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올해 연말까지 기업 구조조정에 ‘올인’하기로 하면서 그동안 추진했던 금융개혁 성과들이 퇴색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11일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 이슈 외에 올해 계획했던 정책들은 거의 다 발표했다”며 “이번 달에는 국회 소위원회를 돌며 법안 처리에 주력하고 다음 달에는 내년도 업무계획 수립에 매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가계부채 해소 대책이나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융감독체계 개편, 수년째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우리은행 민영화, 금융권 보신주의 혁파를 위한 기술금융 확대 등 굵직한 개혁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올해는 더 이상 건들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이 관계자는 또 “최근 당정협의를 거쳐 발표한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가 사실상 마지막 금융개혁 정책”이라며 “현재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들도 한계 상황에 봉착한 곳이 많은 만큼 연말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당국이 이처럼 기업 구조조정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는 최근 상황이 IMF 외환위기 직전 상황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슷하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경기 둔화 등 이른바 G2(미국·중국)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한계에 봉착한 기업들을 계속 방치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올해 정기 중소기업 신용위험평가 결과는 기대에 다소 못 미칩니다.
워크아웃 대상인 C등급과 법정관리 대상인 D등급을 받은 부실징후기업 수는 각각 70곳과 105곳으로 모두 175곳입니다. 구조조정 대상이 작년보다 40%나 늘어난 셈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기업 구조조정을 앞으로 우리 경제에 닥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달 말에는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로 변신한 유암코가 첫 구조조정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다음 달에는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대기업 수시 신용위험평가를 끝낼 예정인 만큼, 기업 구조조정이 조만간 본격화 될 것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지난해 국내 제조업 매출 증가율이 1961년 통계작성 이후 처음으로 뒷걸음질 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 구조조정과 함께 국내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조치들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해당 산업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추진된 구조조정 정책이 훗날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 지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정부는 현재 금융위원장이 주재하고 관계부처와 금감원, 국책은행 등이 참석하는 협의체를 통해 업황 분석과 전망, 구조조정 추진 방향 등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 구조조정과 함께 국내 산업구조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 이를 위해 정부와 금융권이 지원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해 보입니다.
일부에선 금융당국은 채권은행에 대한 감독기관으로서의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고 기업 구조조정과 산업구조 개편에 대한 전반적인 업무는 부총리급 이상의 상급 기구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기업구조조정. 나아가 산업구조 개편은 여러 정부 부처간 이해가 상충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이를 통할할 수 있는 상급기구에 맡기고 금융당국은 산적해 있는 금융개혁 과제들을 완수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