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스타 웹컬처팀은 2016년 웹컬처 문화 및 시장 추이를 살펴보기 위한 연속특집기획인 ‘웹컬처 2016 키워드’를 마련했다. 이 기사는 지난 기사에 이어서 국내 TRPG 주요 출판사 중 하나인 ‘구르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지상중계한다. 지난 기사가 “고마워요! 대소동 해결단”(이하 “고대해”)와 시장 동향을 주로 다뤘다면, 이번 내용은 소셜펀딩 현상과 함께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들어봤다.]
― ‘구르는 사람들’은 소셜펀딩 사이트의 수혜자라고 생각한다. 소셜펀딩 사이트를 어떻게 알고 참여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 냐브: 맨 처음엔 소셜펀딩 자체를 몰랐다. 그러다가 TRPG Club에서 “던 오브 페이트”라는 RPG 프로젝트에서 표지 그림 일러스트나 아이디어 기획에 참여하면서, 그 때 ‘킥스타터’ 같은 사이트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해외에서는 이미 그런 식으로 소셜 펀딩을 통해 많은 게임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도 저런 걸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준비를 시작했다. 그 때, 초여명 출판사에서 “던전월드”를 텀블벅에 올렸다. 그 걸 보고 ‘억’하고 대개 놀란 적이 있다. 곧바로 펀딩에 뛰어들었다.
텀블벅에서 펀딩이 성공한 이후에도 굉장히 도움을 많이 주셨다. 나중에 저희가 “고민해결! 마법서점”(이후 “마법서점”) 책을 발송할 때도, 텀블벅에서 자체발송 시스템을 준비하시면서, 그 일환으로 저희 거를 그 쪽에서 발송을 했었다. 텀블벅 같은 경우에는, 계속 앞으로도 저희 작업에 좋은 파트너가 될 것 같다. 국내 소셜펀딩 사이트 중에서 유일하게 TRPG 분류가 따로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최근 소셜펀딩 자체가 투자라는 의미를 잃어버리고 일종의 소셜 커머스로 전락했다는 의견이 있다.
▲ 믹하: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소셜펀딩은 그렇게 안전한 투자가 아니다. 배송이 예정된 기간보다 늦어지고, 제작된 제품의 질이 좋지 않은 펀딩 결과물도 꽤 많기 때문에, 사실 어느 정도로는 투자라기보다는 정말 ‘후원’인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 냐브: 그래서, 저희 같은 경우에는 펀딩 끝나고 1주일 있다가 바로 후원자들에게 공개판을 뿌렸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한테 피드백을 받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 게임은 우리가 만들었지만, 후원한 사람이 먼저 직접 해보고, 그들의 얘기를 듣고 좋은 것들을 넣어서 완성한 다음에, ‘당신들과 함께 만들었다’고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소셜펀딩이 아까 말한 것처럼 소셜커머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후원자가 ‘내가 이걸 그냥 샀다’가 아니라, ‘내가 이걸 같이 만들었다’. 혹은 ‘내가 아니었으면 이게 나오지 못했다’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희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 믹하: 소셜커머스는 완성된 제품이겠지만, 디자인은 완성이 안 된 제품을 파는 거니까.
▲ 냐브: 그리고 또 하나는, 소셜펀딩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피드백과 대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텀블벅에 댓글이 달리면, 무조건 하루 안에 댓글을 달려고 노력하고, 그걸 거의 대부분 지켜왔다. 다른 곳에서 A/S가 1주일 걸리는 것은 그냥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소규모 후원을 받는 일에서는, 옆에 있는 사람처럼 후원자가 뭔가 물어보면 바로 대답해야 한다. 저희가 공개판을 올린 당일에 후원자들에게서 오타나 문장 수정 사항을 바로바로 반영했다. 피드백이 들어오면 5분 있다가 바로 수정해서 올리고, 30분 있다가 수정해서 올리고. 그런 식으로 후원자들이랑 바로 대화하면서 같이 만들 수 있다.
▲ 믹하: 그리고 결국 소셜펀딩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펀딩 끝나고 그냥 돈 받고, 물건 보내주고 이게 아니라. 후원자 대상으로 캠프를 연다던가, 뭔가 후원자를 위한 계속적인 지원이나, 이벤트 우선권, 그런 걸로도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 개인적인 이야기도 조금 들어보고 싶다. 두 분은 TR에 어떻게 입문했는가.
▲ 믹하: 그냥 컴퓨터 게임 같은 거 찾아보다가, TRPG를 찾아서 동호회에 들어갔다. 인생의 중요한 일들은 그냥 별 생각 없이 일어나니까(웃음).
▲ 냐브: 저는 고등학교 때. 예술계 고등학교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는데 친한 친구들이 갑자기 오더니만, ‘굴려봐라, 냐브’ 해서 굴렸더니, ‘자 너의 능력치는 이렇다. 그러니까 마법사를 해라’고 강요당했다(웃음). 뭔지도 모르고 처음에 입문을 했다. 그리고 오히려 처음에는 별로 재밌지 않았다. 뭔지 설명도 안 해주고 ‘내가 왜 이걸 왜 해야 되지?’ 이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때 친구들이 별로 친절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들이 다 의례히 그렇듯이. ‘아 병신, 그딴 선택을 하다니’ 하면서 놀리기만 해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렇게 “소드월드”로 입문을 했었는데, 그 다음 게임이 굉장히 재미있어서 그 때부터 계속 하게 됐다. 그 게임에서 성직자를 했는데, 일반 삶에서 하기 힘든 ‘친구의 목숨인가, 나의 대의인가’. 이런 딜레마적 선택을 해 보는 게 너무 몰입적이고 재밌어서. 그 뒤로 꾸준히 취미를 즐기게 됐다.
― 그래도 뭐 “소드월드”면 무난한 걸로 가신 것 같다.
▲ 냐브: 그 당시에 한국에 정식발매된 룰이, 커뮤니케이션 그룹에서 나온 “소드월드”, “던전 앤 드래곤”, 그것 밖에 없을 때였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소드월드”가 게임 매거진을 통해서 나왔다. 그래서 제 또래 사람들은 거의 그걸로 접했을 것이다.
▲ 믹하: 전 D&D(던전 앤 드래곤)였다. 마법을 처음 시작했더니 ‘자 그럼 지금부터 일단 기본적인 마법을 외우면서 시작해보자’. 막 효과, 거리 이런 거 외우고. RPG는 이렇게 하는 건가 이러면서 외었다.
▲ 냐브: 거리도 미터로 안 쓰여 있지 않나? 야드. 피트. 무게 단위도 파운드 쓰고. (웃음)
― 팟캐스트 “탁상예능”도 진행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개를 부탁드린다.
▲ 냐브: 작년(2015년) 5월 달에 시작했으니까, 지금 만 7~8개월쯤 됐다. TRPG 플레이를 녹음해 리플레이 형태로 방송하고 있다. 재작년 정도에 시작했다면 지금처럼 활발하게 할 얘기가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RPG 룰이 많이 나와서, 정말 국내에 나오는 룰만 가지고 이 방송을 해도 할 소재가 끊이지가 않는다. 그리고 방송을 하다보니까 게임을 만드는 데도 굉장히 많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 믹하: 저희가 지금까지 한 10가지 시스템으로 방송을 한 것 같다.
▲ 냐브: 그리고 팟캐스트가, 확실히 미디어가 가진 힘이 크다. 정말 많은 사람이 듣고, 많은 사람이 알게 되고. 지금은, “마법서점”이나 “고대해” 펀딩보다도 팟캐스트 때문에 저희를 아는 분들이 훨씬 더 많다. 저번에 ‘2015 탁상예능 어워드’ 집계할 때 기준으로, 32,000번이 넘게 재생이 됐더라. “탁상예능”은 현재 팟빵 게임분야에서 언제나 1,2위를 하고 있다.
▲ 믹하: 저희 위에는 플레이스테이션 방송이 있는데, 사실 TRPG가 플레이스테이션 방송이랑 겨루는 경우가 많이 없다.
▲ 냐브: 겨루고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플스(플레이스테이션)하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 저도 플스하고. 그래서 지금 굉장히 뿌듯하다. 보드게임 방송 중에서 “성취감”이라는 재미있는 팟캐스트가 있는데, 그분들과 콜라보레이션 방송을 했다. 그 이후 청취자들이 많이 늘어나서, 지금은 1주일에 한 1,000명에서 2,000명 정도가 듣는 방송이 되었다.
▲ 믹하: 요즘은 진짜 뭘 안 해도 1,500명이더라.
― 녹음 방송은 여기서 하시는가?
▲ 냐브: 그렇다. 평소에는 컴퓨터 책상으로 쓰는 책상에서 컴터를 다 내려놓고 가운데로 옮겨서, 의자를 두른다. 그리고 사람들이 오면 녹음한다.
― 원주에서 살고 계신다. 서울에서 100km나 되는 거리니까, TR을 하시는 분들의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 냐브: 처음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 믹하: 저희가 “탁상예능”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서, ‘여기서 뭔가 RPG를 하고 있다, 무슨 모임이 있다’는 걸 지속적으로 알리다보니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여기서 갑자기 플레이하고 싶다고 해도 사람을 구할 수 있다.
▲ 냐브: 트위터에서 원주 사람들을 많이 찾아서, 지금은 원주 안에서도 충분히 팀이 돌아간다. 그리고 “탁상예능” 팬 분들이 계속 꾸준히 여기에 온다. 나름 RPG 성지같이 됐다.(웃음) ‘거기 가면 정말 재미있는 RPG와 보드게임을 할 수 있다더라’면서 꾸준히 찾아 주시기 때문에, 지금은 너무 충분히 하고 있다.
▲ 믹하: 태어난 이래 가장 많이 하고 있다.
▲ 냐브: 오히려 지금은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하고 있다. 원주에 내려온 이후 처음 몇 달 간은 TRPG를 못 해서 서울로도 많이 가고, 사람들도 오게 하려고 꼬셨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방송 덕분에.
― 조만간 원주가 TRPG 성지가 될 것 같다. (모두 웃음)
▲ 믹하: 그래서 요즘 ‘꿈과 RPG의 도시 원주’라는 슬로건을 밀고 있다.
▲ 냐브: 원주시에서 저에게 상 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 전작(“마법서점”)은 원주 배경 게임이었고. (웃음)
― 하지만 TRPG라는 취미가 아직 다른 분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어렵지 않나, TRPG를 아시는 분들은 인정을 해주시겠지만,
▲ 믹하: 아직 모르실 것이다.
▲ 냐브: 그러니까 웃긴 게, 저희 방송은, 어디에서 듣고 있는지 집계를 보면 역시나 서울이 많고 지방이 조금씩 나오는데 정작 원주에선 별로 안 듣더라. 그래서 확실히 지방 가면 좀 마이너한 취미를 즐기기에는 좀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저희 방송에서도 ‘지방의 서러움’이란 주제를 초반에 방송한 적이 있다.
― 지역주민들에게 TRPG를 보급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냐브: 저희도 그런 거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하다. 저희가 안 그래도 이번 주에 원주에서 RPG 캠프를 한다. 저희가 “탁상예능”을 하면서 저희 얼굴을 보고 싶어 하고, 원주에 오고 싶으신 분들이 굉장히 많았던 상태였기 때문에, 아예 한꺼번에 오실 수 있게, 펜션을 빌려서 캠프를 하기로 했다.
― 마지막으로 각자 느끼고 계신 TRPG의 매력에 대해 듣고 싶다.
▲ 믹하: 자신의 자아 확대라고 생각한다. 원래 연극을 좋아했었다. 그러다 연극 활동을 하다가 RPG를 접하면서, 연극에서 어떤 캐릭터를 맡아서 연극을 하는 것만큼이나 RPG에서 어떤 캐릭터가 되어서 행동하는 것도 저를 확대시켜 주었다. 또한 연극에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는 RPG를 하는 게 간편하고, 들이는 시간에 비해 재미도 더 많더라.
내가 일상생활에서 수행해야 되는 ‘착한 첫째 딸’ 등의 역할을 TRPG에서 다른 캐릭터가 되어 보면서 깨 보고, 연기도 해 보고, 이런 저런 걸 하면서, 내가 이 모습 그대로 있을 필요는 없구나, 이거 말고도 다른 삶들도 있구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분들이 게임을 하면 돈을 벌어주냐, 밥을 벌어주냐고 질문한다면 난 최소한 이걸로 인격적인 성장을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 냐브: 믹하님과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우선 콘솔 게임에서의 선택은 어느 정도 몰입도가 있지만, 그 선택은 세이브 데이터를 되돌리거나, 파일을 해킹하거나 해서 바꿀 수 있다. 그런데 RPG는 선택을 하는 즉시 되돌릴 수 없다. 아까 말한 것 같이, 죽은 동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성직자인 내가 성표를 파괴해서 그들을 살릴 건가, 말 건가는 딜레마가 있는 선택 같은 걸 일상에서 해 볼 일이 없다. 있어서도 안 되고.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건 사실 RPG밖에 없다.
또한 TRPG에서는 사이버펑크 세계라던가 판타지 세상이던가, 혹은 내가 될 수 없는 인물, 성별. 지위. 직업. 심지어 아예 다른 종족까지 될 수 있다. 글자 그대로 새가 될 수도 있다.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접근성까지 쉬운 것은 RPG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자신이 다른 인생을 대리 체험할 수 있는, 가장 깊이 있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지금 게임이 굉장히 발달하고 있다. 이제 곧 가상현실 게임(VR)도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RPG는 따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게, 결국은 최고의 그래픽카드는 인간의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사람 머리에 직접 이미지를 넣어주는 전뇌 기술이 나오면 그 땐 RPG를 안 해도 되겠지만(웃음), 그 전까지는 아마 RPG가 가장 가까운 체험을 제공할 것이다.
▲ 믹하: 그리고 사람의 온기도 있다. RPG는 어쨌든 사람을 만나는 취미다. 결국 RPG를 잘 하는 사람은 인간성이 좋아야 된다.
▲ 냐브: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조율하는 것, 각자 다른 생각과 다른 인생을 살아 왔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같이 이야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큰 매력을 가진 것 같다. 개인 창작자가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하지만 RPG는 여러 명이 모였을 때만 나올 수 있는 공동창작물이다. 그게 굉장히 매력적이다.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하겠습니다.
▲ 냐브·믹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