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전격적으로 발표된 카카오의 로엔 인수는 올해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의 활황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국내 M&A 시장 규모가 사상 최대를 기록한 지난해의 77조원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불확실한 경기, 높아진 재고 부담 등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에 대한 갈망이 커진 데다 보유현금도 풍부해 M&A를 통한 성장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기간 불황으로 한계 상황에 처한 기업들도 늘어 예상 매각가가 1조원이 넘는 `대어급` 등 매물도 수두룩한 상황이다.
그러나 넘쳐나는 매물로 `바이어`(Buyer·인수자)가 우위인 시장이 예상되면서 `셀러`(Seller·매각자)`들 사이에선 헐값 매각 우려도 커지고 있다.
◆ M&A시장 대어급 쏟아져…"사상 최대 거래 경신 가능성"
20일 KDB대우증권에 따르면 국내 M&A 시장의 거래대금은 지난해 77조원 수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거래건수도 427건으로 많았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특정 산업에 대한 정부의 구조조정 요구와 관련법 개정에 따른 M&A도 활발할 전망"이라며 "올해 M&A 시장 거래대금은 지난해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고 예상했다.
유명간 대우증권 연구원은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과 삼각분할합병 등 정책이 국내 M&A 시장에 촉매로 작용할 것"이라며 "M&A 시장의 열기는 올해도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시장에 나온 매물 중 대어급으로는 우선 코웨이가 꼽힌다.
코웨이의 최대주주인 국내 토종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말 매각 본입찰을 벌였지만 유력 인수 후보인 CJ그룹의 불참으로 현재 코웨이 매각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코웨이의 예상 매각가액은 2조~3조원 수준으로 이르면 다음 달 매각 작업이 재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ING생명도 예상 매각가액이 최대 2조5천억원에 달하는 대어급 매물이다.
매각자인 MBK파트너스는 2년 전 ING생명을 1조8,400억원에 인수해 그동안 매각 가치를 키워 왔다.
알리안츠생명과 PCA생명도 올해 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씨앤앰도 빼놓을 수 없는 대형 매물 중 하나로 조만간 매각 작업이 재개될 것이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인수 후보군으로는 LG유플러스나 태광그룹 등이 거론되지만 아직 적극적인 인수 의사를 표명하지는 않은 상태다.
예상 매각가액은 1조5천억~2조원 수준이다.
대기업의 계열사 재편 과정에서 벌어지는 M&A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영채 NH투자증권 IB사업 대표는 "몇 년 전부터 대기업들이 핵심 분야만 남기고 경쟁력이 없는 사업을 주고받기 시작했다"며 "올해 사업 부분이든 기업 부분이든 구조조정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4년 말 한화그룹의 삼성 석유화학부문 인수, 지난해 SK C&C와 SK 합병,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등이 이런 사례다.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 매물 중에서도 대어급이 여럿 있다.
매각 본입찰이 2차례 유찰된 1조원 규모의 KDB생명은 올해 다시 매각 작업이 재개될 전망이다.
산업은행이 보유한 한국항공우주(KAI)도 예상 매각가액이 최대 2조5천억원에 달하는 매물이다.
산업은행은 보유 지분 26.75%를 3년 내 단계적으로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한화테크윈과 두산이 이달 초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로 KAI 보유 지분을 매각한 것은 변수로 꼽힌다.
금융권에서는 대우조선해양과 한국GM, 아진피앤피, 원일티엔아이 등도 산은이 3년 안에 처분할 잠재 매물로 거론된다.
매물로 나올 산업은행의 출자전환 기업 지분도 적지 않다. 현대시멘트와 STX조선해양, STX중공업, ㈜STX, 동부제철 등이다.
예상 매각가액이 1조원에 달하는 금호타이어의 매각도 올해 본격화할 전망이다.
올해 산업은행의 비금융 자회사 매각과 유암코의 한계기업 인수 등으로 매물은 더 늘 것으로 관측된다.
한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대기업의 비핵심 사업 정리로 조선·건설·해운·철강 업종 등에서 크고 작은 매물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 인수자 우위 시장 전개될 듯…헐값 매각 우려도
이처럼 매물이 넘쳐나다 보니 올해 M&A 시장은 그 어느 해보다 `인수자 측`(Buyside) 우위의 시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매각자 측`(Sellside)은 `울며 겨자 먹기`식 헐값 매각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시장 일부에선 매각자가 `제값 받기`에만 연연하면 매물이 시장에서 소화되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가 매물로 내놓은 우리은행이다.
금융당국과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지난해 7월 5번째로 우리은행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관심을 보이던 중동 국부펀드가 저유가 탓에 태도를 바꾸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우리은행 민영화가 성과를 내지못하고 오래 시간을 끌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는 공적자금의 액면금액 이상 회수 원칙이 꼽힌다.
실제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은 51.04%로 매수원가는 1주에 1만3,500원이다.
우리은행 상장 주식 수가 6억7,600만주라는점을 고려하면 최소 4조7천억원을 받아야 본전인 셈이다.
그러나 현재 8,350원(19일 종가 기준)인 주가로 따지면 지분 51.04%의 가격은 2조9천억원에 그친다.
KTB PE가 매물로 내놓은 동부익스프레스의 매각 작업도 지난해 9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현대백화점·현대홈쇼핑 컨소시엄이 가격 등 세부조건이 맞지 않자 같은 해 11월 인수를 포기하면서 중단됐다.
일부 전문가는 사는 쪽과 파는 쪽 간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매물이 장기간 쌓이면 경제 활력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M&A는 적정한 시점에 팔릴 수 있는 가격에 파는 게 정석"이라며 "동양과 동부, 현대 등 대기업 그룹이 부실로 전락한 것도 기업을 매각할 때 희망 가격이 높아서 적정한 시점에 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올해 불황이 깊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만큼 넘쳐나는 M&A 매물이 원활하게 소화될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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