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유통 격변 이끈 이대 상권 "상징성은 여전하지만…"

입력 2015-12-21 05:23  


2002년 미샤 출범 이래 화장품 브랜드숍 테스트 마켓으로 자리 매김

12월 현재, 각양각생 브랜드숍 50개 매장 성업 중임에도 활력은 떨어져



이화여대 상권은 화장품 업계에 있어 각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2000년대 들어서부터 현재까지 화장품 산업의 트렌드와 성장을 주도해 온 브랜드숍의 태동지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상권의 위상과 입지가 예전 같지 않지만 화장품 업계의 테스트 무대로서의 기능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때 이대 상권은 1,500여 개에 달하는 보세의류, 신발, 잡화 매장과 유명 미용실이 즐비한 서울 서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대규모 쇼핑가였다. 90년대 중후반까지 비단 이대생 뿐 아니라 10대 후반부터 20대까지 멋을 아는 여성이라면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러나 동대문 지역에 대형 의류 쇼핑몰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패션의 메카`로서 상징성은 희미해져졌고 인근 홍대 상권이 급격히 부상하며 그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2007년에는 동대문의 부흥을 이끈 패션 쇼핑몰인 밀리오레와 예스에이피엠이 오픈하면서 기대를 모았으나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상권의 쇠락이 가속화됐다. 쇼핑몰은 물론 그 주변의 보세의류 상가 구역에도 빈 점포들이 속출했고 슬럼화 조짐마저 역력해진 것이다.

침체된 상권에 그나마 활기를 불어넣어준 건 화장품 매장들이었다. 2002년 에이블씨엔씨는 이곳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냈다. 바로 화장품 브랜드숍의 원조 `미샤`의 시작이었다. 미샤의 등장 이후 국내 화장품 시판유통의 판도는 빠르게 변화했다.

더페이스샵, 스킨푸드,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 네이처리퍼블릭, 토니모리 등이 차례대로 등장하며 화장품 유통의 주도권을 틀어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대 앞은 호피걸, DHC, 비욘드, 샤라샤라, 비비토 등 주요 브랜드들의 데뷔 무대로 선택됐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8월에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라비오뜨가, 10월에는 LG생활건강의 새로운 멀티 브랜드숍 투마루 스테이션이 첫 매장을 이곳 상권에 선보였다.

명성이 퇴색했음에도 화장품 브랜드들이 이대 상권을 가장 먼저 찾는 이유는 핵심 타깃인 젊은 여성들의 트렌드를 살피기에 여전히 이곳만한 데가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대 앞은 아직까지도 수 만 단위의 유동인구가 북적이는 서울의 주요 쇼핑가이자 인근 신촌과 연계하면 확장성이 크다는 점에서 1호점이 아니더라도 초기에 반드시 진입해야할 상권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몇 년 전부터 이대 앞은 중국인을 비롯한 해외 관광객들의 주요 방문코스로 각광받으며 명동, 동대문 등과 함께 화장품 업계로부터 특별히 관리해야할 상권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대 상권의 범위는 지하철 2호선 이대입구역으로부터 이화여대 정문까지, 여기서 신촌 방향으로 좌회전해 경의중앙선 신촌역까지를 각각의 변으로 쳐 그 안쪽이 모두 포함된다. 그중에서도 이대입구역과 이대정문, 신촌역을 잇는 총길이 500m 정도의 `ㄱ`자 구간이 상권의 중심축에 해당한다.

2015년 12월 현재 이대 상권 내 화장품 로드숍은 50개에 달한다. 브랜드숍의 성지답게 웬만한 곳에서는 보기 힘든 브랜드들의 매장도 이대 앞에서는 쉽게 눈에 띈다. 이 가운데 80%에 해당하는 40개 매장이 메인인 `ㄱ`자 구간에 빼곡히 들어섰다.

의류점들이 일부 남아있는 안쪽 이면도로로는 6개 매장이 위치해있는데 그 조차도 메인 거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집중돼있다. 나머지 4개 매장은 이대입구역 1번 출구가 있는 신촌로 대로변에 줄지어있다.

매장의 대부분은 원브랜드숍이며 올리브영, 왓슨스 등 헬스앤뷰티숍이 4개가 있고 아리따움, 투마루 등 멀티브랜드숍이 2개다. 관광상권답게 이른바 `유사 면세점`으로 통용되는 외국인 전문 매장도 2개가 영업 중이다.

`ㄱ` 구간의 한 축인 이대입구역서부터 이화여대 정문까지는 이대생을 비롯한 국내인 매출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관광객을 태운 버스들이 주차를 하는 신촌역 광장으로부터 이대 정문 방향의 거리에 들어선 매장들은 외국인 매출 비중이 80% 정도에 이르고 있다. 바닐라코, VDL, 미샤, 홀리카홀리카, 토니모리 등 적잖은 브랜드들이 양 쪽 거리에 각각 매장을 전개하고 있는 이유다.

상권 규모에 비해 많은 화장품 매장들이 들어서 있지만 불안감은 크다. 메인 거리를 제외한 상권 안쪽은 방치된 상태의 빈 점포들이 즐비해 지나다니는 이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상황이다.

메르스 사태 이후 격감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수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원래부터도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규모에 비해 매출 실적은 적은 편이었기에 더욱 타격이 크다는 평가다.

모 브랜드 매장 매니저는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은 이대를 사진촬영 명소로 생각하고 찾아오고 화장품 쇼핑은 면세점이나 명동을 이용하는 게 태반이다"며 "명동에 비해 임대료 수준이 현격이 낮기에 그나마 수익을 봤을 뿐 매출이 아주 높지는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브랜드의 매장 관계자는 "인근 홍대 상권에 비해 성장성이 떨어지는 데다 외국인 관광객에 의존한 매출 구조 자체가 위험성이 높아 언제든 상황이 악화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며 "이대 상권도 보다 특색 있는 콘텐츠와 즐길 거리를 개발해 좀 더 많은 내외국인을 끌어 모아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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