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내수시장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화장품기업들이 캐릭터를 앞세워 활로를 뚫고 있다. 미키마우스, 도라에몽, 원더우먼, 아톰, 무민 등 그 면면도 다양하다. `캐릭터 화장품`은 캐릭터와 소비자 간의 강력한 감성적 유대를 활용해 신제품에 대한 관심을 높임으로써 홍보와 판매량 증대에 직접적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되고 있다.
# 출시되자마자 완판 `검증된 매출 효과`
캐릭터 화장품의 매출 효과는 기대 이상이란 평가다. 에이블씨엔씨가 운영하는 브랜드숍 어퓨가 선보인 `도라에몽 에디션`은 쿠션, 섀도 팔레트, 틴트, 선크림 등 총 14종 24품목으로 구성돼있는데 지난 8월 20일 온라인을 통해 출시한 지 1시간 여 만에 초도 생산제품이 모두 팔렸다.
충성도 높기로 유명한 도라에몽 마니아들은 물론 귀여운 캐릭터에 매료된 일반 여성들까지 경쟁적으로 구매에 나선 결과란 분석이다. `도라에몽 에디션`은 지난 두 달 간 7차례에 거쳐 거듭해 발주가 이뤄졌으며 어퓨는 라이선스 계약을 연장하는 한편 최근 4종의 신제품을 추가로 출시했다.
또한 에이블씨엔씨는 이달 초 또 다른 브랜드숍인 미샤를 통해서도 9종 30품목으로 이뤄진 `원더우먼 에디션`을 발매하기도 했다.
토니모리가 지난달 말 선보인 `마이티 아톰 패키지`도 한 달 여 만에 판매량이 11만개를 넘어섰다. `토니모리 마이티 아톰 패키지`는 시트마스크, CC쿠션, 마스카라, 섀도, 틴트, 포마드 등 총 20여 품목으로 구성돼있는데 이중에서도 `립톤 겟잇 틴트`의 일부 컬러는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열띤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토니모리 관계자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펀(fun)한 화장품`의 취지에도 맞고 한정판 제품이라 소비자들의 구매 및 수집 욕구를 적절히 자극했다"며 "SNS 상에서도 이번 아톰 콜라보레이션이 많이 회자되고 있고 `신선하다, 귀엽다, 갖고 싶다` 등의 긍정적 반응이 대부분이다"고 밝혔다.
이같은 높은 호응에 고무된 토니모리는 다가오는 겨울시즌 출시 예정인 홀리데이 컬렉션에도 아톰 콜라보레이션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며 앞으로 시즌 이슈에 따라 그에 맞는 캐릭터를 활용할 계획이다.
SPA 패션 브랜드 랩(LAP) 또한 화장품시장에 진출하며 캐릭터의 힘을 적잖이 봤다. 랩의 화장품 브랜드인 랩코스는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도널드덕, 데이지덕, 구피 등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디즈니 캐릭터를 폭넓게 활용한 `디즈니 에디션`을 통해 빠르게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랩코스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가진 유년 시절의 감성을 일깨우는 캐릭터 디자인으로 일단 눈길을 끌고 제품력으로 만족시킨다는 전략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 심각한 외부 캐릭터 의존도 `또 다른 빅모델 전략?`
캐릭터의 힘은 시장 개척에 큰 도움이 되지만 그렇다고 마냥 긍정적이고 손쉬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캐릭터 화장품일수록 까다로운 점이 많다는 게 공통된 의견. 일단 제품 디자인서부터 `동심을 자극하되 아이용으로 보여선 안 된다`는 쉽지 않은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
모 화장품 브랜드 관계자는 "캐릭터 화장품이 키덜트(kidult)족을 겨냥한 상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문방구에서 파는 제품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귀여우면서도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명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차례 디자인 수정작업을 거쳐야 했다"고 말했다. 품질 또한 마찬가지. 캐릭터 화장품은 조금만 성에 안차도 금방 `애들이나 쓰는 제품`이란 딱지가 붙기 일쑤라 더욱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캐릭터 화장품의 판매량이 많긴 하나 수익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많다. 캐릭터 사용의 대가인 로열티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로열티 비용 탓에 원가율이 높아지므로 할인이나 1+1과 같은 프로모션도 쉽지 않다. 캐릭터의 유명세를 빌리는 대신 가격 경쟁력을 버리는 셈이다.
더욱이 최근 화장품업계가 너도나도 캐릭터 화장품 개발에 나서면서 인기가 높은 캐릭터를 보유한 라이선스 업체의 콧대도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저작권 관리가 워낙 까다로운 데다 같은 캐릭터라도 브랜드의 규모와 인지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이미지에 엄격한 차별을 두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로열티 비용 또한 국내 화장품기업 간에 유명 캐릭터 쟁탈전이 치열해져 더욱 상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진짜 문제는 `캐릭터 화장품`이 흔해지면서 벌써부터 소비자의 흥미가 떨어지고 마케팅적인 차별점도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화장품기업 관계자는 "유명 캐릭터를 활용하면 초기 관심을 높일 순 있겠지만 브랜드 고유의 자산을 쌓을 기회는 놓치기 마련이다"며 "빅모델에 의존한 마케팅과 유사한 한계에 부딪힐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