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잡은 국민연금이 기업들 주주총회에서 거수기 역할에 그치며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총 반대의견 제시는 상정안 10건 중 1건꼴에 그쳤고, 이런 반대의견으로 안건이 부결된 사례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6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15년 1월부터 10월까지 주식보유 기업들의 주총에 참석해 총 2,768건의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 중 10.2%인 282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89.6%인 2,479건은 찬성표를, 0.2%인 7건은 중립·기권표를 행사했다.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항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사·감사 선임(189건·67%)이 가장 많았다.
장기 연임에 따른 독립성 약화 우려, 이사회 참석률 미달, 과도한 겸직, 이해 상충 등이 이유였다.
이어 정관 변경 반대(52건·18.4%), 보수 한도 승인 반대(7건·2.5%), 기타(34건·12.1%) 등이었다.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주총에서 안건이 실제로 부결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를테면 지난해 6월말 국민연금은 SK와 SK C&C의 합병에 대해 주주 가치 훼손을 이유도 반대했지만 합병을 막지는 못했다.
국민연금이 네이버 등 주요기업들의 대주주로 부상했지만 최대주주와 특수 관계인보다 지분이 적은데다 다른 기관투자자의 동참이 없어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반대 의결권 행사 이후 안건 부결 등의 주총결과는 따로 집계하지 않아서 확인할 수 없지만 주주권 행사로 부결된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비중은 2006년 3.7%에서 2007년 5%, 2008년 5.4%, 2009년 6.6%, 2010년 8.1%, 2011년 7% 등으로 완만하게 증가하다 2012년 17%로 급격히 치솟았다.
2012년에 갑자기 반대 비율이 증가한 것은 상법개정과 관련해 정관 변경에 반대하는 안건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국민연금공단은 설명했다.
그러다가 2013년 10.8%, 2014년 9%, 2015년 1~10월 10.2% 등으로 하락하며 10% 안팎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말 국민연금의 기금자산은 507조원(시가기준)으로, 이 가운데 국내주식에 19.1%(96조8,207억원), 해외주식에 13.5%(68조1,162억원)를 투자하고 있다.
국내외 주식시장의 큰손인 셈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두고서는 경영 투명성과 주주 가치 제고, 경제민주화 실현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찬성론과 기업 경영권을 간섭할 수 있으니 자제해야 한다는 반대론이 충돌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는 `연금 사회주의`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국민연금 주권행사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국민연금 역할론이 떠오르곤 하지만 선진국 연기금과 비교할 때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할 실효적 방안은 없다시피한 실정이다.
글로벌 5대 연기금 중에서 네덜란드공적연금(ABP), 노르웨이국부펀드(GPFG),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 4곳은 주주 가치를 높이고자 주주소송과 입법운동, 투자자 연대에 나서기도 한다.
ABP, GPFG, CPPIB 등 3곳은 사외이사 추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며 투자 대상 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특히 `포커스 리스트` 제도도 활용해 기업의 지배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실적이 나쁜 기업의 리스트를 작성해 시장에 공개함으로써 공개적인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도 2013년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만들어 국민연금의 주주권과 의결권 강화에 나섰지만, 재계의 반발에 밀려 결실을 보지 못했다.
당시 복지부는 경영성과가 저조하거나 지배구조가 취약한 투자 기업을 `중점감시 대상`으로 지정해 기업지배구조 개선도 추진하고, 경영진이 주주권을 훼손할 때는 주주대표소송에도 나서야 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또 국민연금기금을 맡아 운용하는 위탁운용사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지침을 따르도록 했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이 건전한 시장 감시자로서 구실을 하겠다고 선언한 이런 방안은 전경련 등 재계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흐지부지됐다.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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