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로서의 데뷔가 늦은 그였지만, 짧은 시간 안에 `살리에르`, `아이다`, `카르멘`, `두 도시 이야기`, `삼총사`, `쓰릴 미`, `노트르담 드 파리` 등 많은 작품을 맡았던 최수형. 어느 작품 하나 허투로 임한 게 없었고, 인터뷰 질문 하나에도 많은 고민을 하며 대답했던 그였다. 한국경제TV MAXIM은 최근 그를 서울 모처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지금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하 바람사)`에서 노예장 역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다른 뮤지컬을 연습 하고 있었지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그 작품이 엎어져 가장 마지막으로 `바람사`에 합류하게 됐다. 3개월 가량 연습했던 작품이 엎어진 건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바람사` 관객들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수형 그가 없는 노예장은 상상할 수도 없으니.
`바람사`는 미국의 남북전쟁 이야기가 배경이다. 그 전쟁을 통해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본 뮤지컬에서 가장 굵직하게 다뤄지는 이야기 중 하나다. 노예장은 극 중 무대에 단 2번 나오지만 임팩트가 워낙 커서 여느 주연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는 "`바람사`의 주연 레트와 스칼렛 오하라를 보러 갔다가 노예장 역에 빠졌다"는 말이 종종 들릴 정도니. 그 매력은 대충 감이 온다.
`바람사`에서 노예장은 상의 탈의를 하고 나온다. 뮤지컬을 보러 온 여성 팬들에게 주는 깜짝 선물이다. 최수형은 "처음에 의상실에 갔는데 바지밖에 없었다. 의상 선생님께 `윗도리 주세요` 했는데, `벗으면 된다`고 하더라"며 처음 노예장 역의 의상을 접했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동안 무대에서 상체를 드러내는 작품을 많이 맡았던 최수형이었지만, 이렇게 장시간 노출을 하는 건 `바람사`가 처음이다. 그는 "일단은 운동을 해야겠다 싶어 몸을 만들었다. 요즘은 겨울이라 무대가 정말 춥다"며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무대에 오르기 전 열기를 내려고 계속해서 몸을 풀고 있다는 그. 무대 위 단 2개의 넘버를 위해 긴 대기시간을 보내는 그지만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다 쏟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는데.
그는 "노예장 역을 위해 흑인의 감정을 많이 생각해봤다"며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많은 작품과 자료를 찾아 감정 이입을 준비했다"고 배역을 위해 노력한 점을 전했다. 또한"무대 위에서 노예들의 에너지가 장난이 아니다. 우리 노예들이 춤추는 것만 봐도 울컥할 정도로 정말 미친듯이 춘다. 무대에서 서로 눈을 보면 더 에너지가 커진다. 서로 상호작용이 되니깐, 무대위에서는 힘든 줄 모른다"며 프로다운 모습도 보여줬다.
최수형은 항상 맡는 배역마다 캐릭터 분석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이런 평가에 대해 그는 "일단 나는 배역을 맡으면, 큰 그림부터 그린다. 그리고 디테일을 잡는다. 이번 노예장 역할도 `흑인`과 `노예`라는 굵직한 틀을 잡고 파고들었다"며 본인의 연기 노하우를 들려줬다.
이런 분석력과 캐릭터 몰입력이 빛을 발한 에피소드가 있다. 최근 `바람사`에서 레트 역을 맡은 배우 윤형렬이 급성 맹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해, 레트 역을 대체할 사람이 필요했다. 레트 역에 캐스팅된 다른 배우들은 각자의 스케줄로 인해 공연이 불가능했고, 제작사 측에서 떠올린 건 최수형. 하지만 무대에 올라갈 준비기간도 너무 짧았고, 대사와 넘버가 워낙 많은 캐릭터라 그는 처음에 거절했다는데. 하지만 결국 관객들을 위해, 그리고 본인을 위해 레트로 변하게 된다. 준비기간 내내 밤을 꼬박 새우고, 대사와 노래, 동선까지 빠짐없이 체크한 후 무대에 올랐고 그의 열정이 통한 걸까. 관객들은 호평을 쏟아냈다. 그는 "처음에는 부담이 심했는데, 같이 하는 배우들이 많이 도와줬다. 김지우(스칼렛 오하라 역)도 많이 맞춰주고 당일 공연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스칼렛 역의 바다도 `네 맘대로 하라`며 부담을 덜어줬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최수형은 "다행히도 바다와는 다른 뮤지컬에서도 같이 무대에 서본 적이 있어 어렵지 않았다. 끝나고 커튼콜을 하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무대가 다 끝나고 `오빠 정말 멋졌어요` 하는데 뿌듯했다. 잊지 못할 행복한 추억이다"며 공연 소감을 덧붙였다.
27살, 가수가 되고 싶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는 그는 우여곡절을 참 많이 겪었다. MBC 합창단이 돼 태진아, 송대관 등 유명한 가수 뒤에서 코러스를 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본인의 노래에 대한 갈망이 더더욱 커졌다는데. 한 때 최수형은 음악 방송만 봐도 `내 노래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펑펑 울기도 했다. 그랬던 그는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끊임없이 작품을 하고 있다. `바람사` 차기작으로 `살리에르`에 또 도전한다. 최수형은 "시즌1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너무 좋아했다. 연출, 안무, 배우들 모두 머리 맞대서 만든 작품이다. 이번에 대극장으로 옮긴다. 어떻게 나올지 기대된다"며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참 착실하게 살아온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노력해서 그걸 꼭 이뤄냈고, 본인에게 찾아온 기회도 냉큼 잡아 제대로 소화시키는 배우였다. 끊임없는 열정이 어디서 나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 같다"며 당당하게 말하던 그. 한번 나오더라도 존재감이 빛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를 뮤지컬 뿐만 아니라 브라운관, 스크린에서 보고 싶어졌다. 앞으로 최수형의 행보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