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인터스텔라'부터 '마션'까지… 잇단 우주 영화 흥행, 배경은?

입력 2015-10-09 16:12  

▲영화 `마션`, `인터스텔라`, `그래피티` 스틸컷


요즘 개봉하는 할리우드 우주SF는 차원이 달라졌다. 이러한 점은 심리학적인 연구결과물들이 적절하게 반영되어 서사와 시각적 효과, 메시지 중심의 한계에서 벗어나 작품성과 대중성을 현대인의 관점에서 잘 도출하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마션`에서는 SF이라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전투장면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주인공들의 우주여행 중에는 괴생명체 혹은 괴물체와 마주할 수 있는데, 영화 `마션`에서는 이러한 장면이나 암시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특징은 영화 `마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새로운 우주 영화의 도약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레비티`나 `인터스텔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등장인물들에게는 광선검이나 총이 없고 오로지 과학적인 지식이나 정보로 무장하고 있다. 단지 기계적인 적용이 아니라 그것을 적용하여 스스로 탈출해야 한다. 누구도 한번도 해볼 수 없는 방법들, 여기에 담대한 용기와 도전의 정신과 행동이 끊어질듯 하다가 다시 이어지는 과정속에서 흥미진진함만을 줄 뿐이다.

이런 영화들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우주여행 과정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대결을 그리거나 외계인과의 대결이 아니다. 대결이 있다면, 어려운 난관에 부딪힌 자신과의 싸움이다. 물론 그 싸움은 생존을 위한 분투다. 보는 관객들조차 이미 잘 알고 있고 스스로 감정이입을 하기에 충분하다. 우주공간이 얼마나 위험한 공간인지 아니 인간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곳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어떤 생명체가 아니라 우주 공간 자체다. 우주는 항상 그러하게 존재할 뿐이기 때문에 그 대상에 대해서 원망을 하거나 비난을 한들 소용이 없다. 인간에게 친숙하고 절대적인 지구라는 공간 자체에 인간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 공간에서 즉시 탈출하는 방법을 모색할 뿐이다. 어떤 괴물체가 생명을 위협한다면 그 존재를 없애면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우주 공간은 이미 그자체가 인간에게는 극복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간의 많은 SF작품들은 괴생명체의 캐릭터를 만드는데 더 골몰해왔다. 그것이 당장에 스릴과 공포를 매개로 흥미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진의 노력에 비해 캐릭터들은 흥미를 자극하지 못했고, 공포스러워야할 때는 오히려 초라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일취월장한 특수효과를 사용해도 말이다. 어쨌든 아직 우리의 단계는 그런 황당한 캐릭터로 놀랍게 만들기 보다는 우조공간 자체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괴생명체와 싸우는 SF우주 여행물이 전혀 쓸데 없는 유물만 남겨준 것은 아니다. 특정 공간을 여행하거나 괴물체와 싸우는 것은 주인공들에게 만족을 준다. 그것은 관객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성취감이다. 도전 과제가 비록 괴물체나 외계인과 대결을벌이는 것에서 비롯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주여행 영화들은 난처한 상황에서 탈출하는 내용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이 가운데 상당한 과학적 지식이 동원되고 있다. 이러한 지식은 알기 쉽게 표현되며 관객들의 이해를 충분히 도울 수 있는 형태로 제공된다. 이러한 점은 `인터스텔라`나 `마션`에서 두드러진 바였다.

그런데 영화 `그레비티`나 `인터스텔라`는 지구로 귀환하는 동기가 `딸아이` 때문이었다. 가족과 연결시켜 대중성을 좀 더 강화한 형태를 드러냈다. `가족` 때문이라는 동기는 영화 `마션`에서는 더욱 개인화되고 내밀화 됐다. 마지막에 부모에게 인사를하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가족 때문이 아니라 화성탈출 동기는 자신이 살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것일 뿐이었고, 다른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삶에 대한 애착과 분투는 오히려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맷 데이먼(Matt Damon)이 분한 마크 위트니는 극중 식물학자로, 자신의 전문분야를 살려 감자를 심기도 하고 자신을 생존을 알리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 욕설을 하는 등 매우 인간적인 감정에 충실하다. 인간적인 즉 휴머니즘은 그와 함께 우주선에 탑승했던 동료들 사이에서 더욱 끈끈하게 배어나왔다. 영화 `그레비티`의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의 썸타는 장면에서는 달달한 로맨스 분위기를 드러냈다면, 영화 `마션`에서는 벅찬 동료애를 통해 감동을 이끌어내려 한다. 이 영화에서 탈출을 돕는 것은 절대적인 영웅이나 멋진 우주선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의 지혜에서 비롯한다. 그 지혜는 비단 천재에게서만 비롯하는 것은 아니며 더구나 아무리 천재적인 아이디어라도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수많은 스텝들이며 실제 우주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이런 우주 여행 영화들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게임의 요소다. 특정 상황 속에서 미션을 풀어가거나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 성취감을 대리적으로 충족하게 만들고 그 자체가 흥미를 자극한다. 오로지 인간의 학습과 탐구, 해법의 도출과 함께 스스로 움직여서 난관을 헤쳐가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이런 모습은 어떤 사회학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어려운 상황은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 아니 전지구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정해집 해법은 없다. 각자 지혜를 모아서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어려운 상황은 그동안 예견이 불가능했던 것도 아니다. 예견을 한 상황 속에서도 투입됐다. 그렇게 펼쳐지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단지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린다거나 자동 해법이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우연은 되도록이면 배제라고 스스로의 행동들이 맞닿아 긍정의 결과를 낳는다. 스스로 움직일때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현실에서 경쟁의 격화는 동료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바꿔 놓고 있다. 조직에서 동료조차 경쟁자들일 뿐이니 말이다. 적어도 우주 탐사선 안에 있는 이들은 경쟁이나 적이 될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경쟁이 덜한 예전에 동료들은 친구이며, 애인이었다. 이렇게 각박해진 현실을 `마션` 같은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는 지 모른다. 적어도 다른 분야에는 많이 사라진 모습을 우주공간에서는 이렇게 수평적인 동료의식을 형상화하고 싶었을 지 모른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그 한 사람의 동료나 부하를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해 그를 구하려고 필사의 노력을 다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지구의 현실에서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 한 사람의 생존은 무참하게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거꾸로 부각하기 위해 우리는 우주공간으로 가고 있는 지 모른다.

무엇보다 개인의 노력과 친구, 동료들의 협력 그리고 공동체와 사회, 국가적인 정책이 적절하게 어우러질 때 개인도 살고 그 집단 나아가 국가도 살 수 있다는 함축적인 메시지를 이 영화에서 이끌어 낸다면 비약일까. 오히려 현실에서는 그러한 점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주공간 속에서 그것을 염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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