유통 매개자가 되라는 것이다. 회원이 회원을 부르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가동될 수 있다는 것이다.
<p class="바탕글">그 예가 중국의 알리바바(Alibaba)다. 제품도 없고 공장도 없는 이 회사가 `매개`를 통해 세상을 점령했다는 것이다. 2014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될 당시 시가 총액은 약 1,680억(한화 175조 원)이었다. 구글과 페이스북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기업가치로 평가돼 국제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p class="바탕글">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 교수인 임충성은 이를 책으로 썼다. 책 제목은 `매개하라`. 영어로는 `Go Between`... 혀 짧은 필자가 직역한다면 `중간으로 가라`다. 그 중간에 서서 자신의 회원을 많이 맞이하라는 얘기다.
<p class="바탕글">알리바바는 삼성과 현대가 수십 년에 걸쳐 수많은 인력과 자본을 투자해 이룬 것을 순식간에 따라잡아 버렸다. 생산하지 않고 중간에서 매개한 결과가 그렇게 크다. 앞으로의 세상은, 또한 미래의 기회는 `매개하는 자`에 있다는 것이다.
<p class="바탕글">내년에도 분명 수확의 계절인 추석이 올 것이다. 금년 가을 수확량이 많지 않은 사람일수록 지금부터 당장 `프로 매개자`가 되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
<p class="바탕글">조선시대로 돌아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와 같은 가을 풍년가를 부른다는 것은 땅 없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얘기다. 하지만 경작할 땅이 없는 사람은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곡식 매개자 될 수 있기 때문이다.
<p class="바탕글" style="margin-left: 100pt">글_노규수 :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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